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한적한 시골, 평평한 땅에서 태어나 들판을 뛰놀며 자랐다. 마을 너머를 밟고 온 형들을 질투하며 그보다 더 멀리 지평선 닿은 곳까지 가리라 다짐했다. 연세대와 장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땅끝보다 사람에게 가는 길이 더 멀다는 걸 알고는 그 길에 발을 올리기로 했다. 소설쓰기와 목회, 둘 다 사람을 끌어안는 일이라 믿으며 우는 사람 어깨를 토닥이고 외로운 사람 종이 위로 불러와 놀고자 한다. 이야기하고 늘어놓고 떠들다보면 사람에게 가는 오솔길 하나 닦아지리라는 희망으로 쓰고 있다. 2005년 《문학수첩》에 「직립보행」을 발표했다. 이 책의 인쇄일인 4월 20일은 작가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종으로 군 입대를 한 날이다.
“네, 저 맞는데요. 누구시죠?” -사라. 쿵 하고, 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운석이 충돌했다. 그 목소리와 함께 흔들리던 필름이 정확하게 멈추었다. 첫사랑. --- p.13
탁, 문이 닫혔다. 사라는 간신히 눈을 뜨고 빡빡한 숨을 내쉬었다. 밧줄 끝에서 갈라져 나온 얇은 가닥처럼 의식이 희미했다. 사력을 다해 그 가닥을 붙잡았다. 그 끝에서 진우가 아른거렸다. 보고 싶은 내 아이. 사라는 뒤로 묶인 팔을 꼼지락거렸다. 언제 다시 이렇게 묶어놓았는가.(중략) 끼익,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밀려오는 두려움 아래 어쩌면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날카로운 바늘이 간지럽게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고통과 희열이 함께 느껴진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몸이 붕 뜨더니 천장이 천천히 돈다. 숨구멍 하나하나가 가려운 것처럼, 사타구니에서부터 들끓는 개미새끼 같은 것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한다. --- pp.126-127
“죽여버릴 거야.” 진우가 한 번 더 크게 소리쳤다. “죽여버릴 거야!” 진우의 볼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위험에 처한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_181쪽
환의 이마 위에 눌린 총구가 부들부들 떨렸다. 금방이라도 탄환이 살을 찢고 이마 뼈를 뚫으며 들어올 것 같았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김상수의 눈빛을 보니 자신의 추측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았다. 환은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진우도, 사라도, 나도, 그리고 당신도……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너무 많이 겪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