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가 집에…… 흐윽, 돌아오지 않는 건 다…… 후흑……. 그 여우같은, 흑…… 기집애가 꼬리를 쳐서……. 흐흑, 예전부터 분명히 그 낌새가 보였지만, 흑…… 그래도 키스는 나만을 사랑해 주는…… 흑흑…… 좋은 사람이었는데……! 흐아아앙, 하이델 오라버니, 그 기집애 좀 잡아서 족쳐주세요! 그 기집애가 없으면 키스는 분명 저한테 돌아올 거라고요!”
그러니까.
“결국은, 외도했다는 건가? 키스가?”
“외도가 아니에요, 외도가! 흐아아앙!”
……감히 내게 폭탄을 떠넘기다니, 앨리스.
“몸매만 좋으면 다인가요? 얼굴만 예쁘면 다인가요! 머리카락은 칙칙한 까만색인데다가, 눈도 밋밋하게 파란색이라니, 나보다 나은 점도 없잖아요! 나, 나도…… 나도 조금만 있으면 가슴도 더 커질 거고―”
“캐시 류덴 아스타렌. 말은 좀 가려서 해라.”
“하이델 오라버니, 오라버니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몸을 팔아서 계약을 성사시키려는 천박한 상인 따위보다는 제가 훨씬 더 낫다고! 아아, 키스는 그 여자가 부린 마법에 걸려 버린 거예요! 맞아, 그 기집애가 몰래 키스의 차에 약이라도 섞은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성실한 키스가 이토록 매일…… 매일…… 집에도 안 들어오고……. 흐흑, 으흐흐흑!”
그 말에 하이델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키스 류덴 아스타렌 백작이 집에서 도망가 다른 곳에서 밤을 새고 싶어할 이유를 대라면 서른여덟 개 정도는 쉽게 댈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자는 부인을 버려두고 다른 여자와 놀아날 자는 아니다. 외도를 하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자니까. 그런 자가 외도라고? 그것도 날마다? 그러나 캐시가 망상에 젖어 저 혼자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여자의 용모가 너무나 구체적이다.
설마 정말인가.
……정말이라면 아카데미 시절 동기들에게 뜯어먹은 500딜란은 돌려줘야겠군.
“하이델 오라버니, 제발 도와주세요! 이제는 오라버니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요! 오라버니라면 그 여우같은 기집애가 누군지 알아낸 다음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도록 묻어버리는 것도 가능하시겠지요? 네? 네? 제발 도와주세요, 오라버니! 제가 어딜 가서 또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말을 하지 않을 정도의 머리는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군. 앞으로도 이 문제는 절대로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말도록. 신혼 5개월 만에 남편 쪽의 바람으로 파탄 난 결혼 생활의 주인공으로서 사교계의 화제가 되면 재혼은 생각하기도 힘들게 될 테니까.”
덧붙여서, 키스의 명예도 바닥으로 추락하겠지.
하이델은 아직까지 자신의 그 고지식하지 짝이 없는 동기가 무려 바람이라는 것을 피웠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있다.
“이 일은 내가 조용히 알아보지.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겠는데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도록. 이 일이 타인의 입을 통해 내 귀에 들려오는 일이 있다면 그때엔 내가 책임지고 키스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만들 테니.”
그리고 하이델은 휙 몸을 일으켰다.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캐시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하이델은 마지막에 무언가를 생각해 낸 듯 몸을 틀어 말했다.
“많이 상심한 듯하니 내, 앨리스에게 말을 해서 빠른 시일 내에 들르라 하지.”
‘어머, 역시 상냥하세요, 하이델 오라버니!’ 비슷한 의미를 지닌 탄성이 뒤에서 들려오는 것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샬롱을 나오며 하이델은 천천히 캐시와의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 속에서 뽑아내었던 그 ‘여우’의 신상 정보를 속으로 되읊었다.
잘빠진 몸매.
예쁜 얼굴.
검은 머리.
푸른 눈동자.
백작과 독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권위를 가진 여상인.
찾아주지. 그 도덕 교과서 키스 류덴 아스타렌 백작을 홀린 재주 좋은 여우여.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