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구 그놈 내 손으로 죽여 버리지 못한 게 평생 한인데 그놈 씨알머리한테 전쟁담을 들려주라고? 내 몸에는 아직도 그놈의 삽날에 찍힌 상처자국이 있다. 어디 눈 똑바로 뜨고 봐!” 한상권은 옷자락을 부득부득 걷어 올리며 상처의 흔적들을 보여주었다. 준호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혹하여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리구 이 배와 다리엔 북괴군 놈들의 총에 맞은 철환이 아직도 박혀있다. 그러니까 당장 나가! 다신 내 집에 코빼기도 드러내지 마.” 노인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고 이마의 상처는 독기 오른 구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궁지에 빠진 준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엉거주춤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p.38
각목으로도 난타하고 숯불에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로도 벌거벗은 등짝을 때렸다. 쇠꼬챙이가 살갗에 닿을 때마다 찌르륵- 찌르륵- 살타는 냄새가 풍겼다. 모진 고문에 견디다 못해 거듭 실신하던 덕민은 물을 끼얹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중에는 콘크리트바닥에 똥오줌까지 배설했다. 전신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기고 멍이 들었다. 종수와 매질을 하던 순사들도 기진맥진하여 여기저기 너부러졌다. 그러나 이튿날에도 야마토는 한종수더러 덕민을 끌어내어 매질을 하게 했다. 덕민은 걸음을 걷지도 못해 두 순사가 개 끌 듯 질질 끌어왔다. 척추가 부러졌는지 콘크리트바닥에 늘어진 채 일어나지 못했다. 가죽채찍으로 몇 번 내리치자 금방 정신을 잃었다. 반듯하게 눕혀 놓고 콧구멍에 고춧가루 물을 퍼부었다. 한참 캑캑거리더니 다시 졸도하고 말았다. 만신창이가 된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