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잠이 들어 있어야 할 새벽, 그 아이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남수는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새벽마다 집을 나섰다. 방학에만 용돈벌이로 한다던 신문배달을 이제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남도는 눈을 감은 채 남수의 움직임을 가늠해 본다. 남수가 작은 누이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제 옆에 나란히 누운 할머니와 남도가 깰까 봐 기지개 한 번 켜지 않고 사뿐 일어난다. 방에 불도 켜지 않는다. 자기 전 챙겨놓은 옷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옷을 갈아입고 눈곱만 띤 채 현관문을 나선다. 남수 다음은 할머니 차례였다. 할머니는 굴 공장에 가기 위한 채비를 서둘렀다. 여러 겹의 옷을 껴입는다. 내복과 일 바지를 몇 겹이나 껴입고 바스락거리는 작업복을 마지막으로 껴입으면 채비는 끝났다.
아들을 앞세운 노모(老母)는 쪽진 머리를 짧게 잘랐다. 촘촘하게 빠글거리는 파마머리를 한 그녀는 더 억척스러워졌다. 장화를 신고 필요한 도구를 챙겨 현관문을 나선다. 그렇게 두 번의 새벽이 걸어 나가면 남도는 눈을 떴다. 남수와 할머니의 자리를 더듬어 본다.
“할매, 새벽에 나갈 때 이불 개지 마라.”
“와?”
“아니 옆에서 자꾸만 이불 개 쌓고 그라모 잠을 못 잔다 아이가.”
등허리에 닿는 손이 맵다.
“아이고, 이 가시나 이기 언제 사람 될라고 그라노.”
“아, 왜 때리 쌌고 그라노. 그기 아이고….”
남도는 말하지 못했다. 진심을 말하면 할머니가 슬퍼진다, 생각했다. 빈자리를 더듬다가 눈이 감겨도 쉬 잠들지 못했다. 그 아이의 새벽에 대해서 생각했다. 남도는 상상으로 그 새벽을 함께 걸었다.
작고 거친 손으로 한 달에 한 번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할머니의 목울대가 떨렸다. 한 서린 울음은 명치끝에 고여 펄펄 끓었다.
“할매야, 나 밖에서 놀다 올게.”
쑥스러운 남수는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할 새라 서둘러 나가버렸다. 남도는 뒤로 멀찍이 물러앉아 옷 끝만 만지작거렸다. 굽은 어깨를 손에 힘주어 잡기도 힘들 정도로 노쇠한 그녀가 콧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그것을 훔치며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잘 정리된 그릇을 죄다 끌어다가 설거지를 하는 것도 모자라, 흰 빨랫감을 그러모아 비누를 척척 치대 푹푹 삶기 시작했다. 불 앞을 떠나지 않고 내내 그것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빨래 삶는 냄새가 집안을 그득 채웠다. 남도는 뿌옇게 김 서린 창문을 살짝 열어 남수를 찾았다. 해는 지는데 아이들 소리는 지지도 않고 온 동네에 울렸다. 익숙한 목소리는 어디쯤 있나 가만 귀를 기울였다.
“남수야, 빨리 들어 온나. 누구가 손에 약 발라 줄게.”
남겨졌다. 원한 건 아니었지만 결국은 그리되어야 할 일처럼 거절되고 남겨진 삶. 그 시간을 살아내야 할 삼 남매는 어두운 방에 나란히 누웠다. 남도는 생각했다. 의지대로 태어난 적 없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삶이 아니었다고.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 함구하며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매번 아침인가 하면 밤이 되었고 내일이 되면 어제는 열쇠 없이 잠긴 서랍장에 방치되었다. 어떻게 살고 있나, 잘살고 있나, 우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서로에게 물음은 사치였다. 그저 견뎌야 할 시간만이 하루의 할당량처럼 채워졌다.
삼 남매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일상에 적응해 나갔다. 모든 것을 다 움켜쥘 수는 없었다. 슬픔이나 그리움, 지나간 시간을 두 손 가득 붙잡고서는 숟가락을 들 수 없는 것처럼. 밥이 넘어가지 않으면 찬물에 말아 술술 넘겨버리면 그만이었다. 붙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것도 그저 머물러 주는 법이 없었다.
늘 엎드려있던 아이가 있다. 아픈 건 아니었다. 아니, 너무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짓궂은 동심은 악마였다. 누구도 그 아이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남도는 종이학교 5학년 1반의 여자 부반장이 되었다. 상처는 오래되어도 무뎌지거나 바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선명했다. 밝은 빛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웅크리는 쪽을 택했던 남도. 철저히 홀로이길 자처했지만 불가항력적 환경에 놓여 혼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아들이 이리 떠드는데 부반장은 뭐 하노? 앞에 나가서 떠드는 사람 이름 적어야 하는 거 아이가?”
“야, 니나 조용히 해라. 우리 부반장님은 우리하고 달라갖고 반에 신경도 안 쓰고 맨날 천날 엎드려 있다 아이가.”
“맞나. 근데 지금 니하고 나하고 떠들고 있는데 우리 이름 우리가 칠판에 적어삘까. 아이다. 남자부반장이 있다 아이가.”
“야, 느그는 내가 불쌍하도 안 하나. 나가 맨날 여자 부반장 뒤치다꺼리하고 있는 거 다 안다 아이가.”
결말은 궁금하지 않았다. 아직 결말이 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남도가 있기 때문이다. 남도에게 따듯한 안녕을 고해본다. 그 안녕의 끝에서 새로운 안녕을 맞이할 수 있도록 두 팔에 힘을 주고 기꺼운 마음으로.
“언니야 화났나? 같이 좀 가자.”
“됐다. 말도 걸지 마라.”
“좀 천천히 걸으면 안 되나. 빨리 걸은게나 다리가 아프다 아이가.”
“따라 오기는, 왜 또 따라 오는데. 내가 니 때매 몬 산다!”
“나는 언니, 니 없으면 몬 산다.”
좋은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들이 많긴 했지만 결국 기억하기 좋은 것들만 남았다. 기억의 간격을 유지하며 이 기억에 저 기억을 덧대지 않았다. 구멍 난 기억이라 해도 괜찮았다. 그것은 그것대로 놓아두기로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는 기억에서 더 이상 이방인이 되지 못했다. 늘 새날을 사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여전히 과거의 그날을 사는 중이었다. 내일이 되면 또 오늘을 끌어안고 사는 것처럼. 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남도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그래. 깊이 묻어 놓았던 어떤 기억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뿐이야.’
제 기억의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창문과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른 남도는 이제 어린 남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슬픔이라는 손님을 맞이하기로 했다. 그 손님은, 우는 걸 좋아하니까 울고 싶어 할 때는 눈을 감아주기로 한 것이다.
어른들은 가난 앞에서 분노했다. 고개 숙인 남도.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던 여러 이야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갔다. 숨을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어른들의 분노가 뱉은 수치는 오롯이 남도의 몫이었다. 누구도 그 고통을 나누지 못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시절. 시간은 약자임을 거부한 진짜 약자들의 편이 아니었다.
“밥 묵고 있다 아이가. 할매도 밥 무라. 나가 알아서 할긴데 만다 그리 걱정을 해 쌌노.”
실은 할머니의 그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서 선뜻 그러겠노라 말하지 못한 것인데. 오히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툭, 뱉어 버렸다.
‘그래. 깊이 묻어 놓았던 어떤 기억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뿐이야.’
제 기억의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창문과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른 남도는 이제 어린 남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슬픔이라는 손님을 맞이하기로 했다. 그 손님은, 우는 걸 좋아하니까 울고 싶어 할 때는 눈을 감아주기로 한 것이다.
남희는 생각했다. 우리가 그동안 받았던 상처에게 적극적 안녕을 고하는 날. 그날이 삶의 변수처럼 문득 다가오기를. 아무것도 아닌 날, 얼굴에 부서지는 따듯한 볕처럼 또 다른 안녕을 맞이할 수 있도록. 다행한 건, 서로가 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고 있나, 잘살고 있나, 우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서로에게 물음은 사치였다. 그저 견뎌야 할 시간만이 하루의 할당량처럼 채워졌다.
오늘은 아무래도 좋을 날이고 싶어졌다. 어차피 오늘도 내일도 아무것도 아닌 날이라 자위해도 좋을 날.
그 바다를 잠시 끌어다 놓는다. 열두 살 남도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모래사장에 누워 본다. 팔과 다리는 편한 대로 널브러뜨린다. 눈은 떠도 좋고 감아도 좋다. 아무래도 하늘은 거기에 있고 바다는 물비늘로 반짝거렸다. 그저 누웠다 가면 된다. 어둑해지면 달이 차오르고 바다는 조금 더 넉넉한 품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다만 기억해야 하는 오늘. 바다에 또 하나의 달이 여울지면 울어도 좋고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겠다. 선택의 여지없는 내일이 일렬로 서서 오늘의 기억을 마주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