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미혼모라니!
올해 초등학교 육 학년인 진영이는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진영이는 한동네 친구인 정훈이에게서 엄마가 젊었을 때 ‘날라리’였을 거라며 놀림을 받습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엄마를 미혼모라며 쑥덕거리는 걸 들었다면서요. 그날 밤 진영이는 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서 엄마가 미혼모라는 것과 아빠가 누군지, 어디 사는지 전혀 모른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엄마는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자신이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에 늘 사고 치고 야단맞고 또 사고 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고아원을 뛰쳐나와 거리를 떠돌아다녔습니다. ‘지나가는 아이들 돈도 빼앗고, 그래서 돈이 생기면 그 돈으로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고.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나쁜 일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다 엄마는 한 살 더 많은 남자를 만나 의지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엄마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는 아무 말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열여덟 살에 미혼모 쉼터에서 진영이를 낳은 엄마는 다른 미혼모처럼 진영이를 입양 보내지 않고, 혼자 힘으로 키웠습니다. 자기를 버린 부모가 한 짓을 아이에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진영이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다음 날, 진영이는 가출한 청소년들이 주로 간다는 대학로를 찾아가 ‘날라리’로 보이는 형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러다 우연히 위층 옥탑방에 사는 아저씨를 만나 가출 청소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옥탑방 아저씨는 지금 연극배우이지만, 청소년 때 가출해 대학로에서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진영이는 아저씨가 가출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여자 애들과 잔 적도 있냐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럼 안 되잖아요. …… 아이가 생기면…… 그냥 도망갈 거잖아요. 그럼 그 아이는 어떡해요.’라며 울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아저씨는 ‘무서워서 그랬을 거야…… 나라도 그랬을걸. 열여덟에 아빠라니…… 너무 어리고 불쌍한 아이들이었어.’라는 말로 진영이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진영이는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옥탑방 아저씨가 해 준 말에 조금 용기를 얻었습니다.
“네 엄마 말이야. 넌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돼.” ……(중략)…… “그러니까 내 말은 네 엄마가 아주 용기 있는 분이란 거야. 애를 키우고 싶어도 포기한 미혼모들이 많아. 경제적인 것도 어렵지만 사람들이 보는 시선도 곱지 않고……. 하지만 어려움을 이기면서 네 엄마처럼 손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도 있고, 아빠들도 있어. 엄마의 과거가 어떻든 상관없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그 말을 꼭 해 주고 싶어서.” - 본문 51쪽 중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엄마를 보며 진영이는 ‘그 사람은…… 아저씨 말처럼 무서워서 엄마도 나도 버리고 떠났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나를 키운 걸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 내 사랑 혜인이
그날 이후로 진영이는 옥탑방 아저씨와 친해졌습니다.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지요.
개학을 해서 학교에 간 진영이는 그새 키도 마음도 많이 자랐습니다. 게다가 좋아하는 혜인이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혜인이는 요즘 새로 시작한 드라마 ‘사랑이 좋아’에 나오는 연애인 김준에게 푹 빠져 있었습니다.
‘사랑이 좋아’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된 옥탑방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진영이는 혜인이에게 김준의 사인도 받아다 주고, 김준을 만날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지만 정훈이와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의 방해로 진영이는 혜인이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반 남자 애가 혜인이에게 목걸이를 선물합니다. 순간 진영이의 머릿속에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목걸이가 떠올랐습니다. 망설임을 거듭하던 진영이는 다음 날 혜인이에게 엄마의 목걸이를 선물합니다. 엄마가 사 준 거라고 거짓말하면서요. 하지만 혜인이 엄마가 혜인이와 함께 찾아와 엄마에게 목걸이를 돌려 주고 갑니다.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그 뒤로 몹시 우울해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옥상에 올라간 진영이는 옥탑방 아저씨에게서 엄마의 재혼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목걸이 사건 이후로 엄마는 한숨도 늘고, 잘 웃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고 지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옥탑방 아저씨는 진영이에게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을 엄마와 함께 보러 오라며 초대권을 주었습니다. 아저씨 덕분에 연극 구경을 하고 나서 엄마는 한결 기분이 나아진 듯했습니다.
⊙ 사랑이란?
목걸이 사건이 있고 나서 혜인이는 진영이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진영이에게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자고요. 하지만 놀이터에서 만난 혜인이가 ‘난 이미 좋아하는 애가 있고 ‘만약 걔가 날 싫다고 하면 너랑 사귈게.’라고 말하고 가 버렸습니다. 며칠 뒤 혜인이가 또 쪽지를 보내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혜인이는 사귀자면서 대신 매일 메일을 보내야 하고, 기념일도 꼭 챙겨야 하며, 다른 여자 애들하고는 말하지 말고 놀지도 말아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진영이는 혜인이의 요구가 부담스러워 사귀자는 말을 못하고 맙니다. 그리고 혜인이가 자기를 정말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잘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진영이는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탓에 혜인이를 피해 다녔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고 혜인이가 쫓아와 물어보자, 진영이는 솔직하게 ‘싫은 건 아닌데 네 말대로 할 자신은 없’다고 말하고는, ‘저기…… 나는 자신이 없는데 정훈이는 다 할 수 있대.’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혜인이는 진영이가 ‘우정을 위해 사랑을 포기’했다며, 진영이를 멋있는 애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 옥탑방 아저씨가 아빠라면
옥탑방 아저씨는 요즘 맘에 드는 여자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고백을 못한 채 망설이고만 있습니다. 이런 아저씨를 보며 아저씨가 좋아한다는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저씨 같은 사람이 아빠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저씨는 돈을 잘 못 벌지만, 그것만 빼면 정말 좋은 사람이다. 나도 아저씨 같은 사람이 아빠라면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직업이 연극배우니 아이들한테 자랑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데 공교롭게 엄마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백화점에서 같이 일하는 아줌마의 동생인데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지금은 조그만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진영이는 엄마와 아저씨가 사귄다는 소문을 정훈이한테 듣게 됩니다. 진영이는 속으로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면 재혼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진영이는 옥탑방 아저씨가 아빠가 된다는 생각에 한껏 마음이 들떴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가 사귀는 사람을 만나러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진영이는 그 사람이 바로 옥탑방 아저씨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지요. 하지만 피자 가게에서 만난 아저씨는 옥탑방 아저씨가 아니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었던 것입니다. 진영이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집으로 갔습니다. 뒤쫓아 온 엄마에게 엄마랑 사귀는 사람이 옥탑방 아저씨인 줄 알았다며, 엄마의 재혼을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 이 모든 게 나 때문인 것만 같다. 만약 내가 없다면 엄마는 그 아저씨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며 괴로워했습니다.며칠 후, 진영이는 그 아저씨가 집 앞 골목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둘은 함께 놀이터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저씨는 진영이가 원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엄마와 만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진영이는 아저씨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깨닫고는 엄마의 재혼에 동의합니다. 이제 진영이는 지금 사는 곳을 떠나 엄마와 함께 아저씨네 집으로 이사를 가겠지요.
⊙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간다
이사 가기 전에 진영이는 그동안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합니다. 제일 먼저 미운 정이 너무 많이 들어 헤어지기 섭섭한 정훈이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 다음은 이성 친구로 좋아했던 혜인이를 만났습니다. 용돈을 몽땅 털어 혜인이에게 줄 반지를 샀지만, 혜인이는 그새 다른 남자 애를 사귀고 있었습니다. 끝내 사귀자는 말을 못한 채 작별 인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하고 도움을 준 옥탑방 아저씨와 유괘하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진영이는 마지막 남은 사람, 자신의 열여덟 살짜리 아빠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해가 질 무렵 동네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 이별은 좀 어렵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과는 어떻게 이별을 해야 하는 걸까? 사진이라도 한 장 있으면 이별하기가 훨씬 더 쉬울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나는 그 사람과 이별을 해야겠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엄마를 위해서. 앞으로는 그 사람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도 원망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을 거다. 그 사람은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컸다는 걸 알기나 할까? 어쩌면 지금쯤 다른 아이의 진짜 아빠가 돼 있을까?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 열여덟 살짜리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