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자로 일하는 가운데서도 고전에 눈을 돌린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내 영혼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자로서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들으면서 취재하고 보도해야 하는데, 나름대로 판단의 중심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상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을 바로 고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수많은 출판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진정한 지혜로 초대하는 책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책은 오히려 영혼의 칼을 무디게 만들 뿐이다. 잡초같이 많은 서적들 중에서 지혜의 샘물이 되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은 결국 고전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p.7
《오디세이아》와 《아이네이스》를 통해 본 오디세우스와 아이네아스의 인생유전을 보면 승자와 패자, 행운과 불운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함을 절감하게 된다. 이렇게 사소한 차이는 역사상 많은 인물들이 보여준 바와 같다. 조선을 건국했지만 아들 방원에게 사실상 쫓겨난 태조 이성계나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나폴레옹 등 많은 인물들이 행운과 불운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감상을 낳는다. 정 회장은 평생 자신의 노력과 행운의 후원을 바탕으로 거대 재벌을 일으켰지만, 말년에는 험한 꼴을 당했다. (…) 행운과 불운은 권력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무차별하게 대한다. 그러니 이제 여기서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불운이 쌓이면 어느덧 행운이 되고, 행운이 쌓이면 다시 불운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 pp.40~41
그리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한동안 번영의 시대를 구가한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시기가 지난 뒤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진영으로 나뉘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른다. 이후 그리스의 힘과 문화도 점차 쇠퇴의 길을 걷더니 끝내 공화국 로마에 복속된다. 그리스 문명을 계승한 로마제국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반면 당시 야만족 취급을 받았던 서부 유럽은 오늘날 문명의 중심지로 우뚝 서있다. 하지만 그들의 위치도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고 볼 수 있다. 헤로도토스가 오늘날 살아난다면 현재 부강한 나라들도 역시 언젠가는 쇠락하고 만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 그렇다면 지금의 약소국도 희망을 버리지 말 것이며, 강대국 역시 좀더 겸허해질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