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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평선

빙평선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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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19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24g | 127*188*30mm
ISBN13 9788972758815
ISBN10 897275881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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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세요.”
기묘한 억양이었다. 소녀가 다쓰로를 향해 띄엄띄엄 말했다.
“마리. 입니다.”
반응이 없는 다쓰로를 향해 다시 한번 처음부터 되풀이했다. 다쓰로도 뭔가 대답을 하자고 생각했지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다쓰로는 어머니를 보았다. 손자라는 말에 홀려 떨떠름하게 동의해줬던 어머니의 깊은 주름이 한층 더 깊어져 얼굴 전체가 쭈그러들었다. 며느리라는 자리를 준비해두었던 일가족에게 마리는 큰 불안감을 주고 있었다.
“열여덟 살이라네?”
돌아보니 아버지의 손에 여권이 쥐어져 있었다. 남자의 교활한 옆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어찌 됐든 이 소녀는 이 집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마소 거간꾼만도 못하잖아, 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애초에 그냥 손자를 사는 편이 더 나았겠네.”
어머니가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설충」중에서

남편이 가정적인 게 아니라 가정적인 것을 동경하는 남자라는 걸 깨달은 것은 함께 살기 시작하고 1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아이와 아내가 기다리는 따뜻한 가정을 갖고 싶어.”
마키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 말끝마다 손자와 성묘 이야기를 꺼내는 노친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는 그 사람 나름의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헤어지자는 말이 나왔을 무렵에는 벌써 다른 여자의 배 속에 남편의 아이가 있었다.
이혼이라는 결과가 안타깝기는 했지만, 자신의 인생에 매듭 하나가 지어진 것에 안도했다는 것도 솔직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결혼했을 때의 기분과 아주 흡사했다. 아기라는 천진무구한 존재 덕분에 주위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별수 없었다, 라는 이유가 생긴 것은 다행이었다. 이혼극은 주위에서 놀랄 만큼 짧은 기간에 수습되었다.
---「안개 고치」중에서

사계절을 누리는 생활, 새파랗게 높은 하늘, 따뜻한 인정과 새로운 사랑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딸 마유를 낳기 전까지의 1년 남짓이었다. 배 속에 있는 것이 딸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시어머니 다키의 태도가 돌변했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더 노력해줘야 해.”
진통에서 해방되자마자 다키는 말했다. 착한 할머니는 시어머니가 되고 온후한 남편은 착한 아들로 변해버렸다. 도움이 되는 건 암소와 사내아이뿐이야. 다키가 강한 어조로 그런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면 대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여름의 능선」중에서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게이스케는 그 자리에 무릎을 세우고 주저앉았다.
“벌써 세 번째야. 갈 때마다 클럽에서처럼 진하게 화장하고 손톱 붉게 칠하고, 횟수도 실제보다 늘려서 기입해. 오늘은 다섯 번째라고 썼어. 그러면 의사나 간호사도 아기가 태어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요? 낳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거, 왜 생각을 안 해요?”
“낳은 다음에 죽이라는 거야?”
게이스케는 무릎에 박고 있던 이마를 들고 눈을 크게 떴다. 기네코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난히 환한 얼굴이었다.
---「바다로 돌아가다」중에서

6월 하순, 여름의 기척이 감돌고 있었다. 바닷가 마을에도 보드라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잔잔한 바다는 항상 멋지게 짙은 청색이고 해가 나오는 날은 수면이 반짝반짝 빛났다.
연휴 동안에 여기저기 드라이브를 한 덕분에 인근 읍면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와는 대조적으로 주민의 생활권은 어디나 비슷비슷한 양상으로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전국에서 밀려드는 관광객 덕분에 국도변의 편의점과 캠프 시설만은 기이할 만큼 번듯했다.
여행길에 충치가 아파왔다는 환자도 기꺼이 받아주었다. 나중에 읍 이름과 치과 의사 선생님께, 라고만 적힌 감사 엽서가 도착하기도 했다. 소소한 행복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아사히마치를 처음 찾아왔을 때 느꼈던 말할 수 없이 절망적이던 기분에서는 서서히 빠져나왔다.
---「물의 관」중에서

도모에의 몸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일절의 소리도 추위도 세이치로는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혼자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세이치로는 얼음 위에 서 있었다. 달을 꼭 닮은 구멍 앞에 천천히 무릎을 꺾고 주저앉았다. 도모에의 몸이 다시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도모에!”
얼음이 울고 있었다. 소리는 섬뜩하게 메아리쳐 몸에 지잉 울렸다.
타원형 달.
찢긴 얼음 너머.
빙평선이 가로누워 있었다.
---「빙평선」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설충」
시골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삿포로로 떠났던 다쓰로. 결국 사업에 실패하고 낙향해 부모님의 농장 일을 돕는다. 따분한 일상에 위안거리라고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옛 연인 시키코와 이따금 몸을 섞는 것뿐. 그러나 대를 이을 손자를 바라는 다쓰로의 아버지가 필리핀 소녀를 며느릿감으로 데려오면서, 영영 계속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찾아온다.

「안개 고치」
아이를 갖지 못한 탓에 결혼 2년 만에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마키. 돌아가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 전통 기모노 침선장이 되어 조용히 혼자만의 생활을 꾸려가던 어느 날, 스승 지요노가 쓰러지면서 그녀가 가르치던 어린 제자 야요이까지 떠맡게 된다.

「여름의 능선」
‘착한 할머니는 시어머니가 되고, 온후한 남편은 착한 아들로 변해버렸다.’ 도쿄에서 홋카이도의 시골 마을로 시집온 지 9년. 쉴 새 없이 손자 타령만 늘어놓는 시어머니와 점점 더 바깥으로 나도는 남편, 끝나지 않는 농사일로 숨 막히는 나날을 보내던 교코는 농협 창구에서 우연히 도호쿠로 향하는 페리 여행 팸플릿을 발견하고 마음이 일렁이는 것을 느낀다.

「바다로 돌아가다」
은퇴한 스승의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던 젊은 이발사 게이스케. 계절이 무색하게 눈이 쏟아지던 어느 봄날, 자신의 가게를 찾아온 손님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녀의 이름은 기네코, 강 건너편 클럽에서 일하는 화류계 여자였다.

「물의 관」
치과 의사인 료코는 자신보다 열다섯 살 많은 클리닉 원장 니시데와 지난 5년간 연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둘 사이는 이렇다 할 진전도 변화도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다. 어느 날 시골 마을의 치과 진료소에서 의사를 찾는다는 공고를 본 료코는 충동적으로 그 자리에 지원한다.

「빙평선」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낸 세이치로. 도쿄대학에 합격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몰두하던 그는 어느 밤, 마을 남자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 도모에와 충동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10여 년 후, 지역 세무서장이 되어 돌아온 세이치로는 다시 한번 그녀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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