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구입을 망설이는 분에게
뱃노래에 맞춘 뱃사람들 이야기,
폭풍우와 모험, 더위와 추위,
범선, 섬, 섬에 버려진 사람들,
해적과 감춰진 황금
그리고 온갖 옛 모험담을
옛날 방식 그대로 다시 들려준다면,
예전에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했듯이
오늘날의 지혜로운 젊은이들도 즐길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좋다, 책을 펼치시라! 만약 아니라면,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옛 열정을 까맣게 잊고
킹스턴이나 용감무쌍 밸런타인 또는 숲과 파도의 쿠퍼를
더는 갈망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좋다! 그렇다면 나는
그 작가들과 그들이 창조한 모든 인물들이 누운 무덤에
나의 모든 해적들과 함께 묻히겠노라! --- 발문 중에서
영웅과 악당의 이미지가 혼합되어 있는 실버는 당연히 이후 여러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 재탄생되었다. 영화에서는 오손 웰스, 찰턴 헤스턴, 앤서니 퀸, 잭 팰런스와 같이 당대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자신이 해석한 실버를 선보였다. 연극과 애니메이션에도 다양하게 해석된 실버가 등장했다. 이렇게 재해석, 재탄생한 실버 가운데 으뜸은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애니메이션 〈보물섬〉에 등장하는 실버이다. 데자키 오사무의 작품에서도 실버는 영락없는 악당이지만 동료들에게는 진정한 바다의 사나이이자 의리의 화신이며 짐에게 끊임없이 가르침을 주려 애쓰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형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보물섬』이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더 큰 이유는 빅토리아 시대의 아동 문학 작품에 흔히 나타나는 교훈 따위가 이 작품에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1860년대까지 영국의 아동 문학 작품은 상류층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의무교육으로 인해 가독 인구가 늘어나면서 독서는 점차 보편화되었고, 독자들의 요구에 발맞춰 아동 문학은 점차 읽는 즐거움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흐름에 맞춰 나온 『보물섬』은 오롯이 읽는 즐거움을 위해 쓰인 책이다. 스티븐슨은 독자가 사서 볼 만한 소설을 썼고, 그 덕분에 〈아동 문학은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굴레에 묶이지 않은 『보물섬』은 위에서 언급한 실버와 같이 교활하고 야비하지만 근사한 악당을 탄생시킬 수 있었으며 또한 이국적인 배경, 빠른 장면 전환, 인상적인 악당들이 멋지게 결합된 신나는 모험담을 담을 수 있었다.
--- 역자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