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빌딩 옥상에 검은색 니트 목티와 검은색 정장 재킷을 걸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겨울바람이 살벌하게 부는 상태에서도 그의 모습은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그의 시간만 정지한 듯 멈춰 있는 모습이었다.
세상의 모든 빛을 다 박아다 놓은 듯한 까맣고 맑은 눈이 옥상 아래에 반짝이는 빛들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고,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입김이 적막한 하늘을 갈랐다.
“어디에 있느냐…… 소은아.”
묵직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슬픔이 서렸다.
최소은. 입에 담을 때마다 가슴이 아려서 섣불리 부를 수도 없는 이름이었다. 단어 하나하나 입에 담을 때마다 온몸이 찢기는 고통보다 더한 괴로움이 숨통을 쥐는 이름.
바라만 보아도 좋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그 옛적 최소은. 그녀를 잃은 지 벌써 오백 년이 지나 있었다.
‘찾아온다 하지 않았더냐? 그 어여쁜 미소로 다시 만나자 하지 않았어?’
그의 입에서 울음보다 비통한 신음이 흘렀다. 기억 속의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어여쁘며 생생하기 그지없는데 그런 그녀는 이생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찾아 헤매야 할까? 다시 찾을 수나 있는 것일까? 하루에도 몇 번을 절망에 차올랐다가 다시 보게 될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길 오백 년이었던 것이다.
그녀를 찾기 위해 세상천지를 돌아다녔고, 심지어 저 먼 우주 밖 다른 차원까지 모두 돌아다녀도 찾을 수 없었다.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희망들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여전히 선명한 그녀의 기억을 매번 되돌려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었다. 죽어서 볼 수 있다면 죽는 길을 택할 만큼 그녀가 그립고 그리웠다.
부디…… 부디,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저가 가진 무엇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거 같은데.
그의 절박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는 꼭꼭 숨어 모습을 감추었다.
오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가 그녀의 흔적을 느낀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23년 전, 아주 희미하게 그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기운은 너무나도 미미했고, 답답할 만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느껴지던 기운은 5년 동안 이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크기가 커져 갔다. 그리고 그가 기운이 있는 곳이 어딘지 알기 직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이후 그녀의 기운은 다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이것은 그녀가 내리는 벌일까? 그녀를 잃었다 그를 단죄하는 것일까?
‘그래.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만큼 나를 벌하여도 좋다. 그러니…… 너를 보게 해다오.’
까만 머리 아래로 보이는 그의 맑은 눈이 쓸쓸하고 공허했다.
“약속하지 않았느냐. 나를 보러 오기로, 네 약속하지 않았더냐? 소은아, 이제 그만 나를 용서해다오…….”
그의 낮고 아픈 말들은 야속하게도 허공에서 사라져 갔다.
두근.
그 순간. 절망감으로 온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그 순간에, 그의 귀에 낮게 누군가의 고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그의 몸으로 익숙한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눈빛이 일렁였다. 몇 번을 느껴도 이것은 그녀의 흔적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팔을 한 번 휘둘렀다.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진 그의 몸은, 그 흔적의 기운이 선명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빠르게 도착한 그곳은 불 꺼진 누군가의 방이었다.
그의 앞엔 창문을 닫고 있는 가녀린 여인이 서 있었다. 그는 지금 펼쳐진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살며시 떨려 왔고, 가슴 속이 터질 듯 진동했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느낌, 심장 소리, 열기, 그 모든 것이 소은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만 보는데, 창문을 다 닫은 그녀가 몸을 돌려 섰다. 그리고 마주한 얼굴에서 그는 가슴 안에서 뜨거운 그리움이 솟아올랐다. 그를 바라보는 눈과 단아하고 맑기 그지없는 기운까지, 그녀는 분명 최소은이었다.
그녀는 그를 보고서 놀란 듯 표정을 굳히던 것도 잠시, 이내 그 영롱한 두 눈에서 맑은 눈물을 흘렸다.
그래. 맞았다. 그가 그토록 찾았던 소은이었다. 그는 먹먹하게 울리는 가슴속에서 겨우 한마디를 입으로 끌어 올렸다.
“찾았다…….”
그녀는 여전히 대답 없이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그와 똑같은 감정이라는 것은 오직 그만이 알 수 있었다.
그는 목이 멜 듯한 목소리로 숨 쉬듯 말했다.
“내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소은아…….”
그리고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붉은 입술을 집어삼켰다. 너무나도 그립던 그녀의 입속이었다. 달콤하며 따뜻하던 소은의 체취였다. 그의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해 주던 소은의 심장 소리였다. 그는 더욱 강하게 그녀의 입술을 헤집어 갔다.
그렇게 아득히 그녀를 느낄 때, 순식간에 그녀가 그의 품속에서 쓰러졌다.
그는 품속에서 기절한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꿈만 같아서 믿을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소은의 얼굴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그는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와 그녀를 비추던 달빛이 구름에 가려, 그곳은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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