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5년 08월 25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60쪽 | 672g | 145*210*30mm |
ISBN13 | 9788960902367 |
ISBN10 | 8960902365 |
발행일 | 2015년 08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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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60쪽 | 672g | 145*210*30mm |
ISBN13 | 9788960902367 |
ISBN10 | 8960902365 |
서문 비밀의 섬 내가 잠에서 깰 때 그건 여름날의 더딘 땅거미처럼 왔어요 나는 그저 타고난 대로의 나를 나타내지요 군중은 환상 그러나 나는 꿈을 더 선호해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시간은 본질적인 수수께끼 나는 늘 낙원을 도서관으로 생각했어요 악몽, 꿈의 호랑이 나는 항상 거울을 두려워했어요 후기 옮긴이의 말 보르헤스 작품 목록 찾아보기 |
189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시인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환상적 사실주의에 기반한 단편들로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이다. 당대 세계 문학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작품 중 <알레프>와 <픽션들>을 접하고 몽환적이고 묘한 감정이 들었으나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던 그런 경험을 했던지라 <보르헤스의 말>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이 책은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으로 보르헤스의 회고이며 문학과 죽음 등에 관한 그의 견해를 담고 있다.
보르헤스는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를 이어 4대째 약시였는데 국립도서관장으로 재직할 당시 처음엔 글자 없는 책에 둘러싸이고, 친구들 얼굴을 잃어버리고, 끝으로 거울 속에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결국 시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맹인이 보는 암흑을 보며"라고 말했는데
그가 잘못 안 거예요.
맹인은 암흑을 볼 수 없어요.
나는 희뿌연 빛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답니다.
존재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건 너무 당황스러울 일이다. 어쩌면 절망적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보르헤스는 여든이나 되었다. 작가의 고독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보르헤스의 말>에는 그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키워드가 등장한다. 꿈, 거울, 수수께끼, 미로, 시간, 죽음, 망각 등 이 모든 키워드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흐름이 마치 하나에서 나온 것 같다. 보르헤스의 시간은 늘 현재이다. 그는 시간 너머의 세계를 두 번 경험해 보았고 시간 너머의 그곳에서조차 시간은 결코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기에. 보르헤스의 범신론적 색채가 짙은 그의 세계관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나는 불멸을 위협적인 것으로 여기는데,
사실 그건 허망한 생각이에요.
아무튼 나는 개인적으로 불멸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해요.
그리고 죽음은 행복일 거라고 여긴답니다.
망각보다, 잊히는 것보다 줗은 게 어디 있겠어요?
이게 바로 죽음에 대한 내 생각이에요.
보르헤스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즐겨 읽었단다. 그래서인지 단편집 <픽션들> 의 '피에르 메나르-돈키호테의 저자'를 통해 돈키호테를 다시 썼다. <보르헤스의 말>에서 돈키호테의 모험을 형용사에 비유하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현재 아들과 함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중이라 유익한 토론거리가 될 것 같아서 잘 메모해 두었다. <픽션들>의 '피에르 메나르-돈키호테의 저자'도 읽어 줄 예정이다.
돈키호테의 모든 모험은 형용사일 뿐이에요.
모험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죠.
보르헤스의 세계에 심취하다 보니 우리나라 SF계의 신예 작가 김초엽이 오버랩되었는데 김초엽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며 보르헤스의 단편집 <알레프>가 떠올랐던 것처럼 말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측이냐 하겠지만 SF와 환상문학의 공통분모가 내 눈엔 보인다. 아니라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옮긴이의 말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적어도 보르헤스에게만큼은
책 속의 세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었다는 것이
단순한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었다는 것을 실감 나게 느낄 것이다.
보르헤스만큼 삶과 책이 하나로 인식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
아래의 보르헤스의 말에서도 두 작가가 오버랩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건 청각장애와 시각장애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쌩뚱맞게 쿤데라의 이마골로기가 또 꼬리를 물고......
작가가 뒤에 남기는 것은 자기가 써온 글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라는 거죠.
그게 써온 글에 덧붙여지는 거예요.
많은 작가들의 경우 각각의 글은 빈약할 수 있으나
그 총합은 작가가 남기는 자신의 이미지인 것이죠.
보르헤스의 매력에 푹 빠져 한참 동안 행복했다.
1980년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여든의 나이로 대담을 위해 뉴욕, 시카고, 보스턴을 여행했다.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군중이라는 것은 환상이에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당시 눈이 먼 보르헤스에게 ‘말’은 유일한 소통 방식이었다. 그에게 말하기는 글쓰기 못지않게 내밀한 언어 형식이자 세상과의 통로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본 시인이자 철학자 윌리스 반스톤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예전의 사상가와 철학자들은 생각이 움직이는 것이어서 파도 위의 잉크와 마찬가지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 남겨진 현자들의 기록은 대부분 그 시대에 우연히 그들의 말을 받아 적고 기록하게 된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반스톤은 보르헤스와 나눈 대화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사유와 정신을 발견했고, 이를 하나의 작품처럼 남겨두고자 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받아 적던 플라톤을 자처하며 직접『보르헤스의 말』을 엮었다. 그의 말마따나 “보르헤스의 생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보르헤스의 말』은 그가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그는 인터뷰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아론과 영지주의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의 말이 하나의 주장으로 굳어질까 염려하여 ‘오늘은 그래요’ 라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아, 그럴지도 몰라요. 오늘은 영지주의자, 내일은 불가지론자이면 어때요? 다 똑같은 거예요.” 이런 식의 불분명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호성, 사실과 허구 사이의 틈새라는 우주적 수수께끼를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