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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de on 위로가 되는 영화
… Prologue 첫사랑이 돌아왔어 제1상영관 당신의 그 애증의 공간, 도시 도시를 떠난 듯 숨어들다 〈멋진 하루〉 만날 듯 스치고 지나가는 〈카페 뤼미에르〉 도시에서 우리는 언제나 이방인 〈사랑해, 파리〉 낯선 도시에서 멘토를 만나는 행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기념일로 들뜬 도시 〈러브 어페어〉 제2상영관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오브제의 촉감 〈토니 타키타니〉 봄날, 간다 〈봄날은 간다〉 다시 봉인해야 할 기억들 〈이터널 선샤인〉 수다의 연애담과 뮤즈의 희생담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사랑과 경계심 사이 〈색, 계〉 떠오르지 않는 얼굴 〈클로저〉 실수를 반복하는 증상 〈브로크백 마운틴〉 만날 수 없는 도플갱어 〈시월애〉 닮아가면서 상처를, 얻는다 〈하이 아트〉 사랑은 마법이 필요하다 〈러브 액츄얼리〉 제3상영관 체념과 회의의 힘 지음의 연인은 없다 〈원스〉 자유를 의식하지 않는 자유 〈세 가지 색: 블루〉 …well, live, well, live 〈노마 레이〉 ‘돕다’라는, 위험한 기호 〈사랑의 기적〉 제4상영관 판타지의 두 얼굴, 조울 100분짜리 주크박스의 판타지 〈맘마미아〉 냉소로의 편한 도피 〈아이스 스톰〉 한 번쯤 환상을 품어도 될까 〈아멜리에〉 예정된 끝 〈렛 미 인〉 제5상영관 당신만의 발성법을 위해 언어라는 주술 〈일 포스티노〉 경계를 견디는 법, 글쓰기와 눈물 〈처음 만나는 자유〉 쓰는 여자 〈어톤먼트〉 쓰는 자들의 계보 〈디 아워스〉 제6상영관 혼자 본 영화 내가 본 당신이, 진짜 당신이었나 〈달콤한 인생〉 당신을 묻어야 할 시간 〈화양연화〉 당신을 모방하지 않는다는 것 〈타인의 취향〉 우리는 샴쌍둥이가 아니어야 한다 〈행복〉 제7상영관 내 삶의 장르 찾기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찾다 … Epilogue 당신의 근황 〈아바타〉 … Fade off 울음이 참아지는 영화 |
저는 희수와 병운이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떤 과거의 시공간을 공유한 사람들이지만, 그 기억조차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다른 기억이기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다른 기억들을 다시 한 자리에 풀어 놓으면서 그것을 재조립하는 새로운 연애놀이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해 저물면 놀이가 파하듯이 연애유희도 지리멸렬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당신이 희수의 처지라면 오히려 병운을 찾지 않길 바랍니다. 그 마지막, 100원 단위까지 촘촘히 적힌 차용증이 바로 사랑과 기억과 연민과 그리움이 응축된 결절점이니까요. 그 차용증이 어떤 식으로든 폐지가 되지 않으려면, 희수, 혹은 당신은 병운에게 가고 싶은 마음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 p.25, 도시를 떠난 듯 숨어들다, 〈멋진 하루〉 중에서
실은 이렇다. 지금 내가 여기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안, 나와 무관한 일들이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심심하게, 말도 안 되게 일어난다. 다음 날 거짓말 같은 담론들이 지난날의 숙취와 일탈과 실수와 우연을 엮어 도시의 거리에 떠돈다.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이방의 언어들 속에서, 쓰는 어휘목록이 비슷한 사람과 말을 섞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런 사람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여기’서도 이방인이며 ‘저기’서도 이방인이다. 물리적으로 같은 시공간에 있어도 우리는 늘 그/녀들에 대해 아웃사이더이며, 그 때문에 우울하다. 따라서 나는 내 몸이 놓여 있는 이 도시의 모공 속에 있는 히키코모리이며, 그런 모습이 파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 p.37, 도시에서 우리는 언제나 이방인, 〈사랑해, 파리〉 중에서 그러나 은수의 “자고 갈래요?”에서‘상우(유지태)’의 “나 좀 재워주라”까지 걸린 시간은 세 계절이 채 안 된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와 “내가 전화하지 말랬지!” 사이의 시간. “우리도 죽으면 저렇게 같이 묻힐까?”라는 말이 폐기되어 떨어지는 꽃잎 사이로 부유하는 시간은, 속절없이 짧다. 영화는 그 시간을 간편하게 자르고 이어 붙이지만, 현실에서 사랑과 이별이라는 이종異種 해프닝의 결합은, 수많은 알레르기와 유치한 방어기제와 거세거나 미미한 발증發症과 오한을 동반한다. 마침내 실연인 것이다. --- p.72, 봄날, 간다, 〈봄날은 간다〉 중에서 이 영화, 메릴 스트립이 들어 있는 진화된 오르골로 비유해볼 수도 있겠다. 영화에서 도나(메릴 스트립)의 딸인 소피와 같은 이름으로 26년 전 메릴 스트립이 출연했던 〈소피의 선택〉을 본 나로서는, 주름살을 인위적으로 편 듯한 경직된 메릴 스트립의 얼굴이,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는데, 특히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약간의 처연함과 서늘함이 교차되기도 하였다. 메릴 스트립의 의상이 오버올에서 드레스로 바뀌어갈 때, 그녀가 부르는 노래 가사가 “돈, 돈, 돈Money, Money, Money”에서 “어떤 자신감도 없어요No self-confidence”로 추락해갈 때, 점점 나는 더 피로해지고 있었다. --- p.176, 100분짜리 주크박스의 판타지, 〈맘마미아〉 중에서 마이클 커닝햄 또한 버지니아 울프처럼 또 다른 텍스트들이 방류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는 작가로서 끊임없이 다른 텍스트들에 호출 당하고, 역시 또 다른 텍스트를 호출할 것입니다. 그로부터 세상은 보르헤스가 말한 대로 무한육면각체로 이어지는 바벨의 도서관이 되어가겠지요. (……) 저는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 삶은 언제나 속편이며, 내 글은 언제나 표절이며, 내 시간은 언제나 샘플링된 프로그램처럼 운용되는 것은 아닐까……. 삶에 저작권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해지지요. 당신은 어떠신가요. 혹, 사랑할 때도 썼고, 실연했을 때도 썼으며, 슬픔은 과장해서 썼고, 기쁨은 부풀려서 쓰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글쓰기라는 것, 혹 삶의 시프트 키shift-key가 되지는 않았던가요. --- p.235, 쓰는 자들의 계보, 〈디 아워스〉 중에서 |
영화는 위로가 됩니다
‘지금, 여기’를 잊게 해주어 위로가 되고, ‘지금, 여기’와 유사한 맥락을 따듯한 해피엔드로 봉인해주어 위로가 되고 ‘지금, 여기’ 상처의 환부를 들추어내어 더 큰 상처를 만듦으로써 내성을 키워 결국은 위로가 필요 없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영화, 조심스럽게 말을 걸다 일하고 살아가고 또 사랑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 저도 모르게 자신을 감싸고 방어하는 법을 알게 된 우리 시대 일하는 싱글 여성들에게 보내는 영화 속 위로 그리고 눈물의 메시지를 담았다. 자기만의 색이 분명해지고, 타인과 섞이는 것이 조금씩 귀찮아지는 서른 중반쯤이면 일방적이고 일반적인 공감대 형성에 강한 저항을 보이기 마련이다. 또한 오래된 고독과 외로움을 덤덤하게, 때로는 차가울 만큼 냉정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토록 영화 같은 당신』은 조금쯤 마음의 벽을 쌓게 된 그녀들에게 영화를 통해 ‘당신을 이해하노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책이다. 지은이는 독자에게 지나치게 바싹 다가가가거나 무리한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글에 대한 몰입과 공감을 강요하는 대신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섣부른 해답을 내리는 대신 ‘당신의 마음이 혹시 이런 건 아닌가요?’ 하고 독자에게 조심스레 되묻고, ‘사실 나도 그랬어요’ 하고 가만히 고백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영화, 혼자만의 방을 만들어 주다 영화는 혼자만의 방을 만들어 준다. 그 혼자만의 방에서 우리는 나와 영화, 온전히 둘만 존재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공간에서 영화를 통해 위로받고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이토록 영화 같은 당신』은 그 혼자만의 방을 기억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추억하고, 그때 받았던 위로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자신의 글이 독자들에게 ‘이상하다. 그런데 나쁘지 않다’ 혹은 ‘어렵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는 알겠다’ 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지은이 특유의 세련되고 현학적인 문체로 쓰인 글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가끔은 어렵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글의 호흡을 가만히 좇아가다보면 이마저도 자연스럽게 읽히고, 어렴풋이 지은이가 하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는 독자들이 혼자만의 방에서 영화와 나누었던 사적인 언어와 내밀한 교류를 작가 또한 경험했고, 이를 진솔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만의 방에서 떠올렸던 지나간 사랑과 현재의 사랑, 우정과 가족, 일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때 그 영화를 통해 받았던 위로와 눈물을 기억하고 음미하며 지은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마음 한 귀퉁이에 찾아드는 아련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위로했던 그 영화들만을 상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 이 책은 일곱 개의 상영관을 가진 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의 대부분은 예술 영화와 대중 영화 중간에 위치한, 싱글여성들이 ‘혼자’ 관람했거나 혹은 ‘마음이 맞는 친구’와 관람했을 만한 영화들이다. 또한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한두 번쯤은 대답해봤을 법한 영화이며,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벌써 다음에 다시 볼 기약을 할 만큼 애착이 가는 영화들이니 그 제목들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추억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처럼 풍성한 기분이 들 것이다. 우리의 삶의 터전이자 애증의 공간인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제1상영관, 사랑과 그 후일담에 대한 영화를 이야기 하는 제2상영관, 체념과 회의 또 그 안의 긍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제3상영관, 판타지의 두 얼굴에 대해 이야기하는 제4상영관, 자신만의 언어를 찾는 법에 대한 제5상영관. 그리고 ‘나’에 대한,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제6상영관과 제7상영관까지, 우리는 『이토록 영화 같은 당신』을 통해 일곱 개의 상영관을 차례로 돌며, 총 서른 네 편의 영화를 다시 보고, 다시 추억하며 그 영화 속 ‘나’를 만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