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의 핸드폰 장벽 신은 일종의 예언이었을까? 핸드폰을 촛불로 바꾸고 조태오를 박근혜-최순실 일당으로 바꾸면 영화와 현실이 완벽하게 치환된다. 류스트라다무스!(…)
항상 자유를 갈구하는 나는 ‘조직’이라는 표현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 조직 속의 개인은 크건 작건 자유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난 늘 충실하지 못한 조직원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한 회사의 사원으로서도, 친구 집단에서도, 국민으로서도 늘.(…)
영화 [베테랑]을 보고 나서도, 촛불집회에 직접 나가본 경험을 하고서도 나의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부채의식은 지니려고 한다. 별로 깨어 있지도 않고, 전혀 조직적이지 않은 불량시민으로서의 부채의식이다. 나를 대신해 악당을 막아선 아트박스 사장님에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스크럼을 짜고 악을 가둬버린,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또 미안하다.
---「그러니 우리 쫄지 말자 - 베테랑」중에서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아주 심하게 좋아한다. 그건 위디스크에서 다운받은 영화 리스트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부분 공포?스릴러 장르다. 코미디나 로맨스 영화는 거의 없고 간혹 액션영화가 섞여 있다. (…)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결론을 도출해냈다. 나에게 있어 공포란 오직 영화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태생부터가 대리 체험이다. 그런데 코미디나 멜로, 드라마 등등의 장르에 담긴 정서는 일상에서도 체험한다. 하루하루가 멜로, 코미디, 드라마니까. 사회성 강한 영화들도 마찬가지. 뉴스만 틀면 영화보다 더 심각한 현실이 튀어나오는데 굳이 영화로까지 머리 아픈 경험을 할 필요가 있나. 에로영화도 보는 것보다는 직접… 흠흠. 그러고 나면 액션과 공포?스릴러 장르 정도가 남는 것이다. 내가 하늘을 날 수도 없고, 빌딩을 폭파시킬 수도 없고, 귀신을 직접 마주칠 일도 없으니까.
---「공포는 영화로만 맛보는 인생 - 컨저링」중에서

영화 [데몰리션]의 주인공 역시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내재되어 있던 자기파괴 욕망을 실현한다. (…)
그러나 정말로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커트 코베인이 아니니까. 우리의 삶은 영화가 아니니까. 영화 속 주인공처럼 냉장고를 분해하고, 회사 문짝을 뜯어내고, 방탄조끼를 입은 자기 몸에 총알을 당기는 짓은 용기 이상의 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 힘은 광기다. 미치지 않고서는, 우린 스스로를 분해하고 파괴할 수 없다. 비루하더라도, 지금까지 일구어온 삶을 지키려는 의지와 살고자 하는 본능을 거스를 수 없다.
설령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들어도 주변 사람들 때문에 돌이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책임감과 죄책감 그리고 주위 평판에 대해 의식하는 습관은 생각보다 뼛속 깊이 스며 있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처자식 때문에’,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이를 봐서’, ‘남들 보기 부끄러워서’ 등등으로 시작하는 유의 변명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분해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나쁘고 위험하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영화 속 주인공의 기행은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나는 누굴까? 나는 정말 그녀를 사랑했을까? 지금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가? 존재론적인 질문에 정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선 부수고 뜯어볼 수밖에. 그 정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정말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을까 - 데몰리션」중에서

‘주토피아’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세상이다. 주디가 취직하지 못하는 이유도, 자신이 원하는 강력계로 가지 못하는 이유도, 전부 주디가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다. 이런 주제의식이 주제가인 ‘Try everything’에 오롯이 담겨 있다. 내가 실패하는 이유는 전부 내가 도전하지 않은 탓이다. 열심히만 하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으니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일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탓인가? 내가 열심히 하기만 하면 어떤 것이든 이룰 수 있었는데, 열심히 안 한 탓에 실패하고 있는 건가? 자리가 열 개밖에 없는데 열두 명이 자리에 앉으려고 하면, 두 명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두 명이 자리에 앉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거나 그들이 나태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리가 두 개 부족하기 때문이다.
---「Try Everything? - 주토피아」중에서

다른 모든 엔터테인먼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영화를 본다. 웃음이 필요할 때는 코미디영화를 보고, 사랑에 굶주렸을 때는 로맨스영화를 본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영화를 보며 우리의 결핍을 채운다. 크게 흥행한 영화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결핍을 읽을 수 있다.
[변호인]이 1,1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나 [명량]이 1,700만이란 기록적인 스코어를 올린 것은 그 당시 시대 상황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다들 완성되었다고 말했던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너진 2013년의 상황이나 바다에서 일어난 큰 사고로 인해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던 2014년의 상황이, 그 영화들의 흥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엘리트 스쿼드 2]의 흥행도 이런 측면에서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전편 [엘리트 스쿼드]에서 다뤘던 보피와 마약상의 전투는 마약상으로 대표되는 ‘시스템’을 적대자로 삼고 있다. 제작비와 스케일이 커진 속편에서는 악역인 ‘시스템’의 스케일도 커진다. 범죄자를 소재로 한 전편과 달리 속편에서 호세 파딜라 감독은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사회와 국가 구조에 카메라를 정면으로 들이민다.
---「문제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가 - 엘리트 스쿼드 2」중에서

내 삶에서 주인공인 줄 알았던 배우가 어느 날 사고를 치고 잠적하는 경우도 있다. 그저 주인공을 받쳐주는 조연인 줄 알았던 배우가 오히려 영화를 더욱 풍성하고 맛깔나게 만드는 사건도 때때로 벌어진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단역인 줄 알았던 엑스트라가 쿵, 가슴을 뛰게 만드는 주연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내 삶에 등장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게 인생이다.
‘그러니 당신 삶의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성심을 다하셔요. 그래야 복을 받는답니다’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의 도저한 삶은 감히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합니다. 허니 그저 네 멋대로, 네 마음이 가는 대로 사셔요. 그래야 행복하답니다’가 되겠다.(에헴)
---「김훈종의 인생 영화 이야기- 시작하며」중에서

나는 내가 한 번도 처해보지 않은 노동을 경험해보았다. 오직 스크린을 통해서.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에 나오는 주인공 마야(필라 파딜라 분)는 여성이고, 비정규직이며, 육체노동을 하고, 심지어 불법체류자이기까지 하다.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이자 정규직 화이트칼라 노동자인 김훈종으로서는 이해하고 공감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다. 하지만 거장 감독의 노련한 발놀림은 벽에 가로막혀 있는 이 관객에게 ‘네가 발 딛고 있는 그곳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라고 속삭이며 영화 속으로 끌어당긴다.(…)
장미는커녕 빵도 얻기 힘든 대한민국에서 정규직 남성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 프로듀서로서 세 명의 비정규직 작가와 한 명의 진행자와 매일 부대끼며 일을 하고 있다. 나 역시 SBS에 속한 일개 직원이지만, 동시에 [최화정의 파워타임]이란 프로그램에선 사장과 비슷한 존재다. 진행자야 연예인이니 예외로 하고, 작가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사장 김훈종은 과연 작가들을 아이유처럼 대했는가? 프로듀서 김훈종은 과연 야마다 아키오 같은 훌륭한 리더인가? 대답은 ‘전혀 아니요’ 혹은 ‘글쎄올시다’가 되겠다.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