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게, 자네가 이렇게 살아 올 줄 알았으면 ....... 다 팔자라고 생각해 주게.' 이 때 까치가 울었던 것이다. 까작 까작 까작 까작 하는, 어머니가 가장 모진 기침을 터뜨리기 마련인 그 저녁 까치 소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 나의 팔다리와 가슴 속과 머리끝까지 새로운 전류(電流) 같은 것이 흘러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까작 까작 까작, 까작 그것은 그대로 나의 가슴 속에서 울려 오는 소리였다. 나는 실신한 것같이 누워있는 영숙이를 안아 일으키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그녀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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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넨 손가락 얘길 하고 있군. 나는 현실 얘기를 하는 거야. 손가락 두 개가 어떻단 말인가? 이까짓 손가락 몇 개쯤이야 아무런들 어떤가? 현실이 문제지. 그렇잖은가? 그렇다, 정순이가 이미 결혼을 한 줄 알았더면 나는 이 손을 들고 돌아오진 않았을 거야. 자넨 역시 내가 손가락 얘길 하는 줄 알고 있겠지? 그러나 그게 아니라네. 잘못 살아 돌아온 내 목숨을 얘기하고 있는 걸세. 이제 나는 내 목숨을 처리할 현실이 없다네. 그래서 정순이를 만나야 되겠다는 걸세. 이왕 이 보기 흉한 손을 들고 돌아온 이상 정순이를 만나지 않아서는 안 되네. 빨리 대답을 해 주게.'
'정 그렇다면 하루만 여유를 주게. 자네도 알다시피 나 혼자 결정할 문제도 아니겠고, 우선 당사자의 의사도 들어봐야 하겠지만 또 부모님들이 뭐라고 할 지, 시하에 있는 몸으로서는 부모님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는 문제겠고, 그렇잖은가?'
나는 상호의 대답하는 내용이나 태도가 여간 아니꼽지 않았으나 지그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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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申時) 말(末)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단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만적의 머리 위로는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염불을 올리던 중들과 그 뒤에서 구경하던 신도들이 신기한 일이라고 눈이 휘둥그래져서 만적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 이때부터 새전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그 뒤 삼 년간이나 그칠 날이 없었다. 이 새전으로 만적의 타다가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을 짓고 섯대를 쌓았다....
원혜대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맘속으로 이렇게 해서 된 불상이라면 과연 지금의 저 금불각의 등신금불같이 될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부처님(불상) 가운데서 그렇게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아로새긴 부처님(등신불)이 한 분쯤 있는 것도 무방한 일일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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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불(等身佛)은 양자강(揚子江) 북쪽에 있는 정원사(淨願寺)의 금불각(金佛閣)속에 안치되어 있는 불상의 이름이다. 등신금불(等身金佛)또는 그냥 금불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 이 등신불, 등신금불로 불리워지는 불상에 대해 보고 듣고 한 그대로를 여기다 적으려 하거니와, 그보다 먼저, 내가 어떻게 해서 그 정원사라는 먼 이역의 고찰(古刹)을 찾게 되었었는지 그것부터 이야기 해야겠다.
내가 일본의 대정대학 재학 중에, 학병(태평양 전쟁)으로 끌려 나간 것은 일구사심(1934)년 이른 여름, 내 나이 스물 세 살 나던 때였다. 내가 소속된 부대는 북경(北京)서 서주(徐州)를 거쳐 남경(南京)에 도착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부대가 당도할 때까지 거기서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에 주둔(駐屯)이라기보다 대기(待機)에 속하는 편이었으나 다음 부대의 도착이 예상보다 늦어지자 나중은 교체부대(交替部隊)가 당도할 때까지 주둔군(駐屯軍)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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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금불을 보고 나서 괴로워하는구나?'
했다.
나는 고개를 수그린 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너 금불각에 있는 그 불상의 기록을 봤느냐?'
스님이 또 물으시기에 내가 못 봤다고 했더니, 그러면 기록을 한번 보라고 했다. 이튿날 내가 청운과 더불어 아침 인사를 드릴 때 원혜대사는, 자기가 금불각에 일러 두었으니 가서 기록을 청해서 보고 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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