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의 신들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하게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바로 크리슈나다. (...)
크리슈나는 중부 인도의 종교 도시인 마투라에서 유목민 야다바족 족장 바수데바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지만, 마을을 지배자였던 캄사 왕은 "바수데바와 그의 아내 사이에 태어나기로 되어 있는 여덟번째 자식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예언이 실현될 것을 두려워한 캄사는 바수데바의 아내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녀는 "태어나는 자식은 반드시 왕에게 바치겠다"는 약속을 하고 위기를 모면했다(...) 바수데바는 그를 낳은 즉시 마을에서 빼내 목동들의 지도자인 난다에게 보냈다. 이렇게 해서 발라라마와 크리슈나 형제는 캄사 왕의 칼날을 피해 난다 밑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바수데바 부부의 여덟 번째 자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캄사는 수하의 마족들에게 주변 마을의 모든 갓난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의 지시에 푸타나라는 마족은 미인으로 변신해서 난다의 집을 방문했다. 마침 갓난아이가 있는 것을 본 푸타나는 독이 들어 있는 우유를 먹이려 했지만, 크리슈나는 오히려 무서운 힘을 발휘해 우유는 물론이고 마족의 생명력까지 마셔버렸다. 또 한때는 트리나ㅏ르타라는 악마가 회오리바람으로 변해 그를 없애려고 했지만, 크리슈나는 이 역시 물리쳤다. 그는 악마의 등에 올라타고 서서히 몸집을 키워 그를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악마는 크리슈나의 불어난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크리슈나의 신성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양어머니가 그에게 젖을 먹이려고 하자 입을 크게 벌렸는데, 그 속에 뭔가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그의 입속을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고 태양과 달, 별이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바다와 대륙은 물론이고 산까지 있었다. 어머니는 너무나 놀라 두려움을 느꼈지만 크리슈나가 바로 비슈누 신의 화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맹으로 크게 이름을 떨친 크리슈나는 아름다움 용모로도 소를기르는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보름날 저녁에 크리슈나가 피리를 불면, 여자들은 그와 춤을 추고 싶어 안달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리르 박차고 나와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크리슈나는 그녀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자신의 분신이 춤을 추게 했다. 그렇지만 크리슈나는 변함없는 장난꾸러기로 여자들이 수영을 하는 곳에 몰래 들어가 옷을 숨기는 등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크리슈나의 모습은 현재도 회화나 인형의 소재로 널리 다뤄지고 있다.
수많은 여인과 연애를 해서 무려 1만6천 명의 아내를 둔 크리슈나가 가장 사랑한 사람은 바로 목동의 아내 라다였다. 하지만 라다가 남편에게 들키는 것을 두려워하자 크리슈나는 여신 칼리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남편의 눈을 속였다고 한다.
--- pp 44~47
인도 신화 속에서 시바 신은 보통 신들과는 사뭇 다른 독창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천계와 인간계, 지하 세계의 왕으로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기 때문에 흔히 '삼계의 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
시바 신의 주거지는 히말라야 산맥 속에 있는 카일라스 산에 있으며, 청백색의 나체에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머리에는 관처럼 뱀을 휘감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위에서 묶고, 몸에는 쇠똥의 재를 칠했으며, 삼지창(번개를 상징한다)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고행승의 모습과 아주 유사하다.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는 시바파(시바 신을 주신으로 모시는 종파)의 본거지로, 이곳에 가면 지금도 시바 신의 모습 그대로 수행에 몰입해 있는 많은 수도승들을 볼 수 있다.
시바 신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이마에 세 개의 선이 가로로 그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슈누 신의 이마가 V자형으로 되어 있는 것과 비교되는 시바 신의 상징이다. 그리고 이 세 선과 함께 이마 가운데에 또 하나의 눈, 즉 제3의 눈이 있다. 이 눈은 화염을 발사하는 무서운 무기로, 자신에게 저항하는 신을 불태워 죽인 적도 있다. 이 제3의 눈이 생기게 된 배경을 알아보자.
시바 신이 명상에 잠겨 몇날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 아내인 파슈파티가 시바 신 뒤에서 장난 삼아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자 세상은 곧바로 암흑으로 변해 인간을 비롯한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 순간 시바 신의 이마 한가운데가 찢어지면서 새로운 눈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곳에서 히말라야를 완전히 녹여버릴 것 같은 강렬한 빛이 나왔다고 한다.
링가(Linga)는 남성의 성기를 추상화한 것을 가리키는데, 링가를 시바 신 그 자체로 숭배하는 것이 시바 신 신앙의 큰 특징이다. 보통 링가는 요니(Yoni)라고 부르는 여성의 성기를 추상화한 좌대 위에 올려놓는다. 생식기 숭배는 아리아인에 의해 전래된 것이 아니라, 인도 토착 신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링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칼파 소멸기에 비슈누 신이 혼돈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을 때 빛과 함께 브라마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브라마 신은 비슈누 신을 발견하자 자기보다 더 앞선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나는 무수히 우주를 창조하고, 모든 것의 근원인 창조자 브라만이다. 너는 어떤 자냐?"
"나야말로 우주의 중심, 불사불멸의 근원이며 모든 세계의 창조자다. 너야말로 누구냐?"
서로 세계의 창조자라고 주장하는 두 신은 격론을 벌였다. 그러자 갑자기 그들 앞에 큰 섬광과 함께 거대한 링가가 나타났다. 뿌리는 물 속 깊이 잠겨 있고, 꼭대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었다. 갑작스런 링가의 출현에 두 신은 입씨름을 그치고,링가의 끝을 먼저 보고 돌아오는 자를 창조자로 인정하기로 약속했다 .브라마 신은 거대한 날개를 가진 백조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1천 년 넘게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갔다. 그리고 비슈누 신은 푸른 산처럼 거대한 멧돼지로 변신해서 역시 1천 년 동안 물 속으로 계속 내려갔다. 하지만 하늘 높이 올라가도 또한 바다 깊이 내려가도 거대한 링가의 양쪽 끝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신은 원래 장소로 되돌아와서 둘의 능력을 뛰어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옴(Om)" 하는 명징한 소리가 들리면서 링가는 갑자기 큰 화염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천 개의 팔과 천 개의 다리, 세 개의 눈을 가진 시바 신이 나타났다. 시바 신은 천둥치는 듯한 못소리로 두 신에게 말했다. "들으시오! 우리들은 원래 한몸이었는데, 브라마는 나의 왼쪽 허리에서 나왔고 비슈누는 오른쪽 허리에서 나왔소. 다시 칼파가 시작되면 브라마는 비슈누의 배꼽에서 나올 것이며, 나는 비슈누가 분노할 때 그의 이마에서 태어날 것이오." 이렇게 말하고 시바 신은 모습을 감추었다. 그뒤부터 사람들은 링가를 숭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pp 63~68
신에게 기도하는 신성한 의식을 치를 때 밧줄이나 다른 도구를 사용해서 특정 장소를 원형으로 구획짓는 경우가 있다. 즉, 다른 곳과 구별되는 특별한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것을 만다라(曼陀羅)라고 한다. 예를 들면, 샤크티에게 기도할 때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샤크티 만다라'라는 것을 만든다. 이 신성한 구역에서 다닐 때는 절대로 오른쪽으로 돌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만다라 내부에서는 연꽃을 태운 재에 사프란(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과 울금(생강과의 여러해살이풀) 분말을 혼합해서 특수한 도형을 만든다.
샤크티 만다라를 설정할 때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자신의 신체에 위험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도 남부 케랄라 주 같은 곳에서는 저주를 목적으로 한 만다라를 만드는 수행자도 있다고 한다. 만다라는 일반적으로 차크라(원반)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