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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읽다

자연에서 읽다

리뷰 총점9.5 리뷰 4건 | 판매지수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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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7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456g | 147*205*20mm
ISBN13 9791155250853
ISBN10 115525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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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혜형
대학 졸업 후 십수 년간 출판 편집자로 일했다. 2006년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겼다. 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자급하고, 닭과 병아리를 키우고, 풀꽃과 벌레를 관찰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돈으로 사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 쓰기를 즐겨 짬 나는 대로 옷을 짓고 흙을 빚고 가구를 짠다. 현상의 이면에 관심이 많다. 막연한 미지가 분명한 이해의 영역으로 넘어올 때 희열을 느낀다. 에세이 『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 어린이책 『암탉, 엄마가 되다』 『일기 쓰기 싫어요!』 『열일곱 살 자동차』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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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봄은 오래전 일흔한 개로 끝났고, 엄마의 봄도 최근에 여든다섯 개로 마쳤습니다. 오래전 나는 저물어가는 그분들의 인생을 피어나는 나의 인생과 겹쳐 볼 줄 몰랐어요. 그분들 안에도 ‘피어나는 나’가 있고 내 안에도 ‘저물어가는 나’가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엄연히 한 번뿐인 인생, 단 한 번 피었다 지는 고유하고 찬란한 봄날인 것을, 그땐 헤아리지 못했어요. (…) 생의 유한성은 참을 수 없는 생의 충동을 일으켜 나를 흔들리고 나부끼게 해요. (…) 내 인생의 몇 개 안 되는 봄, 그 가운데 한 개의 봄입니다. 사람의 한평생, 아흔 개의 봄 보기가 어렵습니다. ---「봄」중에서

집에 오신 손님과 함께 뜰에 서서 이야기하며, 참으아리 꽃 위를 잉잉대며 날아다니는 통통한 호박벌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꽃 덩굴에 박제처럼 붙어 꼼짝 않던 암사마귀가 갑자기 빛의 속도로 호박벌을 낚아챘어요.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다들 “어어” 하는데, 손님이 반사적으로 손을 날려 사마귀를 툭 쳤습니다. 호박벌을 돕고 싶었던 거죠. 사마귀가 휘청거렸고 그 틈에 호박벌은 날아갔어요. 호박벌한테 일순 감정 이입이 된 우리는 ‘살았구나, 다행이다’ 하는 표정이었는데, 보고 있던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마귀는 거기서 오래 기다렸어요. 우린 끼어들면 안 돼요.” ---「여름」중에서

삶이 결정적으로 꺾이거나 상상 못할 각도로 휘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 변곡점에서 인생의 큰 틀이 판가름 났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믿어 의심치 않던 강고한 세계가 한낱 허구였음이 확인될 때의 당혹감, 특정한 만남 혹은 사건의 충격이 인생 전체에 일으킨 파열음, 옳고 그름의 잣대도,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도 버린 채 원점에서 자문해야 했던 인생의 의미……. 혼돈과 괴로움의 터널을 통과한 끝에 얻게 된 인식은, 그때까지 완벽하다 믿어온 세계를 해체시켰습니다. (…) 인생은 얄궂어서, 곳곳에 내장된 지뢰들을 예고 없이 터뜨려 삶의 진로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지요. 우리는 예상 가능한 삶을 살 수 없지만,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서 단단한 씨앗 같은 핵심을 마주치기도 합니다. 이생의 꽃 진 자리에 다음 생이 맺히듯이. ---「가을」중에서

작은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얼굴에 발간 훈기를 느끼며 불꽃의 춤을 넋 놓고 바라봅니다. 이 순간을 나는 사랑해요. 불빛과 소리에 감각이 열리면서 낮 시간에는 듣지 못했던 수많은 소리들이 현재형으로 나를 두드리는 걸 느낍니다. 삐리릿 삐릿- 겨울새들의 노랫소리, 그에 화답하는 짝들의 날갯짓 소리, 뒷산 숲을 달리는 고라니의 빠른 발소리, 그 발길에 투둑 툭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바스락바스락 마른 잎 스치는 소리, 산토끼와 청설모가 제집으로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화르르 타닥 탁 탁, 붉게 휘감기는 뜨거운 불 속에서 나무가 제 몸을 내주는 소리…….
---「겨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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