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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당의 기원과 비밀외교

개화당의 기원과 비밀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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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6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153*224*30mm
ISBN13 9788933707326
ISBN10 893370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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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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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과 1875년 사이에 베이징 주재 영국공사관을 3차례나 비밀리에 찾아가서 군함의 파견을 청원한 오경석은, 1876년에 일본 군함이 강화도에 접근하자 자발적으로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조선의 내부사정을 밀고하였고, 조약문을 한문으로 번역한 후 일본 측에 유리하도록 설명한 혐의가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운요호사건의 사과문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또한 처음부터 무력을 과시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다가 협상이 평화적으로 타결되어 일본 군함이 무사히 떠나가자 홀로 애석해 마지않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막연하게 오경석이 조일수호조규의 체결에 큰 공적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그의 실제 ‘기여’는 이와 같았다.
― ‘제1장 영국공사관을 찾아온 조선인 역관’ 중에서, 58쪽

하지만 비밀결사 개화당은 이미 10년 전인 1871년에 유대치와 오경석의 지도로 결성되어 정권 장악과 국정 혁신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보듯이 이들이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의 독립을 적극 주장한 것도 실은 국왕의 신임을 얻고, 일본과 서양국가의 원조를 획득해서 친청파 관료들을 제압하려는 정략적 고려와 무관하지 않았다. 따라서 김옥균 등이 후쿠자와의 가르침을 통해 조선이 노쇠한 청제국의 조공국에 안주하는 현실을 깨닫고 그 자주독립을 위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는 것은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날조된 신화에 불과하다.
― ‘제3장 김옥균의 첫 번째 일본 방문’ 중에서, 140쪽

“지금 공사(公使)는 위임장이 없으니, 형편상 이제부터 국채를 얻는 방법을 주선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을 데리고 귀국해서, 정부의 명문(明文)을 가져온 다음에야 비로소 허락할 수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제가 유감으로 여기며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위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라고 하신 말씀은 본래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중략) 저는 외국 정황을 알지 못해서, 저 혼자 수십만의 돈은 담당자에게서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명을 받을 때 위임장 한 가지 일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못했으니, 그 책임은 공사에게도 있지 않고, 정부에도 있지 않으며, 오직 저 한 사람에게 있을 뿐입니다. (후략)

끈질기게 차관을 요청하는 김옥균에게, 이노우에 가오루는 위임장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물론 이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김옥균은 이때까지만 해도 국왕의 위임장만 가져오면 차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갑신일록』에서 “나는 또 일본 조정의 당국자들과 때때로 동양의 사무를 논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의 재정이 곤란해서 떨쳐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을 하자, 그들은 모두 만약 조선 정부의 국채위임장만 있으면 성사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마침내 귀국하기로 결심했다.”라고 한 구절로도 알 수 있다. 김옥균은 상황을 오판하고 있었다.
― ‘제4장 김옥균의 두 번째 일본 방문’ 중에서, 193쪽


이윽고 유학을 위해 북미(北美)의 미국으로 향하려고 할 적에 홍영식 공과 김옥균 공을 일본 도쿄에서 만나서 개혁의 대의(大議)를 의정(議定)했다. 김 공은 외국에서 군대 양성을 주관하고, 홍 공은 국내에서 경성에 주둔한 두 나라(청과 일본) 군대의 철군을 권고하는 일을 주관해서 5년 뒤에 거사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일개 서생으로 계획을 도울 순 없었고, 단지 청임(聽任)에 간여하고 만국의 정형(情形)을 관찰하는 일만 허락받았다.

유길준은 미국 유학을 위해 잠깐 일본에 들렀을 때 홍영식과 김옥균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김옥균은 외국에서 군대 양성을 주관하고, 홍영식은 국내에서 외교적으로 청일 양국 군대의 철군을 도모하고, 자신은 국제정세를 파악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5년 뒤에 거사를 일으키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 ‘제5장 묄렌도르프의 고빙과 개화당의 군대 양성’ 중에서, 252~253쪽

김옥균의 마지막 차관도입 시도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 경위는 이와 같다. 그는 『갑신일록』에서 저간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처음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를 만났을 때, 그의 말이나 기색이 지난날과는 크게 달라지고 나를 의심하고 기피했다. 나는 비로소 다케조에와 묄렌도르프가 모함하는 말이 이미 보고된 것을 알았다. [다케조에는 내가 소지한 위임장이 가짜이니 분명히 신용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략 일본 조정의 상황을 논하면, 비단 다케조에가 이간질을 했을 뿐만이 아니요, 두세 달 사이에 일본 정부의 정략이 갑자기 변했던 것이다. 조선에 대해선 당분간 손을 떼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의도였던 것이다. 그 실상을 안 뒤에는 참으로 구차하게 변명할 필요가 없었지만, 내가 귀국해서 주상과 정부에 보고한 일들이 모두 기만의 죄과(罪科)에 빠지게 되었으므로, 형편상 어쩔 수 없이 실상을 들어 미국공사 빙엄에게 의논했다. 그의 주선으로 요코하마 주재 미국 상인 모스를 미국 내지 영국에 보내서 도모하게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아직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도 몰랐으므로 일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훼방을 놓고 묄렌도르프가 경성에서 영국 상인들과 다방면으로 장난을 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깊이 믿을 수 없다.] 중도에 모스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일본 제일국립은행의 시부사와 에이치에게 상의해서 10만이나 20만 엔을 대여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외무경이 허락하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정부에서 김옥균과 박영효의 무리는 경박하고 조급해서 일을 의논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곧 귀국했다.

여기서 두세 달 동안에 일본 정부의 조선 정략이 바뀌었다고 한 것은 김옥균이 스스로 변명한 말에 불과하다. 적어도 임오군란 이후로 일본의 대조선 소극정책의 기조는 변한 일이 없었다. 김옥균이 일본인들의 외교적 언사 뒤에 숨겨진 속내를 미리 간파하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그의 절박한 심정과 간절한 희망이 판단력을 흐렸기 때문일 것이다.
― ‘제6장 김옥균의 세 번째 일본 방문’ 중에서, 276~277쪽

김옥균의 『갑신일록』과 후쿠자와 유키치의 『시말』을 비교해보면 전체적 구성으로부터 세부내용에 이르기까지 두 문헌이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다 정확하게는, 『갑신일록』은 마치 『시말』을 토대로 해서 일부 내용을 덧붙이거나 수정해서 만든 문헌처럼 보인다.
『갑신일록』을 읽다보면 간혹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다. 예컨대 별궁(別宮)을 설명하면서 “별궁이라는 것은 세자가 혼인할 때 거처하는 궁으로 특히 그 중대한 장소요, 또 서광범 군의 집과 담장 하나 사이라서 궁의 후문이 바로 서광범 군의 정원 앞이니 하수하기에 편했다. 그러므로 여기로 결정한 것이다(別宮者 世子婚禮時所處之宮 特其重大之處 又是其徐君光範家隔墻 宮之後門卽徐家庭前 便於下手 故以此決之).”라고 부연한 것이라든지, 또 미국과 프랑스를 조선식으로 ‘美國’·‘法國’이라고 쓰지 않고 일본식으로 ‘米國’·‘佛國’이라고 하거나 조선의 ‘정자(亭子)’를 일본식으로 ‘별장(別莊)’이라고 표현한 것 등이다. ‘근위(近衛)’, ‘육군대장’, ‘대신과 참찬’ 등도 메이지 일본의 관제와 병제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 ‘제7장 갑신정변에 관한 몇 가지 문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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