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4대 스타작가 중 하나인 미셸 브로도의 문제작
소설은 시작 부분부터 어두운 서스펜스가 넘쳐난다. 주인공이자 기자인 알리오샤는 파리 근교 뫼동의 숲속에서 한 아랍인이 인간 사냥을 당해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근처의 벨뷔 병원에서는 미셸 사라스트르 박사가 갖가지 의심스러운 의학실험을 행하고 있다. 그는 유명인사나 영화배우들에게 성형수술을 하여 젊음을 되찾아주는 대가로 큰돈을 번 인물로, 20세기 초 세계 최초로 동물의 기관을 인체에 이식하는 데 성공한, 특히 늙은 남성을 회춘시킬 목적으로 원숭이 고환을 인간에게 이식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세르주 보로노프 박사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자이다. 사라스트르는 인간을 조작과 통제가 가능한 기계로 보고 갖가지 이식수술과 유전학적 실험을 행해왔다. 『야간신문』의 사건 취재기자 알리오샤가 현장에 잠입하여 사라스트르 박사의 비리를 캐내기 위해 잠복수사를 시작한다.
알리오샤는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사라스트르 박사의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인 캉탱 프레보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제공받는다. 그 둘은 아버지 대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로, 아버지들은 동등한 동업자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캉탱의 대에 와서는 사라스트르 박사에게 종속되어 종처럼 부려지는 관계이다. 한편, 알리오샤는 주목하는 또다른 인물은 다미앵이라는 열여덟 살 청년이다. 빼어난 외모에 머리가 비상한 다미앵은 사라스트르 박사의 사생아로, 어렸을 때 박사에 의해 R13이라는 약물에 노출됨으로써 거의 죽을 뻔하다가 회복된 뒤 남들이 갖지 못한 매우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에 대해 정확하게 얘기하고, 전혀 배운 적이 없었던 인물이나 사물에 대해 얘기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알리오샤가 사라스트르 박사의 기이한 실험과 주변인물들을 탐방하는 데 골몰해 있는 동안 ‘바야르’라는 ‘얼굴이 없는’ 환자가 입원한다. 그는 사교집단 ‘녹색광선’의 고위급 인사로, 조직 내 복수극에 희생되어 안면이 거의 훼손되는 사고를 당한 뒤 얼굴 전체를 이식받기 위해 벨뷔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다양한 인물의 등장으로 사건은 더욱 다각화되어간다.
육체가 복제되는 이 시대에 영혼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영혼을 만질 수 있는가?
다미앵 곁에는 동갑내기 친구로서 그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사라스트르 박사의 막내딸 에르미온이 있다. 다미앵이 사라스트르 박사의 사생아라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비밀에 부쳐지고 있는 것처럼, 에르미온 역시 실은 사라스트르 박사의 아내 엠마가 캉탱과 관계하여 낳은 딸이라는 사실 역시 비밀에 부쳐져 있다. 다미앵은 자신을 향한 에르미온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동성인 카프리와의 육체적 사랑에 탐닉한다. 알리오샤는 자신의 집에 컴퓨터를 설치해주러 온 다미앵에게 흥미를 느끼고, 이후 컴퓨터를 통해 다미앵의 일기에 몰래 접근하여 그의 내적 갈등들은 물론 그가 카프리와 함께 나누는 동성애적 쾌락들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 동성애적 쾌락에 탐닉하기는 에르미온 역시 마찬가지다. 빼어난 미모를 갖춘 에르미온은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지만 동시에 무용 선생, 여자친구 마린과의 동성애적 쾌락에 탐닉한 적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리오샤는 캉탱과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 캉탱 역시 젊은 시절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을 때 사라스트르 박사로부터 온갖 동물들의 기관을 이식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후 캉탱은 동물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나무와 말을 하게 되었으며, 때로는 이식된 기관들이 내는 소리도 들었다는 것. 자신의 몸에 이식한 동물들의 기관이 받았던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자신도 받았다는 것이 캉탱의 말이다. 그는 알리오샤에게 사라스트르 박사의 악행을 낱낱이 폭로하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 사라스트르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어. 사라스트르는 이단자야. 도덕적으로 타락했고, 과학자로서 자격이 없는 인간이라고. 현대의 사악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지. 기술의 발달은 변질되었고, 모든 것이 부패했어.”
실제로 사라스트르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화학적이고 물리적인 실체이고, 자신은 마치 신처럼 그 실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시험관 아기나 아기의 성별 선택 또는 인간복제의 경우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사라스트르는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정신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인간 정신의 지배자, 죽음의 지배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알리오샤는 자신의 여자친구이자 사진작가인 래티시아로부터 사라스트르 박사, 에르미온, 다미앵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서 취재를 장기화할 결심을 하고 뫼동에 눌러앉는다. 그 또한 자주 들르는 카페에서 야스미나라는 모로코 처녀를 소개받고는 그녀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준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 그녀와의 육체적 쾌락에 빠져든다. 그러는 사이 바야르는 안면 이식 수술에서 회복되어 라틴 계통의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의 ‘안테노 몽테레’라는 인물로 거듭난다. 그는 ‘녹색광선’을 대표하여 사라스트르 박사에게 비밀스러운 제안을 한다. 인간의 영혼을 채집하여 다른 인간에게 이식하는 방법을 알아내라는 것이다. 사실, 사라스트르 박사는 오래 전부터 인간 영혼의 문제에 탐닉하고 있었다. 사라스트르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그 순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영혼은 어떤 형태를 갖고 있을까? 색깔이 있을까? 냄새가 있을까? 하나의 이미지처럼, 영혼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붙잡아 고정시킬 수 있을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영혼은 전설적이고 신비로운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감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닐까? 현재까지는 충분한 기술적인 방법이 없어서 직관적으로만 감지하고 있지만, 점점 더 그 비밀이 밝혀질 현실적인 존재가 아닐까……?
그러나 아랍인 실종 사건을 수사하러 온 형사 갈라르딘의 활약으로 벨뷔 병원 전체가 압수 수색을 당함으로써, 상황은 급반전된다. 벨뷔 병원은 당분간 문을 닫고 사라스트르 박사는 아내와 에르미온을 데리고 태국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다. 그 와중에 캉탱 프레보는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알리오샤는 신문사로부터 태국 특파원 발령을 받아 다미앵을 데리고 역시 태국으로 떠난다.
사라스트르 박사는 ‘녹색광선’ 측에서 제공해준 연구소에서 딸 에르미온과 함께 지내며 연구를 계속하고, 알리오샤와 다미앵은 태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관광산업이 되다시피 한 미소년들과의 섹스에 탐닉한다. 그러던 중 다미앵은 에르미온과의 관계에서 실패했던 이성과의 육체적 관계에 성공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에르미온과 감동적인 해후를 한다.
한편 ‘녹색광선’ 측이 연구 성과를 물으며 압력의 손길을 점점 더 조여오자, 사라스트르 박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든 연구 결과가 담긴, 인간의 영혼을 담은 수십 개의 종이봉투들과, 다미앵과 에르미온은 서로 피가 섞이지 않았으니 마음 놓고 사랑할 것이며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주라는 유언을 남긴다. 에르미온과 다미앵은 사라스트르 박사의 유언에 따라 태초의 인간의 꿈을 찾아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다.
과학의 전능성과 인간의 자유에 관한 파우스트적 소설
『원숭이 해석』은 어떤 소설이라고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과학소설, 고딕소설, 판타지 소설, 혹은 SF소설로도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장르 구분 또한 애매하다. 그러나 이 소설이 이 시대에 이토록 비상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인간 육체와 영혼의 미스터리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성형과 이식수술을 통해 인간의 외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이 시대에 진실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 인간을 물리적 화학적 실체 또는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할 수 있는 순수한 기계로 보고 온갖 유전학적 실험을 자행했던 사라스트르 박사가 종국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인간의 영혼이다. 인간의 영혼을 손에 쥐고 좌지우지하고자 하는 엄청난 시도 그리고 이식수술과 성형수술을 통해 영원한 젊음을 누리려는 욕망 속에서 우리는 ‘파우스트적 고뇌’라는 매우 고전적인 테마를 목도하게 된다. 이 시대는 분명 과학적으로 진보하고 있지만 동시에 광기에 휩싸여 있다. 미셸 브로도는 활기찬 문학성으로 인간에 대한 거대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그는 과학윤리, 파우스트 신화, 현대사회에 팽만한 젊음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메스를 들이댄다. 동성애, 마약, 해킹, 섹스관광 등 흔들리는 이 시대를 증명하는 갖가지 요소들과 현대사회의 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이 거대한 패치워크는 모든 주제를 아우른다. 『원숭이 해석』은 인간의 광기와 죄성의 고발 그리고 현대과학의 한계에 대한 성찰이라는 첨예하고도 본질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과학만능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매우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