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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개

길 잃은 개

: 절망 끝에 선 남자의 모터사이클 도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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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5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48g | 146*214*30mm
ISBN13 9788993342420
ISBN10 899334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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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장준영
저자 장준영은 1988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예대 방송영상학과를 중퇴 했다.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과 같은 생각을, 남과 비슷한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도 우주를 건너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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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난 아버지가 몹시 싫었다. 아버지는 나랑 대화할 때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처럼 살지 마라, 네 엄마와 이혼한 이유는 어쩌고저쩌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희망’까지는 아니지만 당신 자식은 잘 살길 바라는 ‘바람’으로 사랑을 왜곡되게 표현하셨다. 조금이라도 삐뚤게 나가려고 하면 그대로 맞았고, 밟혔고, 윽박당했다. 내가 나의 꿈을 가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말 그대로 아버지가 주입한 꿈이 마치 내 꿈인 마냥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이유도 없이 달려야 했다.
난 세상에서 아버지가 가장 무서웠지만 아버지를 신뢰하진 않았다. 그 당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싫었다. 16살 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멋과 이성에 눈을 떴고, 또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아버지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또 조그만 고시원 방에서 ‘삼국지’, ‘초한지’ 등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 멋지고 야망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며 뜬구름을 꾸기 시작하게 되었다.
--- p.30

누군가가 그랬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생의 희노애락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했는데, 내 경험상 그건 아니었고 아버지가 의절하기 전에 말씀하셨던 게 생각났다.
“인생,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으면 마음대로 해봐라. 그 대신 내가 장담할건데, 너는 양아치처럼 살다가, 세상에 이리저리 데이면서 그날그날 하루 막막히 살 것이고 또 그러다가 여자 만나서 애라도 가지면 그때부터 네 머릿속에 지진이 날 거다, 내말이 틀렸는지 봐라. 뒤돌아보고 후회하기엔 인생 너무 짧다 이 새끼야!”
회환의 눈물을 흘리면서 의식을 잃어갔다. 대충 얼마쯤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 현관을 강제로 따고 나를 흔들어 깨웠으나 못 일어났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알고 보니 그녀가 내가 진짜 죽을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던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한 뒤 나는 그녀의 어머니한테 이 사실을 말하였고 그녀의 어머니가 데리러 오기 며칠간의 시간을 그녀와 함께 눈물로 보냈다.
--- p.42

자존심의 승리였다. 타협하지 않았다. 간신히 시동을 걸어 다시 기어 올라갔다. 구간을 넘는 중 해발 3,000m가 넘는 고갯길(pass)도 두어 개 넘었고 중간에 다이너마이트 폭발 현장에서 1시간 남짓 기다린 후 다시 기어갔다. ‘라다크’를 향하여. 어떤 유명한 사람이 라다크를 인류의 마지막 도시라고 지칭했는데, 그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빨리 이 낭떠러지를 벗어나고 싶었다. 마침내 밤 8시가 넘어서 인도 최북단 도시 라다크로 입성하는데 성공하였다. 기뻤다.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된 성취감을 맛보지 못한 상태라 그런지 값진 전리품이었다. 3박4일 간의 정신적, 체력적 사투 끝에 찾아온 휴식. 난 라다크에 매료되어 2주 동안 머물렀다.
--- p.79

이틀간 한인촌을 배회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진 못했다. 또 런던 시내 중심가에 있는 십여 곳의 한인 레스토랑에 방문했지만 그곳역시 거절당했다. 내가 한 행동의 대가가 이리 가혹한지는 정말 몰랐다.
그들을 욕하고 저주했으나, 그들의 발끝도 따라가지도 못했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갈 때까지 다간 심정으로서 뒤에서 칼이라도 쑤시고 싶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너무 절박했지만 일이 잘 풀리진 않았고 생각한대로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걸 한국이 아니라 이곳 영국에서 뒤늦게 깨달았다. 인도에 있을 때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컸고, 힘없는 현실에 무척 화가 나다가도 인정하고 포기하려던 여섯째 날 전 식당에서 같이 일했던 경우 형한테서 연락이 왔다.
--- p.161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남들과 똑같이 공부를 하고, 생각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끝이 어딘지도 또 궁금하지도 않고 살다가 그렇게 죽어간다.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너는 그 끝도 궁금해 했고 또 그 끝에 가보았으니 이미 가슴 속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품고 있다. 그 ‘어떤 것’이 무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너만의 방법으로 그 ‘어떤 것’을 꺼내어 쓸 수 있으니 초조해 하지 말고 두려워 말라. 이미 인생의 나침판을 네가 들고 있으니, 길을 잃거나 잘못 들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것을 사용하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 p.173

여행의 목적은 자신을 비우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난 이미 여행 1막, 2막에선 살아남았으며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승리자였다. 제 3막에서만 잘 마치면 내가 쓰는 유라시아 역사에서도 승자로 남겨질 것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절실함을 최고의 무기로 모든 역경과 난관을 무식하게 부딪쳤으며, 부딪히는 과정 중 파생된 ‘인연’들의 도움으로 잘 이겨냈다. 사람들한테는 스스로 이겨냈다고 건방떨었지만 실은 혼자서 한 게 아무 것도 없었으며, 사람들을 싫어한 척 했으나 사람들을 그 누구보다도 그리워했다.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은 ‘반증’이었다. 사람을 떠났지만 만났고 상처받았었지만 사랑받았다.
--- p.194

현관문을 닫고 나와 바이크가 있는 뒷마당에 갔는데 Senad와 그의 아들이 내 바이크를 세차하고 있었다. 새벽 6시 30분이었다. 분명 내가 알기론 그들은 7시 30분이 지나 일어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그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왠지 몰래 갈 것 같아서, 우리가 크게 해줄 것은 없고 새로 산 바이크를 타고 가는 기분이라도 줄려고 닦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 감동에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또 헤어짐의 순간을 비겁하게 피하려 했던 나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주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한 뒤 Senad와 그의 아들에게 포옹을 한 뒤 바이크 위에 앉았다. 이제 다시 떠나는 것이었다.
--- p.243

해안 절벽 끝에 앉아 북극해를 바라보며 지난 1년간의 여정을 되새겼다. 구원이던 행복이던 무언가를 얻으려고 했지만 사실은 얻은 게 하나도 없었다. 단지 무언가를 비워 냈을 뿐. 얻음이 아니라 무언가를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 뚫린 것처럼 허했지만, 그 뚫린 구멍으로 북쪽의 바람이 관통해 나가니 시원했다. 시원했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구멍 난 가슴 속에서 숨겨져 있던 씨앗을 보았다. 그것은 행복이었다. 이미 행복은 가슴 속에 내가 지니고 있었는데 그 행복이 내안에 있는지도 모르고 행복의 향기를 찾아 세상을 이곳저곳 떠돌아 다녔던 것이다. 나는 이미 이 세상의 끝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놈이고, 이 끝에 오기 전까지 길 위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니 후련했다. 그리고 웃으며 내려갔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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