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한편에 떨궈져 있던 진휘의 검을 집어 든 세희가 노성을 지르며 륜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검은 아주 간단히 륜의 손에 잡혔다. 사람의 살을 뚫는 감촉이 섬뜩했다. 칼날을 따라 흐르는 피가 소름 끼치게 붉었다. “슬프십니까, 성희? 그토록 은애하시던 이를 잃으셔서 노여우십니까?” “저주받아라, 이런 입에 올리기에도 더러운 천것! 감히 네가 진휘 공을……!” 서릿발 같은 차가운 저주의 말에도 륜은 그저 비릿하게 웃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륜은 손으로 움켜쥔 칼날에 순간적으로 힘을 주어 확 밀쳐 내었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세희가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차디찬 땅바닥에 부딪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륜이 그녀를 지면에 찍어 누르며 그 위에 올라탔다. “비켜라! 내게 손대지 마!” 그러나 거센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도 진휘 공을 사랑하셨습니까?” 고개를 숙이자 사락, 륜의 머리칼이 세희의 뺨을 간질였다. 마치 사랑을 고백하는 듯한 어조로 륜은 상냥하게 속삭였다. “그렇다면…… 원하시는 대로 정인의 곁으로 가게 해 드리지요.” “무슨―.” 채 질문을 입 밖으로 내기도 전, 섬뜩한 충격이 가슴을 관통했다. “쿨럭……!” 불에 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혀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가면 같은 미소를 띤 채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륜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파리하게 색을 잃어 가는 세희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깊고 깊은 입맞춤. 마지막 남아 있는 공기까지도 모조리 빼앗아 버리고 말겠다는 듯이 집요했다. 가슴의 검상에서 흘러내리는 피와 함께 저항할 힘조차 몸에서 빠져나갔다. 세희의 눈가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아, 밉다. 미워. 증오스러워. 나의 몸을 탐하고, 나의 가족을 죽이고 나의 생명까지 빼앗아 가는 저자가 미치도록 밉다. 저자에게 내가 맛본 고통을 그대로― 아니, 몇십, 몇백 배로 부풀려 갚아줄 수 있다면……! “세희 성희.” 깊은 입맞춤 사이로 륜이 가만히 속삭였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