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라 사람들은 석기시대에도 완전히 접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거미원숭이를 조상이라 믿는 이들은 아직도 사실상 나무에 살고 있다. 야자나무 잎으로 짠 지붕을 받치기 위해 덩굴로 야자나무 기둥들을 묶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중략) 여전히 사냥을 하긴 했으나 며칠을 돌아다녀도 맥 한 마리, 심지어 메추라기 한 마리도 구경 못하는 때가 많았다. 그러자 그들은 금기였던 거미원숭이 사냥을 시작했다. 아나 마리아는 손녀들이 권하는 그릇을 다시 밀쳐냈다. 엄지 없는 조그만 손이 바깥까지 튀어나온 초콜릿 빛깔의 고기가 담긴 그릇이었다. 그녀는 마다한 삶은 원숭이 고기를 찌푸린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조상을 잡아먹는 지경까지 왔으니, 이제 더 남은 게 무엇이냐?” --- pp.13-15
우리 모두가 느닷없이 사라져버린 뒤의 세상을 상상해보자는 것이다. 그것도 내일 당장 말이다. (중략)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집과 도시, 주위의 지대, 그 아래의 포장된 땅, 그 땅 속에 숨겨진 흑 등을 다 그대로 두고 인간만 몽땅 추려내는 것이다. 우리를 다 쓸어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보자. (중략)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아담 또는 호모하빌리스 이전 시절의 푸른 빛깔과 향기를 되살리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 우리가 남김 흔적을 자연이 전부 지워비릴 수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창조한 가장 훌륭한 것들, 예컨대 건축, 미술, 정신의 발현 등은 어떻게 될까? 태양이 팽창하여 지구를 잿더미가 되도록 태워버릴 때까지 남아 있을 만한 무궁한 것이 과연 있을까? 지구가 다 타버린 뒤에라도 우주에 우리의 자취가 희미하게나마 남기나 할까? 우리가 한때 여기 있었다는 신화 등이 별들 사이에 남을까? --- pp.16-17
인간이 사라진 뒤, 기계를 믿고 더욱 오만해진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자연의 복수는 물을 타고 온다. 그것은 선진국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목조 건축에서부터 시작된다. 빗물은 먼저 아스팔트나 슬레이트로 만든 지붕 외피를 타고 든다. 지붕 이음새나 모서리 부분에 방수용 철판을 대준다고 하지만 하염없이 내리는 빗물은 어느새 외피 아래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중력) 지붕틀에 가해지는 중력이 커지면, 썩기 시작한 금속판을 고정해주던 핀이 푸릇한 곰팡이를 소복하게 뒤집어쓴 젖은 나무에서 풀려 빠져나온다. 새가 와서 부딪히거나 벽이 기울면서 가하는 압력 때문에 깨진 유리창 속으로 빗물이 들이친다. 유리가 깨지지 않더라도 비나 눈은 창턱 아래로 어떻게든 기어코 스며든다. 지붕에서는 나무가 계속 썩으면서 지붕틀이 서로 떨어져나가기 시작하고, 결국 벽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지붕이 무너져내리고 만다. --- pp.32-33
“한곳에서 물이 넘치면 다른 곳으로 쏟아지지요. 36시간이면 전부 물바다가 되어버립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지하철 펌프만 가동을 멈추면 며칠 안에 물바다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가 되면 포장된 도로 밑에 갇힌 흙이 씻겨나가고, 그로부터 머지않아 도로가 갈라지고 터지기 시작한다. 아무도 하수구를 치워주지 않아 막혀버리면 지면에 새로운 물길들이 생겨난다. 물에 잠김 지하철 천장이 무너지면서 갑자기 물줄기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스트사이드의 4, 5, 6호선 위의 도로를 떠받치고 있던 쇠기둥이 20년 동안 물에 잠기면 부식하여 꺾여버린다. 이렇게 무너져내린 렉싱턴대로는 이내 강이 되어버린다. --- p.44
인간이 없어지자, 한때 동족이 원수가 되어 싸우던 지옥은 오갈 데 없던 생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변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하던 곳은 사라질 뻔했던 야생돌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반달가슴곰, 스라소니, 사향노루, 고라니, 담비, 멸종 위기의 산양, 거의 사라졌던 아무르표범이 매우 제한된 이곳의 환경에 의지해 산다. 유전적으로 건강한 개체군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영역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구역이다. 만일 비무장지대의 북쪽과 남쪽이 전부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갑자기 변한다면, 그들은 다른 곳으로 퍼져 수를 늘리고 이전의 영역을 되찾아 번성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한국에 게티즈버그와 요세미티를 합친 듯한 곳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DMZ포럼의 공동 창립자인 하버드대학 생물학자 E. O. 윌슨의 말이다. 지뢰를 제거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고 농사나 개발도 할 수 없겠지만, 관광 수입이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지난 세기에 이곳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이 공원이 될 겁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유산이 될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따를 수 있는 모범이 될 겁니다. 달콤한 전망이다. 하지만 이미 DMZ를 넘보는 개발 세력들에게 먹혀버리기 쉬운 전망이기도 하다. --- pp.260-266
우리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다른 동물들, 예컨대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사냥당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큰뿔산양이나 검은코뿔소 등이 과연 그 일을 축하할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동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 개나 말처럼 길들인 종류이다. 그들은 늘 주어지던 먹이를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목줄이나 고삐를 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정 많았던 주인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돌고래, 코끼리, 돼지, 앵무새, 그리고 인간의 사촌 침팬지와 보노보원숭이까지 우리가 가장 영리하다고 생각하는 동물들은 아마 우리를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가운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들에게 위험을 주는 것 또한 대개 우리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없어서 슬퍼할 것들은 주로 우리가 없으면 정말로 살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람 머리와 몸에 사는 이를 들 수 있다. 진드기도 우리가 없으면 큰 상실을 맛볼 것이다. 200여 종의 박테리아도 우리를 자기네 집이라 부른다. 특히 우리의 대장과 콧구멍, 입 속, 이빨에 사는 것들이 그렇다. 수백 마리의 작은 포도상구균이 우리 피부 어느 곳에나 살며, 겨드랑이와 가랑이와 발가락 사이에는 더 많이 산다. 거의 대부분이 유전적으로 우리한테서만 잘 살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가 없어지면 그들도 사라질 것이다.
--- pp.329-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