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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96g | 153*210*20mm
ISBN13 9788993506273
ISBN10 8993506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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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김은미
저자는 서울 종로 충신동에서 태어나 건국대 공예학과를 졸업, 2004년 문학세계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현재 ‘수필계’와 ‘테마수필’ 필진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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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부터 가끔 혀를 살짝 빼물고 경련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어제는 혀끝을 따라 하얀색 테두리가 있는 듯해서 잘못 보았나 했더니 오늘은 그게 노란색을 띤다. 입이 마르는가. 짬짬이 물을 마시는데도, 혹시나 해서 스포이드로 물을 짜 넣어 축여주려고 하지만 반기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싫어하지도 않지만.
자다가 뭐라 뭐라 꽁알댄다. 앓는 소리거나 불만에 찬 소리는 아니다. 잠꼬대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잠만 자나 하면 어느 순간 몸을 일으키고는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 멍하다고 표현은 하지만 사실은 멍해 보이는 게 아니라 무언가 추억하면서 웃는 듯한 표정이다.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 애가 보는 것을 함께 보고 싶어진다.

딸은 여러 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코피까지 흘린다. 그래도 오밤중이건 신새벽이건 동생이 쿡쿡 어깨를 치면 부시시 일어나 화장실로 물그릇으로 쫓아다닌다. ‘아이구 착하다, 쉬야했어? 야 인마, 누나가 데려다주면 뒤로 빼고서 다시 혼자 찾아서 물 마실 건 뭐야? 그게 네 자존심이야?’ 이렇게 혼자 궁시렁대면서 엉덩이를 투덕투덕 두들겨준다.
우연히 얼마 전에 봉숭아물로 동생 머리카락을 곱게 염색해줬던 딸은, 요즘 틈만 나면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준다. 눈가 털이 조금만 삐쭉 길어도 얼른 잘라준다. 성치 않은 녀석이 귀찮다 버둥댈 만도 한데 녀석은 아주 얌전하게, 심지어는 즐기기라도 하는 듯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시키는 대로 앉아 있다. 나도 굳이 말리지 않는다. 여길 떠나 저 세상에서 새로운 동무들 만났을 때 추레한 모습으로 있으면 놀림을 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차마 그런 말을 딸에게 하진 못하지만 딸도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막둥이 평생 누나가 저렇게 치장을 깨끗하게 하노라고 시간시간 정성을 쏟는 게 처음인 걸 보면 그런 마음이 짐작된다.

이 여름이 참 힘들다. 여덟 해 전 여름도 그랬다. 아버지가 더 이상 혼자 걸음으로 뜰에도 내려설 수 없게 된 여름. 부축하는 것조차 귀찮으시다며 소파에만 기대앉았다가 기어이 침대에 누운 채로 보내셨던 여름. 매일 서울로 달려가 아버지를 뵈면서 가뜩이나 싫은 여름이 그렇게 덥고 짜증나고 숨이 막힐 수가 없었다. 갈수록 여위어가는 아버지한테 에어컨 냉기나 선풍기 바람이 언짢을까 싶어서 그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여름을 오빠나 올케나 인내로 버텨내고 있었다. 막둥이 때문에 푸른 숲도 찾지 못하고 집에서 더워 더워 연발하면서 나는 여덟 해 전 여름을 상기하고 있다. 여름만 되면 더워서 혀를 길게 빼물고 헉헉대던 녀석이 올해는 전혀 더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가늘게 달달 떨기까지 해서 얇은 수건을 덮어주어야 떠는 걸 멎는다. 나는 그 수건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수건 아래서 이뤄지는 호흡,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 숨결에 안도하는 중이다.
---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나 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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