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한 삶, 자유, 3000제곱피트(84.3평)의 자기 소유 저택, 5개의 침실과 4개의 욕실, 사우나, 트레이닝 룸, 최신식 가전제품, 화강암으로 만든 싱크대, 그리고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흰 울타리와 깔끔하게 정리된 잔디 정원…….
미국을 세운 사람들이 헌법 초안을 만들 당시에는 이런 생활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틀림없이 아메리칸드림의 한 가지 모습이며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실현되었다. 주택건설업자협회(NAHB)의 2006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의 평균적인 집 넓이는 2469제곱피트(229제곱미터, 약 70평)이다. 1970년의 1500제곱피트(약 45평), 1950년의 983제곱피트(약 27.6평)보다 훨씬 넓어졌다. 1970년 당시 목욕탕이 세 개나 있는 집은 거의 없었지만 2006년에는 목욕탕이 셋 딸린 집이 2만6000호나 되었다.
미국인은 ‘집’에 크게 집착한다. 많은 사람들이 ‘Trading Spaces’ 같은 텔레비전 방송을 본다. 이 방송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타인의 집을 꾸미거나 엉망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 p.42
◆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라는 영국의 옛 격언은 “덕을 쌓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라든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반드시 일어난다” 등처럼 심술궂은 표현들과 같은 부류다. 물론 모든 선의가 반드시 나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위기는 역사 속에서 검증된 이 영국의 격언이 역설하는 것처럼, 그것이 아무리 숭고한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좋지 않은 사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 p.61
◆2008년 4월 25일, 미국 상무성은 2008년 4월의 신축 주택 판매 호수가 전년 동월에 비해 42퍼센트라는 기록적인 하락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또 신축 주택의 가격도 전년 동월 대비 13.3퍼센트 하락했는데, 이는 1970년 7월 이래 최대 폭락이었다. 〈뉴욕타임스〉의 경제부 수석 편집위원인 플로이드 노리스(Floyd Norris)는 2007년 3월부터 2008년 3월까지 1년 동안 미국의 기존 주택 가격이 지구별로 7퍼센트에서 14.9퍼센트나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압류된 꿈: 2008년의 상황〉에 따르면 저명한 경제학자인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는 2007년에 주택 가격이 10퍼센트 하락하면 미국 전체의 경제적 손실은 2조3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 p.97
◆ -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Mizuho Financial Group)이 2008년 3월기에 일본 국내 최대인 6450억 엔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관련 손실을 계상해, 6월26일에 개최된 주주총회에서 마에다 사장이 이에 대한 해명과 사죄를 했다. 또 아오조라 은행(Aozora Bank)도 400억 엔이 넘는 손실을 계상했다. - 유럽에서는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관련 상품을 보유한 것이 원인이 되어 2008년 1/4분기에 115억 스위스프랑의 손실을 계상했다. 또한 MSNBC는 전체 상각액이 190억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 독일 최대 은행인 독일 은행도 2008년 1/4분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문제와 관련된 금융 시장의 혼란으로 27억 유로의 손실을 계상했으며 최종 손익은 1억3100만 유로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것으로 독일은행의 손실액은 작년을 합쳐 49억 유로에 이르렀다. --- p.107
◆ 설리번 기자는 이런 가슴 아픈 순간도 경험했다. 번낵이 한 빈집에 들어갔는데, 주방의 냉장고에는 가족사진이 몇 장 붙어 있었다. 그 가족들은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쫓겨난 것이다. 그 사진들 중 한 장은 거실에서 장난감과 가구에 둘러싸여 노는 귀여운 아이의 사진이었다. “집 그리고 집, 가족 그리고 가족……. 열쇠업자의 하루는 안타까움 속에 지나간다.” --- p.134
◆ 2000년대 초반의 몇 년 동안 마리코파의 신축 주택 가격은 급격히 상승했다. 2004년의 평균 가격은 16만290달러였지만 2005년에는 21만2051달러, 그리고 2006년에는 28만1798달러까지 치솟았다. 샤피로 기자에 따르면 이들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의 3분의 1이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했으며, 구입자의 대부분은 차익을 노리는 투기 목적으로 집을 샀을 뿐 그곳으로 이사를 올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주택 거품이 일어 집값이 단기간에 급증했던 만큼 거품이 꺼지자 가격 하락도 빨랐다. 주택 가격은 2006년에 정점을 찍은 뒤 급락을 계속해, 2008년의 평균 가격은 18만 달러 정도다. 샤피로 기자는 현재 압류에 직면한 대릴 폭스(Daryl Fox)라는 집 주인과 인터뷰를 했다. “저는 가장 적절한 투자를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벌어 온 돈을 투자했죠. 우리 집은 내 은퇴 기념입니다. 오랫동안 전에 살던 집에서 자금을 모으고 그 집을 팔아서 좀 더 큰 집을 산 것이지요.” 2007년에 은행은 마리코바에서 647건의 압류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문을 닫는 회사도 속출하고 있다. --- p.136
◆ 연준(FRB)은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해 리먼브라더스와 골드먼삭스 등 다른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에 대한 긴급 융자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콜린 바(Colin Barr)가 〈포춘〉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연방준비은행은 자신들의 감독 책임 밖에 있는 기업에 융자하는 기묘한 처지에 처했다. 이런 부조리한 정책은 많은 세월이 필요한 정치 개혁이 없이는 해결되지 않을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 개혁을 하면 주택담보대출 위기와 압류 문제에 대처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스티글리츠 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비판한다. 또 온라인이나 지면에 의견을 내는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무책임한 대출 업체나 집 주인까지 구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잘못이다’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시장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잘못을 수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부시 정권과 똑같은 생각이 아닌가. --- p.161
◆ 2008년 1월, 이런 의문에 대한 흥미로운 의견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판부의 웹사이트에 올라왔다. 글을 쓴 이는 존 스비오클라와 케빈 맥길로웨이로, 이 장의 첫머리에서 인용한 글이 바로 그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이 지금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문제를 증폭시켰다는 주장을 부연하면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와 같은 기술의 발전이 몇몇 기업에는 각 경영 조직에 벽을 만들게 됨으로써 이사조차도 회사의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해 업무 감독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태가 되었다.” --- p.185
◆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논리로 정부에 의한 극적인 구제 지원을 받으면서 5차 서브프라임 사태도 진정되는 모습이다. 물론 그 잔향은 계속해서 시장 변동성을 부추기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서브프라임 사태가 다시 한 고비를 넘기고 있을지는 몰라도, 사태 자체가 막을 내린 것은 아니다. 모기지 연체나 차압이 급증하고 있는 미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가 단시일 내 끝날 문제가 아니며, 부동산 버블을 자양분으로 삼았던 미국 소비나 경제의 조정도 한참은 더 진행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부진에 따른 소비자 신용 악화나 기업 부도 급증으로 인해 월가의 추가적인 부실이 우려된다. 지난 6월까지 세계 금융기관들의 서브프라임 관련 투자 손실로 인한 자산상각 규모는 4,000억 달러에 이르는데, IMF는 주택 모기지 외에도 상업용 부동산, 소비자 여신, 기업 여신, 회사채 등을 포괄해 총 손실 규모가 총 9,4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아직도 추가 부실에 따른 자산상각의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 p.215
◆ 사실 서브프라임 사태의 근저에는 글로벌 유동성 경색과 맞물린 ‘위험 재평가(risk repricing)’가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 그동안 풍부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각종 고수익·고위험 투자에 무차별적으로 나섰던 투자 행태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서브프라임 사태의 진정한 함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CDO 등 새로운 금융상품의 성장, 그리고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와 같은 새로운 금융 플레이어의 부상에 기반해 다양한 투자 위험을 분산하고 축소시켜 온 ‘현대 금융혁신의 성공’이 가져온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투명성의 결여와 과도한 차입 행태라는 특징을 가진 현대 금융혁신이 얼마나 강건할(robust)지는 불확실하며, 이러한 금융혁신에 기반한 ‘위험 해체’가 오히려 ‘사상 최대의 위험 버블’로 귀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제기된다.
---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