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무슈 린의 아기 』에서 아시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단 아시아인인 무슈 린 때문만이 아니라 작품 전체에 아시아의 느낌에 배어 있습니다. 아시아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지요?
저는 여행을 많이 합니다. 즐거움을 위해서, 또 일 때문에도요. 저는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를 좋아합니다. 동남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됐으며 뜨거운 애정도 갖고 있죠. 이런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우리 딸 덕분입니다. 우리는 딸아이를 사이공에서 입양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 됐을 때요. 저는 베트남, 캄보디아와 아주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무슈 린은 전쟁의 포화를 피해 망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나라는 끝까지 언급되지 않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선 이 책이 단지 하나의 문학적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노인(무슈 린)의 국적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같은 이유에서 그가 망명한 나라의 이름도 언급되지 않았죠. 세계 각국의 독자들로부터 반응이 있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에게는 노인이 내린 항구가 시드니처럼 느껴지고, 독일인에게는 함부르크, 프랑스인에게는 마르세이유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단서는 전혀 없고, 단지 그곳이 서양의 어느 항구 도시라는 것만 알 수 있죠. 저는 이 책에 일종의 보편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막연한 느낌을 고수했습니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잔잔하고 음악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 역시 아시아적인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까?
이 책을 써 내려가면서 저 자신도 등장인물의 잔잔함, 특히 노인의 평온함에 젖어 들었습니다. 시간에 대한 동양인의 관념은 우리와는 매우 다릅니다. 기억에 대한 그들의 관념, 또 고통에 대한 관념 역시 다르죠. 특히 끔찍한 기억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우리와는 아주 다릅니다. 저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크메르 루즈 치하의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거기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들을 때마다 놀라곤 합니다. 베트남인들은 또 미국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반면, 우리 유럽인들은 갈등이 남아 있도록 매우 애쓰는 것 같습니다. 불운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조차 동양인은 평온합니다. 그 태도가 어찌 보면 아주 수동적이기까지 하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노인의 캐릭터를 단순하고 순진하게 설정했습니다. 망명자들의 운명을 한번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망명자들 대부분은 하루아침에 자기 논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농부들입니다. 낯선 풍경, 낯선 냄새와 낯선 맛이 가득한 곳으로 순식간에 뛰어든 것이며, 눈에 익지 않은 얼굴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죠. 저는 이 책을 아주 단순하고 시적으로 끌고 가고 싶었습니다. 구조가 다소 복잡했던 전작『회색 영혼 』과는 대비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두 남자의 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둘의 대화는 침묵과 시선의 대화이며 말은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 진정한 이해와 소통은 단어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의식적으로 단어를 배제함으로써 소통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글을 쓸 당시에는요. 그런데 소설이 완성되고 보니 그런 효과가 확연히 드러나더군요.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제 작업의 첫 번째 도구는 역시 단어입니다. 단어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는 것을 좋아하죠. 나아가 물리적 단어 너머에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나 자신을 끝까지 몰아가기도 합니다. 영화나 그림을 볼 때도 눈앞에 있는 스크린 프레임의 바깥에 있는 그림을 즐겨 상상합니다. 언어에 있어서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침묵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단어와 단어 사이의 작은 틈들이죠. 둘째, 이 책은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정에는 실상 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장애 아동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비언어적인 대화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완전 귀머거리 아이도 있었고, 안면 마비 아동도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언어를 쓰지 않고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어요. 말이 통하지 않지만 서로 대화하는 이 두 남자는 서로 언어가 통해도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에 독특한 은유를 형성합니다. 밤새도록 인터넷 채팅을 한다는 사람들이 놀랍습니다. 대화하는 상대방을 전혀 알지 못할뿐더러 거리에서 만난다면 서로에게 단 몇 분도 할애해주지 않겠죠. 우리 사회는 진정한 소통이 가상의 소통에 패배한 사회입니다.
이 책에서 그런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하고자 했습니까?
저는 이론을 중시하는 작가도 아니고, 남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글을 쓰지도 않습니다. 글을 쓸 때 다음 두 가지를 매우 조심합니다. 우선 어떤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책을 쓰지 않습니다. 둘째, 스캔들을 일으키기 위해 글을 쓰지 않습니다. 저의 일은 이야기를 쓰는 것일 뿐입니다. 동시대 문제들에게 대해 관심을 유도하고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는 이야기를요. 저는 문학의 힘을 믿습니다.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일깨우고 감동시키는 문학의 힘을 말입니다.
독자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독자 편지를 받을 때마다 정말 놀라곤 합니다. 책을 쓸 때는 혼자입니다. 철저히 혼자죠. 하지만 책이 나오고 나면 갑자기 수천 명의 사람들과의 강한 연대감이 생깁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며, 아마 앞으로도 만날 기회는 없겠지요. 책이라는 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로 뻗어나가는지 보면 참 신기합니다. 놀라움 그 자체죠.
-'프렌치 북 뉴스'와의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