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어쩌다 그렇게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살아날 방법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침몰한 배는 새 것이었나요, 아니면 전에도 사용하던 것이었나요?", "왜 그렇게 조그만 배로 넓은 바다를 탐험하려고 했나요?" 등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 그 답변은 또한 내 표류기의 토대이기도 하다.
사실 그 토대는 1964년 처음으로 항해에 나선 열두 살 무렵 이미 마련되었다. 나는 순식간에 항해에 푹 빠져들었다. 왜 그토록 매력을 느꼈느냐고 묻는다면, 자연 속에 뛰어들어 몸으로 직접 모든 것을 겪으며 그 일부가 되는 것, (선박 건조가 딕 뉴윅Dick Newick의 말처럼) "문명의 이기"가 배제된 소박한 생활방식, 단순한 아름다움 등등 백만 가지쯤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뭉뚱그리면 그저 바다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할 수 있다.
--- pp.10~11
바다의 재앙은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들이닥치기도 하고, 불길한 전조를 보이며 공포를 불러일으킨 뒤 며칠이나 뜸을 들인 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바다가 험악할 때만 재앙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수면이 거울처럼 잔잔하고 철판처럼 견고할 때 느닷없이 들이닥치기도 한다. 뱃사람이라면 수면이 잔잔하든 요동을 치든 어느 때라도 재앙을 만날 수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바다가 증오나 악의를 갖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바다에는 품을 분노라는 게 아예 없다. 그렇다고 친절한 손길 따위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바다는 그저 광활하고 위력적이며 냉담한 그대로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다. 나는 냉엄한 바다나 그 앞에서 너무도 미약한 내 존재 때문에 분노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항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다. 바다는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뼈에 사무치게 일깨워 준다.
--- pp.44~45
그러나 한번 망상에 빠진 머릿속은 쉽사리 말끔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서서히 과거에 겪은 좌절들이 떠올랐고, 그때 얻은 귀중한 경험과 훈련을 계기로 이 같은 시련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시련을 이겨내고 나면 내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리라. 설사 서른한 살의 생애를 못 보게 된다 해도 이 시간들은 유익한 영향을 끼치리라. 즉 내가 죽더라도 이 구명선에 남긴 기록은 발견될 것이다. 그 기록은 다른 사람들, 특히 항해를 하다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겠지. 그게 내가 세상에 행하는 마지막 봉사가 될 것이다. 이러한 꿈, 아이디어, 계획은 불안의 탈출구일 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이 시련을 극복해야겠다는 목표, 즉 이유가 되어 주었다.
--- p.81
내가 왜 비상 가방 안에 작살총을 꾸렸는지, 장비들을 챙길 때까지 솔로는 왜 물에 떠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내가 사냥에 곤란을 겪을 때, 왜 만새기들은 가까이 다가왔을까? 나와 나의 무기가 점차 망가지고 허약해졌을 때, 그들은 왜 내가 더욱 쉽게 사냥에 성공할 수 있게 해 주고, 결국에는 내 작살 끝 밑에서 옆구리를 드러내기까지 했을까? 왜 그들은 1천 8백 해리를 버틸 수 있도록 내게 식량을 공급해 주었던 것일까? 그들은 물고기일 뿐이고, 나는 사람이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 즉 대자연이 이 삶에서 우리에게 허용한 것을 그대로 행했던 것이다. 때때로 삶이라는 직물은 그처럼 환상적인 무늬를 아로새기기도 한다. 나는 기적이 필요했고, 나의 물고기들은 그걸 내게 주었다. 아니, 그 이상을 선사했다. 그들은 기적이 헤엄치고 날고 걸으며, 비를 내리고 온 사방에 물결이 일게 하는 걸 내게 보여 주었다. 나는 생명의 위엄이 서린 영역을 빙 둘러보았다. 만새기들은 어부들의 팔에 거의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겸손하고 평화로우며 자유롭고 순순한 태도는 결코 본 적이 없다.
--- pp.311~312
나는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바다는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황야다. 나무가 가득 들어선 육지의 황야든, 파도가 가득한 바다의 황야든 간에 황야를 탐험한다는 것은 인간 영혼의 성장과 성숙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진실로 깨닫게 되는 곳도 바로 그 황야 안에서다. 바다의 황야에서 일어나는 숱한 도전 과제에 직면할 때 지갑의 두께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적응 능력이야말로 당신의 가치를 매기는 값진 척도가 될 것이다.
--- p.343
〈표류〉는 사실 나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바다의 신비와 마력에 관한 것이며, 바다가 나에게 선사한 두 가지 귀중한 선물에 관한 것이다. 험난한 표류를 통해 나는 생각보다 훨씬 강인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바다가 나의 숱한 약점과 절망들을 시험했다는 점이다.
내가 결혼 생활을 평탄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파탄을 맞은 것은 캐더린이나 프리셔의 잘못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면으로 볼 때 나는 생활에 있어서 대책이 없었다. 이상에 현실이 부합하지 않을 때마다 나는 현실에서 달아났다. 인간으로서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한계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바다가 나를 더키 호 속으로 던져 넣기 이전부터 나는 이미 외톨이로 표류하는 신세나 다름없었다. 이후 벌어진 표류 과정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영웅은 절대 통하지 않았다. 두 달 반 만에 섬의 해안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약점을 깨닫고 보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데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어떤 기록 갱신이나 명예보다도 그것은 내게는 훨씬 더 값진 선물이었다.
--- p.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