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우울해하지 마세요. 쇼핑은 원래 어려워요. 이 구두도 가게에서 제대로 신고 걸어 봤죠? 충동구매가 아니라 신중하게 사도 이럴 때가 있어요. 특히 여자 구두는 굽이 있고 발볼 넓이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장시간 신어보거서야 맞지 않는다고 알 때가 종종 있어요. 제일 위험한 건, 그런 걸 볼 때마다 또 낭비했다고 후회하면서 우울해하는 거예요. 보고 있으면 괴롭기만 한 것은 처분해야 정신적으로도 좋아요.” ---「case 1 ‘사지 않곤 살 수 없는 여자’」중에서
생활 그 자체를 즐기자. 앞으로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살자. 눈을 감고 상상했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태양 빛, 청결한 마룻바닥, 고급 소파와 단정한 커피 테이블, 그리고 창가에 장식한 꽃. (…) 깨끗한 거실에서 정성껏 우린 홍차를 마시자. 혼자서 느긋하게 살아가는 성인 여자가 되자.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결심하고 눈을 반짝 떴을 때, 열어둔 창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case 1 ‘사지 않곤 살 수 없는 여자’」중에서
“아줌마의 방침에 따라 네 엄마 물건을 전부 버리고 상자에 담아 창고에 넣었으니까 이제 미츠코의 물건이 눈에 안 띄게 되었어. 그렇다고 옛날 일을 떠올리며 후회하는 일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지만, 조금 편해진 건 사실이야. 그리고 하루토가 와준 덕분에 기분 좋은 일도 많았고.” ---「case 2 ‘물건을 버릴 수 없는 남자’」중에서
“이렇게 매년 계절이 순환하고, 사람은 나이를 먹고 죽는 거죠.” 도마리가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쓰지 않을 줄 알면서도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고 또 쌓아 가죠. 집에 물건이 차고 넘치는데 계절별로 옷을 새로 사고, 도자기 시장이 서면 부랴부랴 식기를 사러 하고.”(…)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행위 자체에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질이 좋은 물건을 조금만 갖추고 오랫동안 소중하게 쓰는 고풍스러운 습관이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죠.”---「case 3 ‘오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여자’」중에서
도마리는 여동생 고마리와 가사대행 회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어서 청소에 관해서는 프로다. 그런데 화학 반응으로 더러움을 없애는 것보다는 사실 쓰레기장 같은 집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있는 심리 상태에 흥미가 있었다. 딱 보기에도 칠칠치 못한 사람은 재미가 없다. 번듯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여성이나 엘리트 회사원의 아내인 편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말끔한 외모와 달리 지저분한 집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걸 찾는 것이 이 일의 묘미였다.---「case 4 ‘하나의 방만 정리하는 여자’」중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이모가 도마리의 엄마에게만 마음을 터놓은 것은 똑같이 슬퍼해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위로받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그저 같이 울어줄 사람을 찾았던 것이다. 위로하려는 사람들에게 분명 악의는 없었다. 이모도 엄마도 그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에 없는 악담을 퍼부으면서 분노를 공유했다. 이모와 엄마의 그런 관계를 오랜 세월 걸쳐 지켜보면서,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이야말로 제일 좋은 방법임을 도마리는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