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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망치

유리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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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5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510g | 128*188*35mm
ISBN13 9788979190113
ISBN10 8979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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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고속도로와 마주한 북쪽 면은 유리창이 특히 더러웠다. 창문닦이 청년은 세제가 든 양동이에 샴푸를 넣고 유리에 거품을 듬뿍 발랐다.
통증을 참으며 천천히 거품을 쓸어모으는 순간, 오른손에서 스퀴지가 미끄러지며 밑으로 떨어졌다. 커튼 사이로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창문에 얼굴을 댔다. 사무실 문 바로 옆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움직임이 없었고, 숨을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살아 있는 걸까?
창밖에서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 주먹으로 유리를 두들겼다.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p.56

시이나 아키라는 보이지 않는 문을 찾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전부 잘못되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세계는 이곳이 아니다. 여기 말고 더 어울리는 세계가 있을 것이다. 아키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참고 견뎠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냉정하게 관망하며 조금이라도 개선하려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결국 깨달은 건, 자신과 자신이 원하는 세계 사이에 투명하면서도 무서우리만큼 단단한 벽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벽을 돌파해야 한다.
그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벽 이쪽에서 수백 번을 기어다녀봤자 어디에도 도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벽을 부수고 바람구멍을 내든지, 일부에게만 가능한 보이지 않는 문을 찾아 저쪽 세계로 탈출하는 수밖에 없다. --- p.333

아키라는 빌딩 창문닦이 일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신속하고 꼼꼼하게 일하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육체의 안전도 보장된다. 더러움을 닦아낸 뒤 아름답게 반짝이는 유리창은 새로운 인생의 상징처럼 보였다. 회사에서도 그런 모습을 인정받아, 어느새 아르바이트 직원이나 신입사원을 지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업무가 궤도에 올라 여유가 생기자, 장래에 대한 수많은 두려움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자신은 사토 마나부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긴급대피이자 거짓인생에 지나지 않는다. --- p.383

……살아야 할 인간과 죽어야 할 인간을 마음대로 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 아무리 그럴듯하게 말해도 결국 돈을 노린 살인 아닌가? 강도살인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아니,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들보다 더 악질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죽이고 강간하고 빼앗는 것은 이 사회뿐만 아니라 자연의 섭리다. 법치국가란 말은 최근에야 부르짖게 된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방법이 더욱 교묘해져 겉으로 들어나지 않을 뿐, 약육강식의 원리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아버지는 어리석었기 때문에 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처참하게 잡아먹혔다. 난 잡아먹히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잡아먹히기 전에 먼저 잡아먹고, 놈들보다 강해져 오히려 이쪽에서 잡아먹겠노라 결심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
아키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하려는 일은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하지만 굳이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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