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사는 이런 사람이었다.
까만 머리칼이 비늘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사. 또렷하고 커다란 눈동자가 자랑인 미사. 친구랄 것은 없지만 친구는 필요치 않은 미사. 깨끗한 비늘을 기다리며 조금의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된 미사. 겨울이 많이 싫을 뿐인 미사.
미사를 수식하는 그 어떤 문장에도 ‘배반당한’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쏴아아.
빗소리가 아득했다.
뱀의 적절한 활동 온도는 약 30도. 동절기에는 활동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나이 어린 뱀들이 사냥꾼에게 사냥당하는 시기가 바로 이 무렵이다.
혹한의 겨울.
이맘때의 그녀는 따뜻한 곳을 상상하곤 했다. 아프리카, 동남아. 그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럴 바에는 이민을 갈까?’ 하는 유치한 상상에 빠져 있었을 때에는,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
「아프리카나 사파리, 이런 데는 참 좋을 거야. 거기 사는 녀석들은 행복하겠지?」
「대신 그 녀석들은 미개할걸. 전기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잖아.」
「불편하긴 하겠다. 그냥 세상에 봄여름만 있었으면 좋겠어.」
「너도 참 유별나다니까.」
그리고 올해는 그녀가 겪은 모든 겨울을 통틀어 최악이었다.
가까스로 한강 둔치로 기어올라와 폐 속에 찬 물을 토해낸 그녀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다잡았다.
수화(獸化, 짐승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가 되지 않는 몸뚱이를 부둥킨 그녀는 젖은 땅에 얼굴을 처박고 고꾸라졌다.
풀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그녀는 병적으로 흠칫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뜯겨나간 왼 어깨의 피가 빗물에 섞여 땅을 거무죽죽하게 물들였다. 미사는 물감 번지듯 흐르는 핏물을 망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준에게 물린 어깨의 살점이 떨어져나간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허물벗기 중인 시기라는 것이 문제였다. 땅에 짓눌린 왼 뺨의 피부가 문드러지듯 떨어져나갔다.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도란도란한 연인들의 목소리에 소스라쳤다. 작은 소리도 그녀에겐 독니 같은 공포였다.
백내장에 걸린 듯 회탁한 눈동자를 반 가른 길쭉한 동공이 경멸감으로 불타올랐다.
‘……사준.’
그녀를 이 꼴로 만든 것은 그녀의 오라비였다.
사준.
사준은 지금 혈안이 되어 제 식탁에서 도망친 그녀를 찾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어슬렁어슬렁 귀가해 돌아가 축배를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준의 종(種)이 품고 있었던 본능을 간과한 것이 실책이었다. 목적 없는 살의를 띠던 사준의 눈은 붉은색. 흉폭한 기질을 가졌다 말하는 적안이었다. 그를 염려하던 용운의 말이 사무치게 와 닿았다.
「우리 미사, 살모하는 모든 것들에게 마음 놓지 말거라. 준이라고 다르지 않으니까.」
뱀이란 종들이 선천적으로 믿음이 적다는 걸 알면서도 용운은 누차 당부했다.
「녀석의 종은 쉬운 마음으로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다. 순수한 살모의 종, 순혈에 가까울수록 본능이 강하다는 것을 너 역시 알고 있겠지. 살모의 종들에게 유독 새끼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 본능이 제 부모도 잡아 죽이거든. 인간들이 살모사를 살모사라 부르는 건 사실 그 미물들이 진짜 제 어미를 잡아먹기 때문이 아니야. 너희 일족들 때문에 붙은 이름이지.」
실제로 살모사들은 어미를 죽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족들은 그 어미를 죽이는 일이 적잖다 했다.
「살모종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살모종의 암컷들은 그래서 부러 자식을 낳지 않는다. 낳더라도 내버리고 도망치기 일쑤지. 어린 새끼들은 나약할 적 산짐승이나 들짐승 혹은 인간들에게 발각되어 살해당해. 그 때문에 살모의 종이 귀한 것이다. 준이도 태생은 귀하지. 성정이야 모르겠다만.」
낡은 판잣집 안에 오래된 다기를 두고 차를 따르던 소리가 떠오른다.
둔치의 흙무더기를 손톱으로 긁어쥔 미사의 몸 위로 차디찬 빗물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 비명이라도 지르면 나을지도 모르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인간들이 그녀를 발견하게 되면 일은 더 복잡해질 테니까.
어느 인간의 선량함은 그녀를 병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병원의 의사는 껍질이 벗겨지는 그녀를 치료하다 그녀의 신체가 보통 인간과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족들 중 문제를 처리하는 자들이 수습을 할 테지만, 소문이 퍼지면 사준이 그녀의 행적을 알게 될 수도 있다.
‘대체 왜, 대체 왜. 대체 왜…….’
몸뚱이는 죽음의 냉기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데 가슴은 불같은 슬픔으로 뜨거워졌다. 마지막 겨울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뱀아목과의 그녀에게 이 계절은, 이 겨울은 너무나 가혹하다.
푹 젖어 해초처럼 갈라진 머리칼 사이로 한강의 고즈넉한 정경이 비쳤다. 썩은 낙엽의 냄새에 얼굴을 처박았다. 목숨을 앗아가는 빗소리는 잔잔하고 잔인했다. 느리게 눈꺼풀을 내리닫았다.
‘이대로 잠이 들면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껍질이 일어난 각막이 파르르 떨렸다.
‘나도 자업자득인가.’
잡아먹힌 제 어미를 비웃을 계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상황에는 애도나 슬픔도 사치일 뿐이다.
이제야 알았다. 이제까지 그녀의 삶은 완벽하게 사준에게 통제당하고 있었다. 사준이 그녀를 배반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제 손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리 말할 수 있었다.
동족인 고산의 비웃음소리가 떠오른다.
「너 그러다가 한번 크게 다치지. 사준이 의지할 만한 녀석이냐고.」
그 멍청이도 사실은 저보다 똑똑했다는 게 분하다.
그녀는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다.
찰박찰박.
물웅덩이를 헤치고 다가오는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인피 위의 비늘껍질이 우드드 올라온다. 미미한 땅울림을 눈치챘을 때 상대는 꽤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흠칫한 그녀는 최대한 제 허물을 끌어안았다.
‘누구지?’
걸음소리는 코앞에서 멈추었다.
미사의 눈동자에 빗물 젖은 남색 운동화가 비쳤다. 인간일까? 아니면 사준? 인간이어도 망하고, 사준이어도 망한다. 기적 같은 확률로 회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미사는 외려 이 세상을 의심할 것이다.
세상이 정말 미쳐 돌아간다고.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울렸다. 비명도, 경계심 어린 고함도 아니었다.
“이거, 참…… 별일이네요?”
아프게 뺨 위로 떨어지던 빗물이 그쳤다. 미사의 눈꺼풀이 느릿느릿 들렸다. 둥그런 검은 우산이 우중충한 하늘을 가려주었다. 뱀의 것처럼 - 엄밀히는 뱀이지만 - 노랗게 변한 눈동자는 상대의 얼굴에 이르지 못하고 떨어졌다.
“살려…….”
……줘.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세상이 암전했다.
그녀의 이름은 미사, 종은 능구렁이, 나이는 150세 남짓.
생애 가장 최악의 겨울의 목전에서 그를 만났다.
◇ ◆ ◇
인간들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말하지만, 세상에는 오래전부터 그들보다 우월한 인간이 아닌 것들이 섞여 살았다. ‘사람’이되 ‘인간’은 아닌 영험한 능력을 지닌 자들. 그들은 종과 계파에 따라 족벌사회를 이루므로 일족이라 스스로를 분리했다.
60억 인간 속에 소수로서 존재한다.
한반도 내의 일족이라 알려진 것만 해도 서른여 종. 그리고 일족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거나 가장 수가 많은 열두 일족을 통틀어 칭하는 것이 있다.
인간들은 그들을 12일족이라 불렀다.
대표적인 12일족은 아래와 같다.
자(子, 쥐), 축(丑, 소), 인(寅, 호랑이), 묘(卯, 토끼), 진(辰, 용),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 해(亥, 돼지).
미사는 십이지 중 사(巳) 일족, 그중에서도 뱀아목과에 속하는 암컷이다. 올해로 정확히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얼추 150년 정도를 살았다.
뭐, 그 정도 살면 인생에 통달하거나 그럴 거라 추측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20대가 되면 어른이 될 거라 생각했던 10대가 정작 20대가 된 후에도 철딱서니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하기야, 그런 인생에 대한 통찰이나 고찰도 하는 사람만 하는 일이니.
미사는 고립되어 살아온 암컷 뱀에 불과했다.
미사의 정체, 정확한 ‘종족’은 능담 혹은 능사라 불리는 검은 구렁이다. 수화(獸化)한 본체는 몹시 까맣고 길다.
능담은 제 몸보다 큰 뱀을 삼켜 배 속에서 죽여 토해낸다는 속설이 전해질 만큼 위험한 뱀이다. 어린 왕자라는 소설 때문에 보아 구렁이가 가장 유명하다지만, 미사는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 하고 코웃음 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다만 하지 않을 뿐. 아무리 뱀이라도 반은 인간과 흡사하므로 이지가 있는 이상 식성이나 취향은 있다. 고상함에 대한 각자의 미학도 있다.
미사가 속한 사 일족의 독특한 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무리 생활을 하는 이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소수의 계파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뱀들이 개인주의다. 그런 이유로 일족사회 내의 입지는 낮다.
둘째, 탈피기의 불문율이다.
모든 뱀은 허물을 벗는다. 개체마다 다르지만 몇 년에 한 번 일족들도 허물을 벗는다. 강한 뱀도 허물을 벗는 동안은 신체가 물렁해지고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 시기는 적이 많은 뱀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래서 뱀들은 탈피기에는 동족을 공격하는 일을 지양한다는 불문율을 만들었다. 까마득한 옛날, 그런 ‘전통’이 없을 때에는 가관이었다고 한다.
뱀 한 마리가 탈피를 할 때마다 그동안 원한을 품었던 동족들이 우르르 몰려와 물어 죽이고, 찢어 죽이고, 때려서 죽이고…… 그뿐인가, 다른 일족들도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리니 아주 답이 없었던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는데 집단 폭행을 당해 죽는 거다.
가끔 그 전통을 무시하는 녀석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실히 지켰다. 탈피기에 동족을 공격했다는 소문이 돌면 그다음 탈피기에 그 당사자가 타깃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미사도 마찬가지였다.
미사는 늘 전통을 잘 지켜왔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마지막 기억은 그렇게나 소스라쳤다. 어린 시절 함께 자랐던 사준의 배 속에서 꿈틀대던 것은 생물학적 어머니인 시영이었다.
제 몸통보다 컸을 어미를 먹고도 모자라 그녀의 살까지 탐냈던 사준.
사준은 시영이 어릴 적 거둔, 미사와는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다.
가족이라는 개념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족이란 건 있어서 나쁠 것 없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형제다.
그런 형제가 그녀를 배반했다.
「아아, 믿을 사람이 아무리 없어도 말이야. 역시 순진하다니까, 우리 미사는.」
빌어먹을 새끼. 혼재되었던 기억이 흩어진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