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의 선발투수는 뉴욕 자이언츠의 에이스 칼 허벨이었다. 1회 초 허벨은 첫 두 타자에게 안타와 볼넷으로 출루를 허용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베이브 루스를 시작으로 루 게릭, 지미 폭스, 알시먼스, 조 크로닌까지 다섯 명의 아메리칸리그 강타자들을 연속해서 삼진으로 잡아낸 것이다. 이들은 모두 나중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위대한 타자들이었지만 허벨의 공을 배트에 맞히지도 못했다. 허벨이 이 다섯 명을 상대하면서 세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을 때 던진 공은 모두 같았다. 스크루볼이었다. 루스는 4개 가운데 잇따라 들어온 3개의 스크루볼에 삼진을 당했고, 게릭은 풀카운트까지 갔지만 스크루볼에 잇따라 헛스윙한 뒤 물러났다. 그나마 폭스는 한 차례 파울팁으로 공을 건드리는 데는 성공했다. 2회에도 시먼스와 크로닌을 연속 삼진으로 아웃시킨 허벨은 빌 디키에게 단타를 허용하며 역사적인 탈삼진 쇼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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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에 슬라이더를 처음 선보인 인물은 김영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1963년 일본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에서 퇴단한 뒤 한국 실업야구에 스카우트됐다. 풀시즌제가 실시된 1964년 평균자책점 0.32를 기록하며 최우수 투수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1965년 최다승 투수, 1967년 방어율 최우수 투수, 1968년 최다승 투수에 오르는 등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 첫해 기록한 한 시즌 평균자책점 0.32는 실업야구 사상 최고 기록이다. 1964년에는 퍼펙트게임, 1968년에는 노히트노런 기록을 세우며 명성을 날렸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기록이 7승에 그쳤지만 당시 일본 야구와의 수준 차가 컸던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다양한 변화구와 뛰어난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상대했는데 특히 슬라이더의 위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슬라이더를 던진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역시 재일동포 출신으로 자신보다 먼저 한국 무대에서 활동한 신용균이 처음 던졌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렇다
면 왜 그가 최초의 슬라이더 투수로 알려졌을까? 당시 실업야구에서 활동한 재일동포 투수 김성근 한화 감독은 “그의 강한 슬라이더는 타자들이 도저히 못 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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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패스트볼은 패스트볼 또는 슬라이더의 변형이다. 포심 패스트볼보다 속도는 약간 떨어지지만 슬라이더처럼 옆으로 변화한다. 오른손 투수가 던질 경우 오른손 타자의 바깥쪽, 왼손 타자의 몸 쪽으로 움직인다. 변화의 폭이 작지만 타자가 스윙을 시작할 때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배트 중심에 맞히기 힘들다. 줄여서 커터라고도 부르는 이 공이 야구 사상 최고의 구종으로까지 꼽힌 것은 뉴욕 양키스의 ‘수호신’이었던 마리아노 리베라 덕분이다. 오른손 투수 리베라가 던진 커터가 왼손 타자들의 배트를 부러뜨릴 정도로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더욱 각광을 받게 됐다.
리베라가 커터를 익히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1997년의 어느 날 리베라는 같은 파나마 출신의 동료 투수 마리로 멘도사와 경기를 앞두고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던진 패스트볼이 조금씩 옆으로 꺾이는 움직임을 보였다. 멘도사가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지만 이유를 모르기는 리베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리베라는 이 새로운 공을 ‘신이 준 선물’이라고 했다(포수 조 지라디는 리베라가 이미 그 전해에 커터를 던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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