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라이헨바흐는 1891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당시 독일의 학문 수준은 서양 문화권에서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철학, 수학, 물리학 등에서 걸출한 학자들이 배출되고 있었으며, 수학자와 물리학자를 포함한 자연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주제가 갖는 철학적 의의에 대해 토론하는 데 거부감이나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다. 라이헨바흐는 이와 같은 활발하고 진지한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베를린대학, 괴팅겐대학, 뮌헨대학 등을 거치며 수리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ck) 등의 지도 아래 수학, 물리학, 철학을 연구했다. 라이헨바흐는 당대의 자연과학자들과 활발한 지적 교류를 나누며 베를린대학을 중심으로 이른바 ‘논리경험주의’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라이헨바흐는 철학이 사변적인 개념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동의하며 상호 협력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지식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나치로부터 추방되기 전까지 라이헨바흐는 베를린대학에서 자연과학적 지식에 적용할 수 있는 확률이론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당시 뜨거운 논쟁의 주제가 되었던 양자역학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진행했다. 나치의 정치적 압력을 피해 1933년부터 터키의 이스탄불대학 철학과 학과장을 5년간 맡은 라이헨바흐는, 이 시기에 자신의 고유한 확률이론과 기호논리학을 체계화했으며 이러한 작업의 결실은 그의 ≪확률론≫, ≪기호논리학 기초≫에 담겨 있다. 미국 철학자 찰스 모리스(Charles Morris) 등으로부터 도움을 얻어 1938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철학과에 재직하게 된 라이헨바흐는, 1953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까지 활발하고 열정적으로 철학적 탐구를 진행했다. 그는 확률이론, 기호논리학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철학 분야에 대한 연구 성과를 근간으로 삼아, 당대 최고의 과학이론이었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통계역학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라이헨바흐는 과학적 지식에 대한 면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서 인간의 인식과 세계의 본성에 대한 유의미한 철학적 귀결들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라이헨바흐가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통계역학을 분석함으로써 얻은 철학적 결론들과 주제들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연구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강형구는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동네에 있는 금정산을 등산하며 자연에 대한 강한 지적 호기심을 느꼈으며, 중학교 3학년 때 자연을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물리학에 매료되었다. 부산과학고등학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흥미를 갖게 되어 2001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 서양철학과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2005년에 학부를 졸업한 후 강원도 홍천에서 육군 통신장교(학사장교 46기)로 근무하면서도 주말이면 틈틈이 홍천도서관에서 공부하며 과학철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전역 이후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논리경험주의자인 한스 라이헨바흐의 상대성 이론 분석을 연구해 2011년에 이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논문 제목은 <라이헨바흐의 구성적 공리화?그 의의와 한계>였다. 석사 학위 이후 현재까지 교육부 산하 준정부기관인 한국장학재단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 논리경험주의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모리츠 슐릭(Mortiz Schlick),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 한스 라이헨바흐 등과 같은 논리경험주의의 핵심 인물들이 구축한 인식론적 성과가 철학사적으로 어떤 의의를 갖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중이다. 전자메일 주소는 hgkang82@hanmail.net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