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여행지를 가면 그곳을 ‘오늘’ 여행 중인 다른 여행자를 온라인 상에서 만나 현지를 함께 여행하는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나 역시 몇 차례 그 친구의 조언을 따라 여행지에서 그곳을 방문 중인 여행자들을 만나 보았는데, 이 만남이 특별했던 것은 그들이 어떤 이유로 여행을 떠나왔는지, 여행의 목적에 대해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각자의 여행 철학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만남들을 통해 아주 뜻밖에 가장 낯선 사람과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2쪽
나는 친구에게 카메라 프리타임Camera Free Time을 제안했다. 이 시간의 유일한 규칙은 아무리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은 충동이 들어도 꾹 참고 눈으로만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문명에도 의존하지 않고 다시 가장 자연적인 것들, 그러니까 신체·감정·생각만으로 경험과 시간을 채우기로 했다. 카메라 프리타임을 통한 아날로그적 감상은 내 생각과 시선을 다시금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자연적인 곳으로 돌려주었다. 사실적 기록을 남길 수는 없었지만 지극히 사적이며 추상적으로 남겨진 그날의 향기, 습도, 구름의 움직임, 감정의 동요들은 카메라 메모리카드가 아닌 나만이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된 공간, 내 몸의 일부, 뇌의 한구석에 추억이란 이름으로만 오늘까지 남겨져 있다. 68쪽
아침부터 하늘은 어두웠고, 카약을 싣고 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상상한 눈부신 날의 카야킹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시무룩했던 마음도 잠시, 일단 카야킹이 시작되니 나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맑은 날에는 볼 수 없는, 안개와 자연이 만들어 내는 특별한 깊이와 신비로운 정취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내가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그 순간 깨달은 것은,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딱딱하게 굳어 거기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움직이면 "그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지각, 한계에 갇히지 않고 가능성의 문을 열어 새로운 지경을 경험하게 해 준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99쪽
지루한 일상이 특별해질 수도 있고 특별함이 어느 날 문득 반복되는 일상이 되기도 하는 것. 사랑하는 이가 특별했다가도 익숙해지면 또다시 보통의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 이런 순리적 감성을 거슬러,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을 계속 특별하고 감사하게 여길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도, 내가 누리게 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늘 겸손히 사물에 대해, 그 사람에 대해 첫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특별함이란 참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 특별함을 내가 애써서 지켜야 하나 보다. 120쪽
호숫가에 앉아 아이스크림 색이 도는 돌을 찾으며 발견한 것은 우리에게 유희를 줄 문명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 스스로 그것들을 만들어 낼 줄 아는 능력이었다. 별것 없는 일에 별것 없이도 웃을 줄 아는 능력. 신은 흥의 소비를 넘어 흥의 창조가 가능하도록 인간을 지으셨나 보다. 별것 없는 일상에서 별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을 나는 흥 크리에이터Creator라고 부르고 싶다. 흥 크리에이터는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죽음같이 깊은 어려움이 찾아와도 모든 순간을 기뻐하고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그런 흥 크리에이터가 되기를, 네가 그런 흥 크리에이터가 되기를, ‘우리’에게 응원을 보낸다. 흥흥흥. 135쪽
삶에는 늘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수수께끼가 풀릴 때까지 그저 묵묵히 시간을 인내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몫으로 남겨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것을 통해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될 거라는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내게 주어진 길을 계속 달려가라는 것. 이것이 알래스카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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