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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 + 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전2권
YES24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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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2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사대부고를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들어갔지만 자신에겐 그런 재능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같은 대학의 음악대학원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음악을 좋아한 탓이지만 거기서도 좋아하는 것과 밥벌이는 다르다는 것만 확인하고 대학원 졸업 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영화판으로 별 생각 없이 뛰어들었다. ‘장산곶매’라는 독립영화집단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을 만들었고, 상업 영화 시나리오 [아담이 눈뜰 때], [정글스토리], TV 드라마 [제3극장] 등을 썼지만, 이 일 역시 오래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사대부고를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들어갔지만 자신에겐 그런 재능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같은 대학의 음악대학원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음악을 좋아한 탓이지만 거기서도 좋아하는 것과 밥벌이는 다르다는 것만 확인하고 대학원 졸업 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영화판으로 별 생각 없이 뛰어들었다.

‘장산곶매’라는 독립영화집단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을 만들었고, 상업 영화 시나리오 [아담이 눈뜰 때], [정글스토리], TV 드라마 [제3극장] 등을 썼지만, 이 일 역시 오래 하지 못했다. 후배의 부탁으로 김현식에 대한 평론을 썼다가 졸지에 음악 평론가가 되어 꽤 오랫동안 먹고살았고, 그 과정에서 『예감』, 『상상』, 『리뷰』 같은 문화계간지들을 또래 동료들과 만들기도 했으며, 홍익대와 성공회대 그리고 단국대와 성균관대 등에서 대중음악사를 20년 동안 가르쳤다.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며 [자유],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 같은 콘서트와 [끝나지 않는 노래], [천변살롱], [천변 카바레],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같은 음악극도 만들었지만, 그 어느 것도 이렇다 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명함에 박을 타이틀 하나 변변한 것이 없는, 빈 수레가 요란하기만 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한결같았던 것은 재수생 때부터 엄청 마셔댄 술과 음식 기행. 하지만 마흔세 살 되던 해 대동맥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고 쓰러져서 생사를 헤맨 뒤로 술마저 그를 떠나게 되었다. 그 아쉬움으로 남산 자락에서 와지트라는 이름의 와인 클럽을 열어 지금은 세상을 떠난 유명아 셰프와 24절기 메뉴를 개발하기도 했고, 음식 팟캐스트 [걸신이라 불러다오]를 만들었으며, SBS 라디오 [황교익·강헌의 맛있는 라디오]도 진행했다. 그리고 벙커1에서 음악부터 와인, 축구, 명리학에 이르는 다양한 강좌를 열었으며, 그 결과로 생애 첫 번째 저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발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쓰러진 이후 11년간 그가 가장 몰두했던 것은 명리학이다. 모든 것을 잃고 황폐해진 상황에서 운명에 대해 처음으로 겸허해진 자기 자신을 발견했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의 틀로 명리학을 독학했다. 그 결실은 벙커1의 [강헌의 좌파명리학]이라는 제목의 강좌로 이어졌고, 예상 밖의 호응을 얻으며 3년째 3기 과정에 들어서게 되면서 ‘哲공소’라는 이름의 작은 명리학 연구소도 열게 되었다. 그가 꿈꾸는 것은 보다 많은 이들이 온갖 허세와 오욕으로 더럽혀진 명리학의 본질을 소박하게 깨닫고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평등한 존엄함과 상생의 조화를 즐겁게 동무하는 것이다.

펴낸 책으로 『전복과 반전의 순간』, 『명리-운명을 읽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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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 밴드 ‘각시탈’을 결성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어린 시절 친구 등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으며, 1988년 12월 24일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하고 잠시 활동했으나, 곧 밴드가 해체되었다. 1990년에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해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듬해에 솔로 2집을 발표해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과 세태를 짚어내면서도 감성적인 가사로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게 된다. 이후
1968년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 밴드 ‘각시탈’을 결성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어린 시절 친구 등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으며, 1988년 12월 24일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하고 잠시 활동했으나, 곧 밴드가 해체되었다. 1990년에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해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듬해에 솔로 2집을 발표해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과 세태를 짚어내면서도 감성적인 가사로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게 된다.

이후 록밴드 ‘넥스트(N.EX.T)’를 결성, 밴드 활동을 재개했다. 1992년에 발표한 넥스트 1집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곡들로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1994년 발표한 넥스트 2집, 그리고 1995년 발표한 3집은 음악성은 물론 가사에 담긴 깊은 사유를 통해 대중음악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시기에 동료 뮤지션의 음반 프로듀싱, 객원 보컬, OST 작업, 프로젝트 밴드 ‘노땐스’ 활동 등을 병행했으며 1995년 4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MBC 라디오 의 초대 DJ로 활동하며 라디오 진행자로서의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1997년 발표한 넥스트 4집을 끝으로 넥스트는 해체했으며,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하며 그곳에서 쌓은 테크노 장르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8년 《Crom’s Techno Works》를 발표한다. 이듬해에는 프로젝트 그룹 ‘모노크롬’을 결성, 동명 타이틀로 앨범을 발표했으며 2000년에는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결성, 실험성이 강한 음반을 발표했다.
2001년에는 그가 진행한 대표적 라디오 방송 <고스트스테이션>을 시작했다. 2003년 4월까지 선보인 이 방송은 거침없는 언변과 진심어린 진행으로 마니아 청취자층 ‘고스족’을 양산했고, 그의 별칭 ‘마왕’도 이때 얻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활동을 벌였으며,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대마초 비범죄화/간통죄 폐지체벌 금지 등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 화제를 낳기도 했다. 2003년 10월 <고스트네이션> 방송을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새 라인업으로 재결성한 넥스트 정규 5집을 발표했다. 2005년에는 연예매니지먼트 회사 ‘싸이렌’을 설립했으며 이듬해 넥스트 리메이크 음반 5.5집을 발표했다. 2008년 넥스트 6집을 발표하는 한편, 이해 3월부터 10월까지 SBS 라디오에서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을 다시 진행했다. 2011년 5월에는 MBC 라디오에서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재개했으며 2012년 10월 방송을 끝냈는데, 이로써 11년간 이어온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완전히 종료했다.

2014년에는 새 솔로 음반 준비를 본격화해, 싱글 〈A.DD.a〉를 공개했으며 이어 EP 《Reboot Myself》를 발매했다. 2014년 10월 27일 향년 46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故 신해철의 정확한 사인은 의료사고 의혹 속에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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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828쪽 | 1109g | 크기확인중

추천평

신해철, 그 이름은 순수한 영혼과 진실된 의지로 우리를 이끌어준 진정한 음악인의 이름입니다. 그는 음악인으로서 커다란 산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수많은 후배들도 신해철이라는 산을 올려보며 음악인의 꿈을 키웠습니다. 우리 가요계는 그의 음악에 많은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비보에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형이 그랬습니다. 생명은 태어나는 것 자체로 목적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인생이란 그저 보너스 게임일 뿐이라고요. 따라서 보너스 인생을 그냥 산책하듯이 그저 하고픈 것 마음껏 하면서 행복하라고 말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형은 이 보너스까지도 참 멋지고 훌륭하게 그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좋은 곳에서 또다른 산책을 하면서 형이 좋아하는 음악과 삶에 관한 이야기 마음껏 하시겠죠.
끝으로 형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멋지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항상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어 고맙습니다. 그런 형이 너무나 크고 멋졌는데 멋지다는 말을 자주 해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멋진 노래 계속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신해철이라는 커다란 이름을, 우리의 젊은 날의 많은 추억과 멋진 음악을 선물해준 그 아름다운 이름을 오래오래 기억해주시리라 믿습니다. - 서태지 (뮤지션)
100분 토론에서 저는 신해철씨를 다섯 번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논란의 한가운데 섰고, 그래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가수였지만 어떤 주제를 놓고도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해서 논쟁할 수 있는 논객이기도 했습니다. 욕을 많이 먹어서 영생할 거라 농담으로 얘기하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그를 사랑했던 팬들의 마음속에선 영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손석희 (방송인)
신해철이라는 가수는 이미 음악적인 면에서 자신의 탑을 세웠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있었는데…… 그 점이 아쉽다. 그중 다행인 것은 많은 이들이 이렇게 함께 아파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해철의 음악이 재조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행 중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 배철수 (방송인)
제가 아는 신해철씨는 불합리한 것에 앞장서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를 가진,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대선 때 유세하러 가는 곳마다 울려퍼지던 그대에게의 벅찬 음악은 제게는 평생의 고마움입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 문재인 (정치인)
지성을 갖춘 놀라운 ‘강심장’이었다. 지식인, 정치인의 허위를 광장에서 단 한마디로 날려보내던 신해철. 그 인격, 지성, 음악으로 스스로 시대의 예술가가 되었던 신해철. 당신은 그런 예술가였기에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유쾌하게 살길 기도합니다. - 문성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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