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 하필 미적 체험을 기술할 때 사용하는 술어다. 미학에서는 미적 체험을 크게 둘로 나눈다. 아름다운 대상의 체험과 숭고한 대상의 체험. 아름다운 대상은 그 규모 크지 않아 인간이 한 눈에 파악할 수가 있다. 이런 대상 앞에서 우리는 쾌적함을 느낀다. 반면 숭고한 대상은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와 힘을 가진 대상을 가리킨다. 가령 광막한 사막과 끝없는 대양, 태풍과 대홍수, 대지진과 화산폭발 등. 이런 대상 앞에서 우리는 '충격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재미있게도 울만은 이 미적 체험의 술어를 전쟁의 개념에 활용한다. 이로써 그의 미학은 일종의 전쟁미학이 된다.
--- pp. 51 ~ 52
"보드리야르였던가? 현실의 사라짐을 얘기했던 것이. 참혹한 전쟁의 현실이 전투기 조종석에 붙은 조그만 스크린 위로 사라진 것은 지난 걸프 전쟁 때부터였다. 요즘은 원폭 실험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한다. 굉음도 없이, 섬광도 없이, 방사능 낙진도 남기지 않고 가공할 핵폭발이 컴퓨터 안의 사이버 공간으로 조용히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오늘날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현실의 왜곡이라는 형태로가 아니라, 아예 현실 자체를 사라지게 하고, 그것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전쟁은 사라졌다. 조종석의 스크린 위에서. 핵폭발은 사라졌다. 사이버 공간 속으로. 그렇다고 정말로 전쟁과 핵 폭탄이 사라진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스크린으로 전쟁을 대신할 수 없고, 시뮬레이션으로 핵 폭탄을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의 의식 '안'에서 전쟁과 핵폭발의 가공함을 지울 수는 있어도, 그것이 우리 의식 '밖'의 참혹한 현실까지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