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역사를 7개 장면으로 풀어낸 이야기 한국사
신라의 삼국 통일
이상합니다. 왜요? 통일을 했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겁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 이야기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를 자랑스러워하기보다 오히려 불만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광활한 만주 땅을 잃어버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외세의 힘을 빌린 불완전한 통일이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만은 고구려가 통일을 했더라면 우리 역사는 더 화려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가정이란 정말 부질없는 일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제 와서 안타까워한들 역사를 되돌릴 수도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p.20
신라 삼국 통일의 의미
신라의 삼국 통일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근 100여년에 이르는 통일 전쟁 과정에서 무수히 죽고 상처 입었던 이 땅의 백성들에게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미화해도 좋은 전쟁은 없습니다. 어떤 명분을 갖다 대더라도 전쟁은 죄악이자 범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은 이 땅에 처음으로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는 데에 또 하나의 큰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 p.32
고려는 황제국이었다
고려는 처음부터 황제국을 자처했습니다. 왕실의 용어 역시 황제국의 용어를 썼습니다. 임금은 스스로를 짐(朕)이라고 부르고, 명령을 내릴 때는 교서 대신 조서(詔書)나 칙서(勅書)라고 했습니다. 짐이나 조서, 칙서는 모두 황제만이 쓸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또 고려 도읍지였던 개경은 황도(皇都) 또는 황성(皇城)이라 불렀고, 궁궐에는 원구단도 있었습니다. 원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을 말합니다. --- p.45
불교 공인이 왜 중요한가?
불교를 받아들인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은 모두 불교를 통해 국가의 기반을 새로 설계하고자 했습니다. 불교적 세계관을 활용해 왕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앙집권적 통치 제도를 정비해 나갔습니다. 따라서 불교 전래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불교가 우리 역사에서 왜 중요한가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 이전과 이후, 즉 BC와 AD로 나누어 역사를 구분하는 일반적인 시대 구분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 p.67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과학기술
측우기, 해시계, 칠정산, 거북선, 고려청자, 첨성대, 석굴암, 인쇄술. 지금 나열한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예, 그렇습니다.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뽐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과학 유산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과학기술이 중국에 버금가는 세계적 수준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조선 건국 직후 제작된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세계적 걸작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더더욱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 p.92
한글은 왜 위대한가?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6,000~7,000여 개라고 합니다. 하지만 문자는 겨우 30개 정도 뿐입니다. 지구촌 구석구석 모든 민족, 종족, 부족이 자기 고유의 언어는 가지고 있지만 그 언어를 자기만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민족은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자기들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한글은 이미 존재하는 기존 문자에서 직접 영향을 받지 않고 독창적으로 만든 새로운 문자였다는 점에서, 또 이 문자를 만든 사람과 창제 시기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문자입니다. --- p.12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각 나라 역사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등재 경쟁이 치열합니다. 2014년 현재 기록유산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는 독일로 모두 17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위는 오스트리아로 13개고요. 이어 러시아와 폴란드가 각각 12개씩으로 공동 3위에 올라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놀라지 마세요. 2014년까지 11개였다가 2015년 10월 또 2개가 늘어 모두 13개가 됐습니다. 이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 p.141
천주교 박해와 순교자
조선이라는 시대 상황에서 천주교인들의 순교는 그것 이상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근대적인 사상 통제와 신분제 사회 질서에 대해 죽음을 불사하며 항거한 도전이었습니다. 나아가 인간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향한 처절한 저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그런 저항과 희생 속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조선 사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천주교 신자들의 희생을 통해 조선 사람들은 개인의 존엄과 인격의 위대함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것이야말로 한국 천주교가 우리 역사에서 갖는 중요한 의미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 p.167
기독교 부흥과 시대적 소명
한국 기독교가 소수이면서도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매 시기마다 시대적 소명을 뚜렷이 자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의 시대정신은 민족 독립이었습니다. 산업화 시대 이후 평등이요 인권이었으며 민주화였습니다. 그리고 분단 극복이요 통일염원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이를 위해 기도했고, 행동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마음의 빚만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저 나와 내 가족이 잘 되고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만 가면 된다는 신앙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시대정신을 잃어버리면 역사에 대한 기여나 역할도 끝이 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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