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도 오후나 밤 심지어 새벽 두 시(포커꾼들은 이때가 한창 끗발이 오를 때였다)에 일터로 나갔고 자발적 휴무는 3년 전 11월의 하루가 유일했다. 그날 창가에 서 있다 말고 바다를 보겠다고 아바연에서 걸어 나왔다. 동해의 밤은 적막하고 거대했다. 주방을 등지고 앉은 조한도는 새벽 세 시 이후까지 검푸른 밤바다를 응시했다. 조한도는 별 다른 걸 알아낼 수 없었다. 살아야 할 이유도 살지 말아야 할 이유도. 계산서를 보고서야 해산물의 경우 현지나 서울이나 그게 그 값인 걸 확인하고 이마를 쳤다. 다음 날 모텔의 2인용 침대에서 두리번거리며 일어난 그의 휴대폰에 부사옥의 문자가 와 있었다. ‘들어오지 마라’ 그럼에도 그날 밤 집에 들어가자 부사옥은 튼튼한 식탁에 2홉 소주와 김치 사발을 놓고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공포의 대상, 조여 오는 불안의 근원과 맞닥뜨린 순간 조한도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는 듯했다. 그 시간은 지나갔고,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지나가지 않으면 교도소에 갇힌 죄수는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겠는가? 그는 일회적이고 사소한 것에서 영원하고 근원적인 것을 유추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특이한 능력이었다. --- 〈옛날에 배우〉 중에서
“이왕 물 튼 거 머리까지 감고 나오지 꼬라지가 그게 뭐여.”
“나가기 전에 감을 거야.”
“으이그 더러워서 못 봐주겠네.”
“더럽다니?”
“거울 한번 봐. 꼬라지가 어떤지.”
“이따 씻을 거라 그랬잖아.”
“잘도 씻겠다.”
이만하면 일 라운드는 끝났다고 보고 조한도는 신문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은 간이 옷장과 좁고 딱딱한 침대가 놓여 있을 뿐, 그리고 쓰잘 데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찬 다락이 붙어 있을 뿐, 그저 공간이라고 불러야 합당한, 아주 좁은 장소였다.
“신문은 왜 못 끊어. 밥이 나와 쌀이 나와. 아파트 시세표나 들여다보면 뭐하냐고? 진작 팔아먹은 아파트, 그게 다시 돌아오기라도 해? 내, 아파트는 꿈도 안 꾼다. 전세 한 번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달마다 나가는 월세, 그거 어쩔 거여. 3개월 밀린 거 어쩔 거냐고?”
부사옥이 방탄 문에다 대고 길게 퍼부었다. 지난 여름날 아침, 아바연 고객이기도 한 신문 지국장이 새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빛나는 그 증정품을 신규 구독자의 자제인 조진에게 수여했을 때, 부사옥도 하늘거리는 물빛 원피스 차림으로 현장에 있었다. 지금 그 사실을 환기시킨들 어떤 이득이 있겠는가? 조한도는 잠자코 신문에 코를 박았지만 글자가 어른거려 도통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아침이면 워밍업 삼아 읊어 보는 5분 생활영어조차 따라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영국에 가서 햄릿을 봐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밀린 집세라. 그래, 저번에 그가 가게 세까지 미뤄가며 갖다 준 돈을 덜컥 통장에 넣더니, 우리은행이 빼갔다고 했지. ‘조심하라 했잖아.’ 그러니까, ‘아, 내가 내 돈 써서 신용불량 된 거야? 니가 사업한답시고 그 지랄해서 남 신용불량 만들어 놓은 거 아냐? 니 하나 거지 되면 그만이지 마누라까지 마트에서 콜드크림 하나 못 사게 만들어 놓을 게 뭐람. 이게 다 누구 탓이야. 그 멀쩡하던 통장을 왜 은행이 탐을 내냐고.’ 하고 도로 역정을 내었다. 그 돈 85만 원이면 두 달 치 집세 80만 원을 내고도 조진까지 세 식구가 삼거리의 ‘사또 왕갈비’에서 돼지갈비를 마음껏 뜯을 수 있었다. 참 조한도는 45세, 부사옥은 43세였다. 한 번은 ‘내가 너하고 나이가 같다’고 부사옥이 우기기에 ‘그래라’ 하고 대답해 주었다.
조한도는 이 집을 나서기 전에 거실에 걸린 대형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은 부사옥, 조진, 조한도 순으로 자주 이용했다. 부사옥은 두세 가지 표정을 지으며 살짝 몸을 틀어 가슴과 힙 라인을 자주 보고 조진은 눈에 힘을 준 채 이마에 주름을 잡고 머리를 이리 넘겼다 저리 넘겼다 한다. 조한도는 오늘도 차렷 자세로 서있다 이내 돌아섰다. 꼬라지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원 원장이 이보다 멀쩡하면 기생오라비지, 그는 옷걸이에 각 지게 걸어둔 검은 외투를 잘 벗겨내 입었다. 나가면서,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변기에 앉아 있는 부사옥에게 한 마디 해주었다.
“아침마다 날 들들 볶아서 얻는 게 뭐야. 왜 날 붙들고 분풀이를 하냐고? 내가 그렇게 바보로 보여?” 그러자 부사옥은,
“내가 틀린 말 했어? 틀린 말 했냐고?” 하고 앉은 채로 대들었다. 조한도는,
“아, 참 뭐 같다. 똥이나 실컷 싸라.”하고 현관문을 쾅 닫고(이 대목에서 3층 여자가 커피를 쏟을 뻔했다) 나왔다.
“나가 죽어!” (중략)
돈뭉치를 부사옥의 발치에 던지는 건 조한도 평생의 꿈이었다. --- 〈옛날에 배우〉 중에서
조한도는 계단을 다 내려오기 전에 무서운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성인이 되리라’ 그는 그동안 수없이 마음을 ?잡고, 관대한 척 때론 대수롭잖다는 듯 그녀의 맹공을 흡수하고 슬쩍 비켜가 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게을러터져 가지고’ ‘꼴에 사내라고’ ‘잘하는 게 뭐야’ 같은 한마디에 그만 무너져 내리거나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매번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해도 소용없었다.
해결책은 성인(聖人)이 되는 길에 있었다. 성인의 마음만이 상처 받지 않고 부사옥의 광기를 감당할 수가 있다.
‘성인 앞에서 그녀의 악다구니는 바람처럼 흩어지고, 사나운 표정은 묶인 개가 짓는 두려움에 다름 아니며, 자기 가슴을 두들기는 자학은 잔잔한 동정을 불러일으킬 따름이라. 오, 불쌍한 여인! 그대는 잔인한 운명의 희생자요 대지의 고통 받는 딸이로다. 내게서 위안을 찾으라. 사람의 모습을 한, 네 남편처럼 보이는 나를 욕하고 헐뜯으며 괴롭히고 저주하여 마침내 가슴속 맺힌 한을 다 쏟아내고 정화되어라. 나는 가여운 그대를 받아들이리라. 여인이여, 그대는 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 그대, 죄인이여!’
이것은 기원전 어느 고매한 시인의 노래인가 하시겠지만 실은 조한도의 창작품이다. 한 시절 셰익스피어 극에 수차례 출연한 바 있는 조한도가 이 정도 대사를 읊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볼 수 없었다. ‘대사는 잘 외워’ 이것이 연극계가 조한도에게 내린 당시의 평가였다.
‘성인’은 하루아침에 떠오른 생각이 아니었다. 조한도는 이 생각이 발화할 시기를 노리고 있던 차, 나날이 말씀의 거름을 주어 오던 부사옥이 오늘 기름 한 방울을 추가로 부은 것이었다. 그는 어차피 성인이 될 운명이었다. 부사옥은 그를 시험하려 이 세상에 왔겠지만, 오히려 그의 행로를 밝혀 주는 역할을 맡기에 이르렀다. 결국 부사옥은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한 여인으로 귀착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그렇듯 또 어떤 더러운 동네의 여편네가 그렇듯 말이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미천한 존재는 결코 아니었다. 위대함의 영광을 밝히고자 횃불을 들고 있는 회랑의 참한 기둥들이었다. --- 〈옛날에 배우〉 중에서
조한도는 성인의 걸음걸이와 행동에 대해 숙고해 본 바, 행동의 신중함은 말할 것도 없고 걸음걸이 또한 길에 떨어진 동전을 주우려는, 음험한 비밀로 낯이 달아올라 고개를 푹 숙인, 거의 엎어지려는 모양새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마땅했다. 목표는,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본연의 사상과 인품이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인위적이나마 자세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무대를 떠난 지 10여 년 만에 고전극 전문 배우의 고상한 자태가 거의 마모되어 버렸던 것이다. --- 〈스타와 차 한 잔〉 중에서
남이 안 보는 데서 틈틈이 그리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 이는 성인으로 가는 도정에 있는 자들의 통과의례이다.
수양이 깊어지면 몰아의 상태에서 그저 알을 닦고 앉아 있기도 한다. 스피노자가 종일 렌즈를 닦듯이. 돌이켜보면 아무 생각 없이 그 비슷한 행위를 한 적이 꽤 있었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지는 수시로 현현되어 이루어지고 있으나 우리가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따름인가? 물론 조한도가 바라는 건 전방위적인 인격체, 무엇을 해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참된 각성에의 도달이었다. --- 〈사랑으로 등극하다〉 중에서
지난 초가을, 20여 명은 되는 노인이 가로수 밑으로 들쭉날쭉 나다니고 있었다. 반 이상이 새마을 모자 밑으로 길게 수건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H시장’ 낙인이 찍힌 바다 빛 대형 비닐봉지를 끌다시피 들고 다니며 집게로 풀을 집어 담거나 호미로 땅바닥을 찍어댔다. 그중엔 집게를 휘휘 내젓는 영감, 호미로 허공에 십자를 그리는 할머니도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공활하고 푸른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조한도는 아바연을 누구에게 맡기더라도 당장 그 사업에 동참했어야 했다. 개시도 전부터 전국을 들썩이게 한 희망근로사업이었다. 허나 부 여사의 언급이 없었다. 남편의 체면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조한도에게 과연 체면이라는 게 있는가? 신랑이 요번 달에 보너스로 삼백만 원밖에 안 갖고 왔네, 그이 월급으로 무슨 유럽을 가니 서귀포나 사나흘 가고 말지 하고 쫑알거렸다는 그 두 여편네를 부사옥이 의식하고 있다면? 그들 앞으로, 새마을 모자에 주황빛 복장을 한 조한도가 아침저녁으로 지나가서는 곤란할 것이었다.
이토록 체면을 중시하는 조씨네는 배가 덜 고파도 한참 덜 고픈 3인 가구였다. 강남 귀부인이 운동 삼아 희망근로 한다는 뉴스를 보지 못했는가? 공공장소에 울려 퍼지는 그들의 건강한 웃음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 〈사랑으로 등극하다〉 중에서
지금처럼 부족한 대로 꾸준히 단돈 몇 푼이라도 추가해서, 월별로 분기별로 해를 넘겨 갖다 바치는 기존의 형식을 답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부지런한 성인이 되자.
다시 생각해 보니 옛 성인이나 책에 나오는 인격자들은 돈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가족을 초개같이 알았다. 가족의 사소한 고통에 눈감은 대신 이웃과 동포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의 자유와 생존을 위해 내 한 몸을 불살랐다.
조한도는 그런 차원까지 자신을 드넓혀야 하나 물어야 했다. 성인이 된 그는 현실 참여를 해야 하나, 묵묵히 봉사 활동을 해야 하나, 그저 명상하면서 질문을 받는 스승의 입장에 서야 하나, 명확한 판단과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조한도는 생각했다. 한꺼번에 모든 걸 정리하고 입장을 바로 세울 순 없다. 윤곽이 떠오르고 그림이 그려질 때까지 뜸을 들이며 기다려보자. 책을 좀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자는 스무 명으로 제한하고, 한 주에 5일 술을 마시며 훌륭한 말씀을 남긴 성인이 책에는 있을 것이다. 그런 분은 방중술과 섭생법까지 남기기 마련이다.
주로 이런 갖가지 생각을 하느라 밤이 깊도록 조한도는 잠들지 못했다.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의미망을 획득해 가는 사려 깊고 유연한 사고는 그를 명철한 사내로, 폭넓은 인식의 소유자로 부각시키고 있었지만 여기엔 뭔가 실질적인, 그러니까 속되다고 일컬을 만한 기쁨이 결여되어 있었다. 지금은 성인이 되기 전에 온전히 그가 누려야 할 세속의 시기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의 계절이었다.
오, 고요한 밤에 부풀어 오르는 이 느낌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어떻게 신은 하나의 물상을 저와 같이 빚고, 그러한 물상에 호흡과 움직임과 매력을 더해 신비의 광채를 뿜어내게 하여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가? 요괴가 아니고 유령도 아니고 요정도 아니면서, 눈부시게 살아 있는, 그 웃음, 그 동작, 그 눈빛, 그 자태, 그것들을 어떻게 빚어내어 미묘한 변용을 통해 천 가지 기쁨과 고통을 선사하는가? 신이 아니라면 누가?
어떤 자연의 법칙이 그토록 오묘하게 솜털 하나까지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 용솟음치는 사랑 외의 다른 감정은 눈멀게 하는가? 그녀는 그녀 자신의 것이면서 동시에 자연에 속하고, 보다 높은 법칙, 우주의 섭리에 따라 수준 높게 연주되나니, 그 감미로운 음률에 미혹된 나의 영혼은 놀라운 여행을 떠나는구나. 그녀는 누구인가? 일찍이 사랑은 형체 없이 여기저기 방황하다 그녀를 통해 현현하며 마침내 온전히 그녀 속에 머물러 있도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그녀를 추구하고 속눈썹의 떨림 하나까지 느끼고 향유하는 나는 누구인가?
몽, 나는 그대를 안는다. 그대의 가늘게 떨고 있는 어깨와 따뜻한 팔의 감촉, 이 메마른 가슴에 살포시 와 닿는 뛰는 젖가슴. 그리고 풍요로운 넓적다리는 지금은 떨어져 있어도 좋으리. 그곳의 숨 막히는 뭉클함은 미뤄 두리다. 성스러운 배꼽, 아, 그곳도 아직은.
내 이전에 그대의 손아귀에 막대기 하나를 쥐어 줬던 기억은 잊어주오. 그때 우리는 성급했소.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합시다. 드넓은 바다와 불타는 초원으로 달려갑시다. 세계의 끝까지 작은 발자국을 남깁시다.
그대 지금 어디 있소? 새근새근 잠든 얼굴, 찰랑이는 주렴처럼 이마를 가리는 검은 머리카락, 입김이 흩어지듯 그렇게 그대는 자신을 드러내며 동시에 더 많은 걸 감추며 잠들어 있소. 아아, 그대를 사랑하오. --- 〈한겨울 밤의 꿈〉 중에서
그래서? 뛰지 않고 걸어서 그는 어디까지 왔는가? 시민기원 원장 자리에 올라왔는가? 그리고 계속 걸어서…… 세속의 성공을 포기하고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정열이면 성공한 사업가가 되지 않겠는가? 실패가 두려워, 노력하는 과정이 두려워 성인이라는 피안의 세계로 도망가려는 건 아니고? 과연 성공과 인격은 양립할 수 없는 건가? 훌륭한 사업가 중에 훌륭한 인격자가 있지 않든가? 심지어 정치가, 사업가, 인격자를 모두 합친 인물, 중국 춘추시대의 재상 ‘범려’도 있지 않은가?
이렇듯 정직하게 자신을 뒤돌아보고 예리한 질문을 연이어 던지는 조한도의 성품은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었다. 그는 애초부터 뛸 수가 없는 위인인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사업을 논할 시점은 아닌 것 같다. 예정대로 ‘성인’으로 가는 거다. 그 후에나 중요한 문제를 찬찬히 생각해 보자, 성인은 아예 돈을 못 버는지, 같은.
이제 몽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건널목을 향해 걸어간다. 손에는 역시 흰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어제 그렇게 술을 마시고 딱딱한 김밥 덩어리로 속을 채우려 하다니. 조한도만 해도 얼큰한 선짓국이나 짬뽕 국물이 머리에 어른거린다. 몽과 함께 해장거리를 먹을 수 있다면…… 그는 벌써 달려가고 있었다.
“비닐봉지를 이리 주오.”
“왜 이러시나요?” --- 〈세 번째 내리는 눈〉 중에서
“장군? 장군이고 왕이고 연기 꼴들이라니. 그것도 연긴가? 똥장군에 마왕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아가씨, 봤죠? 변사처럼 왱왱대며 말하는 꼴들.”
부사옥이 거품을 물었다.
“오빠처럼 자연스럽지는 않았어요.”
“자가 원래 술을 좀 먹잖냐. 쪼금만 점잖았으면 좋았으련만.”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 다들 웃었잖아요. 진짜로 웃고 싶어서 웃게 한 사람은 애비 하나였어요.”
부사옥이 말했다.
“그건 그랬다만.”
어머니는 더 얘기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대학로 극장 골목을 걸어 내려갔다. 조한도는 이제 다리를 조금만 절고 있었다.
“출연료 얼마 준대?”
옆에 따라붙은 부사옥이 조그맣게 말했다.
“조금이야. 단역이잖아.”
“많이 달라고 해. 학원비 내야 해.”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여 ‘어머니 뭐 드실래요?’ 하고 물었다.…… --- 〈무대 위에서〉 중에서
가슴을 치며……
“199x년 어느 여름밤이었다. 후줄근한 네 사내는 맥주를 마시며 입구에 걸린 주렴을 통해 흩날리는 비를 내다보고 있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마님의 잔소리에 죽을 지경이라는 한 친구의 푸념에 나를 포함한 사내들은 각기 해법을 내놓았다. 그러려니 해라, 가슴에 새겨들어라 등등. 사회적으로도 ‘간 큰 남편’이라는 시리즈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좀 더 혁명적이고 건실한 생각이 없을까? 나는 속으로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 상상이 씨앗이 되어 10년 넘게 가지를 치더니 이토록 긴 글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셰익스피어의 망토를 두른 조한도와 억척 어멈 부사옥, 거리의 숙녀 몽과 동거한 지 어언 일 년이 다 되었다. 이제 나는 길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너 자신을 알라’ 이는 크산티페가 남편 소크라테스에게 ‘네 주제를 알라’고 한 말이 와전된 것이라는, 농담 같은 얘기가 있다. 플라톤의 《파이돈》에 나오는 철학적인 대사들은 다 잊어버렸지만 사형 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 앞에서 가슴을 치며 울부짖던 크산티페만은 잊지 못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 따위를 따지다 죽게 놔두고, 크산티페와 한잔 하며 저잣거리의 삶과 사랑을 논해 보지 않겠는가? 셰익스피어도 초대해서.”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