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우리가 책의 소재로 삼고 싶었던 것은 우리 스스로 뭉쳐서 책을 읽으며 함께한 ‘진짜 공부’였다. 주입식 공부,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 제도교육이 다져주지 못하는 것들을 스스로 깨우쳐나가고 정말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한 것이다. 노란잠수함은 우리가 입시 준비라는 답답한 틀에서 탈출할 수 있는 ‘명분 있는 통로’였다. --- p.7
애초에 ‘노란잠수함’, Yellow Submarine이라는 이름은 비틀즈의 앨범에서 따온 것입니다. 노란색은 회원들의 지적 재기발랄함을 뜻합니다. 학문의 탐구에 대해서 어떤 경계, 어떤 권위도 넘나드는 지적인 월경(越境), 이것이 우리의 정신입니다. 잠수함이란 것은 우리 클럽이 아직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영역에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주류 논리에 편승하면 아마도 그 논리를 강화함으로써 우리의 사회적 지위는 더 공고해지겠지만, 과감히 그것을 포기하고 비주류에 머무르며 주류의 허위의식을 비판할 때,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 클럽은 바로 이런 정신을 추구합니다. --- p.77
처음 노란잠수함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는 기대 심리가 컸다. 어떻게 해서든 선생님을 구하려던 것도, 논술을 위해 모임의 성격을 바꾸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입시 준비에만 매몰되었더라면 자칫 모른 채 지나칠 수 있었던, 소중한 마음가짐을 배웠다. 15회에 걸친 토론에서 우리는 증여, 연대, 선물이 무엇인지 배웠다. 입시 공부에 갇혀 펴지 못했던 상상의 날개를 펼 수도 있었다. 독서의 즐거움도, 그 필요성도 알게 되었다. --- p.125
어째서 우리나라의 많은 고등학생들은 스무 살이 가까워서야 생각하기와 글쓰기를, 그것도 ‘입시를 위해서’라는 옹색한 이유로 해야만 하는 것일까. 실로 생각하기(느끼기)와 글쓰기는 삶과는 떼어놓지 못하는 것이다. 굳이 거창한 이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하고(느끼고) 글을 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살아나갈 근거를 마련해준다. 생각하고(느끼고), 질문하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일들과 글쓰기는 떨어져 있지 않다.
…… 나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생각하기(반성하기 내지 성찰하기, 또는 의심하기)’의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누구도 그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팽배한, 그러나 문제 있는 통념들이나 차별에 대한 어떤 감수성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것들을 재생산하는 선생들도 있었다. 공교육의 이런 한계를 이 지면에서 깊이 다루는 것은 어렵겠지만, 다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느꼈던 이런 문제의식을 다시 떠올려보고, 어떤 식으로 그것을 생각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일이다. --- p.129
…… 고등학생의 모임이다 보니 토론에 있어서 진행에 있어 미숙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모든 회원들이 동의한 결과 토론 진행을 도와주실 강사를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토론은 2주에 한 번씩, 1회 2시간 신촌의 전문 모임 공간인 'T'에서 진행합니다.
정기 고사 기간(연중 4회)에는 모임을 잠시 중단합니다. 토론에 드는 비용(대실료, 잡비 등)은 저희가 전부 부담하니 잠시 시간을 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강사님께 수강료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 p.133
끝없는 경쟁 속에서 동무는 실종되고, 적대자들만 늘어가는 것이 소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처지였다. 겉으로는 웃고, 서로를 치켜세우는 듯 말하면서도 온갖 감각을 동원해 경쟁자들의 ‘전투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 (나를 포함한) 그런 아이들의 말하기 방식이었다. 각자 부모의 재산과 자신의 노력이 상대방보다 어느 정도 앞서는지를 쉴 새 없이 가늠하고 있었다. 실상 그런 식의 대화 속에서 또 아이들은 어떤 아이가 자신의 앞날에 더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인맥을 쌓기도 했다. 그런 숨 막히는 지경이 나는 싫었다. 위악적으로 이죽거리고 싶었다.
노란잠수함이 그 숨 막힘을 덜어 주었음을 나는 정말로 고맙게 생각했고, 지금도 다행이지 싶다. 그 속에서는 그래도 살 만했다. --- p.209
주변 사람들이 저에 대해 말할 때, 성실하다고 하거든요. 초등학생 때부터 들었던 말인데, 성실하다는 말에는, 남들의 요구 사항을 잘 들어준다는 측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노란잠수함 활동을 하면서 제가 뭔가 할 때 이게 과연 옳은 걸까 하고 질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어요. 신념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옳은 게 아니라면 안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어요.
---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