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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슬픔으로 가는 길 슬픔이 기쁨에게 파도타기 맹인부부가수 혼혈아에게 눈사람 슬픔을 위하여 구두닦는 소년 꿀벌 첨성대 개망초꽃 서대문 하늘 가을일기 서울의 예수 염천교 다리 아래 비는 내리고 이별노래 우리가 어느 별에서 아기의 손톱을 깎으며 밤 지하철을 타고 새벽편지 새벽편지 부치지 않은 편지 폭풍 부치지 않은 편지 겨울강에서 첫눈 깃발 사북을 떠나며 유관순 삶 강변역에서 별들은 따뜻하다 가을꽃 임진강에서 북한강에서 제2부 새 미안하다 그리운 부석사 밥 먹는 법 물 위에 쓴 시 별똥별 봄밤 연어 봄길 폭포 앞에서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첫눈 흐르는 서울역 허허바다 허허바다 축하합니다 상처는 스승이다 벗에게 부탁함 미시령 겨울밤 못 그는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남한강 꽃 지는 저녁 풍경 달다 수선화에게 바닷가에 대하여 달팽이 개미 우물 산낙지를 위하여 세한도 제3부 하늘의 그물 새점을 치며 쌀 한 톨 겨울날 겨울강 서대문공원 들녘 밥그릇 술 한잔 선암사 소년부처 시인 혀 산산조각 바닥에 대하여 장례식장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의 아침 시각장애인식물원 통닭 나의 수미산 겨울부채를 부치며 밤의 십자가 부드러운 칼 벽 국화빵을 굽는 사내 해설 참혹한 맑음과 ‘첨성대’의 시학 김승희 |
鄭浩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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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출간되었던 정호승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수많은 독자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정호승 시인의, 35여 년에 걸친 시업(詩業)이 이번 한 권의 시집에 응축되어 있다. 총 93편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시인이 “몇날 며칠 어루만져보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떠나보낸” 절경의 시들이다. “나무 밑에 누워 있다가 새똥이 내 눈에 들어가 그만 장님이 된 심정으로”. 78편이었던 2003년판보다 15편의 시가 더해졌으며, 몇 편의 시들이 빼지고 더해졌다.
“고통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시도 인간적인 것이겠지”라고 자조하는 시인의 시들은, 35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한결같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불멸하는 첨성대의 시학 정호승 시인은 1973년 시 「첨성대」로 등단한 이후, 총 아홉 편의 시집을 펴내며, 고통의 사막에 세워진 ‘첨성대’ 역할을 해왔다. 기꺼이 “땅의 고통과 하늘의 꿈 사이에 수직으로 열려 있는 기도의 통로”가 되어 “‘슬픔’을 보면서 동시에 ‘슬픔의 새벽’”을 노래해왔다. 슬픔을 위하여 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 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 ―시 「슬픔을 위하여」 부분 첨성대는 어떠한 시대, 어떠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천문정신과 별의 측량”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지상의 고통에 바치는 시인의 사랑이고 시인의 처형이고 시인의 사무치는 기도이자 불가해한 꿈”이다. 한결 같은 순수 한결 같은 정결함 2003년판 시선집에 이어 이번 시선집의 해설을 맡은 김승희 시인은, 정호승 시인의 시세계를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맑은 꿈’이라고 정의한다. 시인은 꾸준히 시를 쓰면서 소제와 주제에 있어서 조금씩의 변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한결같은 순수와 정결함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노래 앞에서는 “상처”도 “스승”이 되고 ‘슬픔’이 ‘사랑보다 소중한’ 것이 되며, 개구쟁이 초등학생들이 ‘소년부처’가 된다. 그가,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드물게도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다. 시인은 “지상과 천상 사이에 처형되어”되어 있는 첨성대 같은 존재로, 오늘도 “인간과 대지에 대한 사랑과 공경과 기도의 절 한 채”를 짓는다. 쌀 한 톨 앞에 무릎을 꿇다 고마움을 통해 인생이 부유해진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쌀 한 톨 안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해질녘 어깨에 삽을 걸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 ―시 「쌀 한 톨」 전문 어떤 이는 그에게서 윤동주를 보고 가고 어떤 이는 그에게서 김소월을 보고 가고 또 어떤 이는 그에게서 한용운을 보고 가고 정호승 시인은 시적 감수성은 한국인들의 시적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 서정시를 대표하는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고결한 순수와 정결함에 대한 갈구와 부끄러움”은 그의 대표적인 시 「서울의 예수」에서 만날 수 있다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시 「서울의 예수」 부분 또한 초기 시에 지배적으로 흐르는 3음보, 4음보의 율격은 김소월의 리듬과 상당히 닮아 있다.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시 「맹인부부가수」부분 3,4음보 율격은 독자들을 그의 시 안으로 거부감 없이 끌어당기는 음악적 작용을 한다. 게다가 시인은 이런 전통적인 형식과 정서가 가질 수밖에 없는 상투성을 한용운의 낯선 “선(禪)적 부정성의 정신과 역설의 언어로” 무너뜨림으로써 “긴장과 탄력을 가지고 훌쩍 낯익은 지평을 뛰어” 넘게 한다. 경주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시 「소년부처」 전문 그런가 하면 정호승 시인의 초기 시들을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속악성”에 지배받는 현실을 참혹하게 그려낸다. 그는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는 현실을 ‘사창가’로 비유하면서, 그 체제의 희생자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보여 왔다. 신문팔이, 구두닦이 소년, 혼혈아, 맹인 부부, 노숙자 등 소외된 계층은 예수의 아내가 창녀가 되는 자본주의의 무서운 현실을 드러내주는 기호들이다. 시선집의 해설을 쓴 김승희 시인은 정호승 시인에게 “불멸의 첨성대”가 되어주기를 주문한다. 순수가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자본주의적인 욕망만이 무섭게 재생산되는 현실 속에서 “천상의 별과 사랑의 순수”를 노래해주기를 주문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속악성 찌든 세속을 정수처럼 맑게 정화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