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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역사도시 70

위대한 역사도시 70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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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328g | 200*260*30mm
ISBN13 9788993119169
ISBN10 8993119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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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크_세계 최초의 도시
기원전 3000년 무렵 우루크는 인구 3만~5만 명의 번영한 도시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이루는 삼각주의 북 강변, 지금의 바그다드에서 남으로 3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5.5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도시를 거대한 성벽이 둘러싼 우루크는 당대 세계 최대 도시였고, 다른 민족이나 도시와 폭넓은 정치 및 통상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우루크의 발달한 도시 행정과 화려한 건축물은 널리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을 찬양한 서사시도 몇 편 있는데, 특히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 최초의 문학으로 꼽힌다.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는 기원전 27~26세기에 실존한 지배자다. 그러나 서사시에 묘사된 그의 영웅적 행적은 전 시대의 사건을 반영하며, 그의 시대에 왕국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길가메시 시대에 우루크는 이미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였고,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척박한 환경에 훌륭하게 적응했다. 중동에는 더 오래된 거주지도 있지만,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의 평평하고 습한 충적토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5000년 이후의 일이다. 기후가 너무 더운 데다 강물을 다스리기가 어려워 자주 범람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치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물을 다스리려면 가깝고 먼 이웃 부족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져야 했다. 점점 더 많은 촌락이 합세하자 전문 중재자가 필요해졌다. 고고학적 증거를 보면 기원전 3500년경 우루크에는 넓은 도심, 효율적인 행정 및 지역 조직, 웅장한 공공건물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 도시의 면모를 보여주는 특징이다. 농부들이 식량 문제를 담당했고, 기술자들이 의복·도기·도구의 대량생산 체제를 조직했으며, 예술가들은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도시의 미관을 장식했다. ---p. 20

테베_이집트 황금기의 도시
고대 이집트인은 테베에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도시를 건설했다. 시대를 초월한 이 도시에는 역설적으로 불사의 존재라는 파라오들이 죽어 묻혔다. 기술자들은 오래전에 죽은 자의 ‘아쿠(빛나는 영혼)’가 영원히 존재하는 ‘신성한 땅’에서 황금과 채색된 돌을 치우고, 창조주 ‘아몬(숨겨진 자)’과 그의 인간 아들 파라오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 룩소르에서 볼 수 있는 신전, 궁전, 묘지, 대로를 상상하고 건설하는 데는 2000년의 세월이 걸렸다. 석회암과 화강암의 육중한 벽에 새긴 커다란 상형문자는 아몬의 의지가 인간사에 어떻게 관철되었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무슨 이유에선지 고전 작가들은 이 도시를 그리스의 도시 ‘일곱 성문의 테베’와 같은 명칭으로 불렀으나 본래 이집트 이름은 와세였고, 주민들은 그냥 노, 즉 ‘도시’라고 불렀다. 전성기인 기원전 13세기에 한 시인은 “와세는 모든 도시의 원형이므로 다른 도시들의 이름은 그 참된 이름을 좇는다”라고 읊었다. (중략)
테베의 전성기는 신왕국 시대(기원전 1539~1069년)였다. 당시 테베는 이집트 세계의 중심이었고, 그들의 신 아몬은 누비아에서 레바논에 이르기까지 두루 숭배를 받았다. 파라오의 장례는 국가 신앙의 정서적 핵심이었다. 투트모세 3세(기원전 1479~1425년)를 필두로 신왕국의 거의 모든 파라오는 죽은 후 데이르알바흐리 너머의 사막, 오늘날 ‘왕들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곳에 안치되었다. 왕릉의 벽에는 영혼이 어둠과 진공을 뚫고 두아트, 즉 ‘숭배의 상태’에 도달하는 서사적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 선명한 색채와 섬세한 부조는 정신적 자각을 석회암 조각으로 묘사하려 한 테베인의 오랜 꿈을 잘 보여준다.---pp. 26~29

바그다드_아바스 칼리프 왕조
바그다드는 최고의 대도시였다. 지배 귀족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군대, 관료, 상인, 기술자, 지식인, 학자 등이 힘을 모아 풍요로운 도시 문화를 일구었다. 인구 구성도 국제적이고 다양했다. 아랍 칼리프 왕조가 이란 속국민의 지지를 받아 집권했고 중앙아시아에서 모집한 튀르크 병사들에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칼리프 왕조는 현지 그리스도교도, 유대인, 조로아스터교도도 통합했다. 바그다드의 명성과 부가 널리 알려지자 이슬람 세계를 비롯한 바깥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중략)
바그다드는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지적 활동의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상업의 중추이기도 했다. 부와 사치품이 넘치는 바그다드의 시장은 《천일야화》의 이야기를 낳은 원천이다. 도시의 번영은 후배지의 풍부한 농작과 이슬람 제국의 안팎, 인도양과 중국, 아프리카, 대서양과 유럽에까지 뻗은 방대한 교역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부의 감독 아래 상인들이 운영하는 바그다드의 시장은 세계 각지에서 온 물건을 사고파는 곳으로 상업과 금융 거래의 중심지였다.---pp.93~95

사마르칸트_티무르가 선택한 도시
사마르칸트만큼 순전히 한 사람의 힘으로 일군 도시도 없을 것이다. 칭기즈칸은 마치 세상을 비웃듯이 여러 문명을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2세기 뒤 티무르는 예술과 과학을 이용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그는 사마르칸트에 전 세계를 집약하려 한 듯하다. 그것은 그 자신을 위해서도, 신을 위해서도 대단한 위업이었다.
도심 주변에 그는 가장 놀라운 건축물을 계획했다. 비비하눔이라는 왕실 모스크인데, 미나레트의 높이가 49미터나 된다. 수많은 기술자가 건설에 투입되었고, 인도코끼리 아흔다섯 마리가 대리석을 현장으로 옮겼다. 티무르는 문을 너무 낮게 지은 공사 감독을 처형하기도 했다. 늙고 다리도 불편한 그는 가마를 타고 현장에 나가 공사를 채근하면서 마음에 드는 인부에게는 고기를 던져주었다. 그 때문에 졸속 공사로 끝나 그가 죽기 전부터 모스크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략)
그래도 사마르칸트의 유산은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도시의 명성은 티무르의 손자인 천문학자 군주 울루그베그의 치세에도 유지되었다. 그는 자신의 천문대에서 새로운 별 200개를 발견했다. 한편 헤라트에서 티무르의 아들 샤루크와 그의 후계자들은 쾌락에 탐닉했다. 이들은 진귀한 세밀화, 시, 화려한 건축물의 잔해를 남겼다.---pp. 118~119

상파울루_커피와 상업
커피 산업이 발달하면서 상파울루는 급속히 성장해 이내 리우데자네이루를 제치고 브라질에서 가장 중요한 대도시가 되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신흥 부유층 파울리스타, 이른바 ‘커피 귀족’은 도시의 조경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상파울루의 인상적인 건축물 가운데 이 시기에 세운 것이 많으며, 대부분 건축가 프란시스쿠 데파울라 라모스 데아제베두가 설계를 맡았다.
상파울루 태생인 라모스 데아제베두는 벨기에로 유학을 떠났다가 1879년 고향에 돌아왔다. 상파울루에서 그는 현지 귀족과 협력해 브라질에 유럽식 취향을 도입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루즈 철도역, 시립 극장, 시립 시장, 리세우 데아르테스 등이 있다. 그는 상파울루의 도심을 이룰 대로의 설계와 건설에도 기여했다.
아베니다 파울리스타는 1891년에 우루과이 건축가 요아킴 에우헤니오 데리마의 지휘로 착공했다. 데리마는 폭 28미터의 긴 대로 아베니다 파울리스타를 건설하고 대로변에 주민이 저택을 지을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커피 귀족은 앞다투어 새로운 도심으로 이주했다.
아베니다 파울리스타는 곧 상파울루의 중심지가 되었다. 1894년 그곳에 자리 잡은 엘리트 주민의 압력에 못 이겨 시의회는 대로변에 공장 건축을 금지하는 상파울루 최초의 구역설정법을 통과시켰다. 또 농촌에서 보낸 가축이 그 웅장한 대로를 지나는 것도 금지했다. (중략)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상파울루는 미래와 과거를 복잡하고 다양하게 반영한 도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신흥 상업 지역이 생겨나 아베니다 파울리스타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지만, 그 역사적 대로는 늘 도시의 심장을 이루고 있다.
---pp. 27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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