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하고 어두웠던 그 시절의 기억 속에
유난히 환한 빛을 내던 아름다운 것이 하나 있었다.
부드럽고 노랗고 따뜻한,
햇살처럼 순한 달걀말이였다. ---「죽어도 좋아 달걀말이」 중에서
「섬」을 들락거리던 술꾼들보다 더 술을 사랑했던 향숙 언니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렸다. 제대로 이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언니는 덜컥 세상을 떠나버렸다. 언니와 보낸 수많은 시간들, 언니와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차츰차츰 잊혀갔지만, 맛탕을 보면 아직도 언니 생각이 난다. 언니가 너무나 실감나게 설명을 해서, 눈앞에 노란 맛탕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쌓여 있는 것 같아서, 그 맛과 냄새가 나의 시각과 후각이 아니라 마음 어디에 새겨져버려서, 그래, 그래서 그런 거다. 다 언니 탓이다. 나에게 맛탕은 슬픔뿐 아니라, 아프고 아쉬운 삶의 돌부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맛탕 같은 거, 처음부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평생 만들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섬처럼 뚝 떨어져 나간 언니의 빈자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슬픈 맛탕」 중에서
내가 본 광경은… 한마디로 몹시 처참했다. 갈치조림이 담겨 있어야 할 냄비는 텅 비어 있고 한쪽이 찌그러진 냄비 뚜껑만 부엌바닥을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갈치조림을 훔쳐간, 아니 그 자리에서 바닥까지 싹싹 먹어치운 범인이 누군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밤낮으로 우리 집 주위를 맴돌던 도둑고양이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중략) 그토록 얄미운 고양이였건만, 언니와 나는 마음껏 원망도 하지 못했다. “고양이들은 자기 욕하는 거 다 알아듣고 나중에 복수한대”라고 언니가 소곤거렸기 때문이다. 하긴 고양이도 무슨 죄가 있겠는가. 어디선가 생선 냄새가 솔솔 났고 그걸 따라갔더니 냄비 가득 갈치조림이 있었고 그래서 냠냠 맛있게 먹어준 거다. 그래, 이해한다. 다 이해하니까, 부디 복수 같은 것은 하지 말아줘. ---「서럽다 갈치조림」 중에서
생선 마니아인 아빠를 둔 덕분에, 어쩌다 가끔 고기 구경을 해도 불고기나 갈비 정도였지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워 먹는다거나 치킨을 시켜 먹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 살았으니, 친구들과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일 일도 없었다. (중략) 그러니 대학에 들어와 선배들을 따라 처음 삼겹살집에 갔을 때의 그 놀라움이 어떠했겠는가. 고기 반 기름 반인 그것을 불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 상추에 싸서 한입에 꿀꺽 하는 모습이 얼마나 생경했겠는가. (중략) 이 부분에서 나는 나의 존경하는 성석제 선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성 선배 역시 뒤늦게 삼겹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그가 처음으로 삼겹살을 본 것은 첫 휴가 때였다고 한다. 군인의 신분으로 친구들과 함께 삼겹살집에 갔는데, 처음에는 ‘뭐 이렇게 맛있는 게 다 있나’ 싶었고, 그다음에는 ‘이런 걸 그동안 저희들끼리 먹었단 말인가’ 하고 통탄했으며, 마지막에는 억울한 마음에 그 식당에 있던 사람들을 전부 때려주고 싶었단다.---「삼겹살의 비밀」 중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나는 또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그 시절 이후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세상은 내게 참으로 관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한 것들, 혹은 가졌다고 생각한 것들을 한순간에 상실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상실도 나를 송두리째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나에게 물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던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어른과 스승 노릇을 해준 많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중학생 때, 웃자란 콩나물처럼 불안하기만 했던 이십대, 여전히 서투르고 우왕좌왕했던 삼십대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분들은 한시도 잊지 않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내게 물을 부어주었다. 그 물이 나를 통과하며 나를 만들었다. 내 주위에는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방황하는 친구들도 많고, 학창시절을 통틀어 존경할 만한 선생님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제 배운 것을 오늘 잊어버리는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퍼부어준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와 선배들이 내게 있었다. 먹는 법, 입는 법, 걷는 법, 말하는 법, 글씨를 쓰는 법, 책을 입는 법, 노래하는 법, 마음을 다스리는 법, 사람을 사랑하는 법, 사랑을 나누어주는 법을, 나는 모두 그들로부터 배웠다. 힘들고 지친 내가 나 자신을 포기했을 때, 나의 세계가 온통 캄캄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을 때, 보이지 않고 쉬지 않는 그들의 사랑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이 베푼 한없는 사랑을 나는 간직하지도 못한 채 흘려보냈으나, 나는 콩나물처럼 자라왔다. 나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착한 콩나물」 중에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생각하면, 그 속에 포함된 걱정과 두려움과 기대가 마음을 어지럽힌다. 오늘만을 생각하면, 어지러운 걱정과 그것을 덮을 순간의 위안에 마음 쓸 필요가 없다. 일용할 양식, 일용할 겸손, 일용할 성실함과 일용할 사랑만을 구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런 삶 안에서, 매일의 해는 ‘새 해’이고 매순간은 ‘기적’이다. 내가 이루어야 할 것은, 먼 미래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꿈이 아니다. 다만 오늘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라는 것, 푼힐의 해는 내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한 손에 쏙 들어와 가득 차게 쥐여지던 그 사과 한 알은.---「낯선 곳의 사과 한 알」 중에서
오래전에 잊었던 사람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오랫동안 머무르던 곳에서 문득 떠나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우유와 박력분과 설탕과 달걀노른자로 커스터드크림을 만든다. 나는 버터와 슈가파우더와 아몬드 가루와 박력분과 달걀과 럼주로 아몬드크림을 만든다. 타르트 판에 아몬드크림을 채워 구워내고 커스터드크림과 딸기를 올려 봄의 한 조각을 만든다. 사랑은 딸기 향기 가득 밴 조그만 타르트 속에 단단히 갇혀 있다. 아무런 우울도 불안도 없는, 즐거운 딸기다. 티끌만큼의 쓴맛도 없는, 달콤한 타르트이다. 곧 가버릴 봄, 곧 가버릴 사랑을 잠시 잊고 곧 가버릴 달콤함에 집중한다.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곧 닥쳐올 쓴맛을 위해.
---「또 한 번의 봄을 위한 인생의 쓴맛」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