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책머리에
주요 등장인물 제1장 천하의 패자는 누구인가 영양왕의 굴복 요서 기습 전멸당하는 대군 제2장 빠져나올 수 없는 늪 역사상 최대의 정벌군 난공불락 요동성 평양성을 직공하라 제3장 부활하는 가이파 김춘추의 뱅세 태후의 손자, 김유신 가야라는 굴레 제4장 천책상장 이세민 진왕부의 무사들 천하제패의 길 장안으로 장안 점령 몰락하는 천자 양제와 영양왕의 죽음 제5장 아스카, 아! 아스카 소아가와 물부가의 대립 불교정권의 탄생 제6장 중원 통일전쟁 서북의 설거 부자 북방의 유무주 낙양의 왕세충 피로 물든 현무문 |
저이덕일
李德一
양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보고를 들은 얼마 후 영양왕은 덜컥 병석에 눕고 말았다. 극도의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병석에 누운 영양왕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조금만 젊었어도 중원을 차지할 호기이거늘….” 영양왕은 내심 중원정복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양제에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것인지도 몰랐다. 또한 양제도 그것을 알고 그렇게 무모해 보이는 원정을 계속한 것인지도 몰랐다. 중원에 통일왕조가 버티고 있을 때 중국을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통일왕조가 무너져 온 천하가 혼란스런 지금이 적기였다. 영양왕은 태자로 있은 기간만 25년에다 왕위에 있은 기간이 29년으로서 그 기간만 따져도 54년이었다. 7살 때 세자에 책봉되었다고 쳐도 환갑이 넘은 나이였다. 갑옷 입고 중원 벌판을 말 달릴 나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양제의 공격을 버텨낸 것만 해도 환갑 노인으로서 대단한 일이었다. --- pp.224~225 |
식량과 각종 전투 장비들의 무게를 합하니 한 병사가 지고 가야 할 짐의 총량은 석 섬 이상의 무게였다. 전투부대가 졸지에 보급부대로 변한 것이었다. 불평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가야 할 길은 요동에서 평양까지 수 천 리 멀고 험한 길이었다. 허리를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지 못한 병사들은 식량을 몰래 버리는 것으로 무게를 줄였다. 그러자 우문술은 군사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식량을 버리는 자는 목을 베겠다.” 그러나 무거운 짐을 지고 멀고 험한 길을 행군해야 하는 군사들은 기회만 생기면 장막 밑에 구덩이를 파고 식량을 묻어버렸다. 그래서 압록강에 도착할 무렵에는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게 되었다. --- pp.87~88 |
문제의 국서는 영양왕에 대한 또 한 차례의 협박으로 끝을 맺었다.
“왕은 요수(遼水:요하)의 강폭이 장강과 어떠하며, 고려의 백성 수가 진국(陳國)과 어떠하다고 보고 있는가? 짐이 만약 왕을 포용하여 길러주려는 생각을 버리고 왕의 지난 허물을 문책하려고 하면 한 명의 장수로도 족하지 무슨 많은 힘이 필요하겠는가! 이제 개과천선할 기회를 허락하는 것이니 마땅히 짐의 뜻을 알아서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기 바라노라.” 말을 듣지 않으면 영양왕을 내쫓을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그것도 여러명의 장수가 아니라 단 한 명의 장수를 보내서 내쫓을 수 있다는 노골적인 무시이자 협박이었다. 건무는 국서를 읽는 동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내쫓겠다는 협박을 가만히 듣고 있을 영양왕이 아니었다. 낭독이 끝나자 조당 안에서 긴장이 감돌았다. 모두 영양왕의 반응이 궁금했다. 평소의 영양왕이라면 이런 모욕을 받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후퇴해서 사느니 전진하다 죽는 것이 무사정신이라는 것이 영양왕의 지론이었다. 그런 영양왕이 장수 한 명을 보내 내쫓을 수도 있다며 '개과천선' 하라는데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 p.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