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한 것!”
사무라이의 호통이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이는 공의의 정치적 도리를 희롱하는 행위다. 이방인이라는 혐의도 받고 있는 이상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수색하겠다!”
그가 신호를 보내자, 뒤에 있는 무리가 발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도모야 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호통을 친 사무라이는 어안이 벙벙해진 도모야 옆에 서 있었다. 도모야는 곧 그가 자신이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 시대극에서 봤던 부교쇼(가마쿠라 시대 이후 행정·재판 사무 등을 담당하는 관청 ― 옮긴이) 사무라이들의 제복이라는 것도 알아차렸다.
“엇, 도모야 아니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배우 몇몇이 나와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도모야는 방을 헤집고 나오는 사무라이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디 멋대로 해 봐. 난 이방인이 아니야. 증거도 없잖아?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은 정말 아무것도…….”
무엇인가 생각난 듯 도모야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제야 장롱 속에 넣어 둔 자신의 가방이 떠오른 것이다. 도모야가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사무라이가 앞을 가로막았다. 곧 방에서 무언가를 찾아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요상한 도구가 숨겨져 있사옵니다.”
한 사무라이가 가방 속에 있던 손목시계와 휴대전화를 가지고 왔다. 다른 사무라이들은 영어 참고서를 펼쳐 보고는 소리를 높였다.
“틀림없이 법도로 금지한 서양 물건이옵니다.”
사무라이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도모야는 필사적으로 결백을 호소하려 했지만 단호하게 저지당했다.
“변명은 나중에 천천히 하도록!”---pp.68~71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 녀석이 글쎄 츠루가 없다고 하잖아.”
“어지간하면 이제 그런 일은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는가? 옥사 안에서까지 돈, 돈, 돈. 바보 같은 짓이 아닌가.”
수염 난 남자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렇긴 하지만……. 예전부터 옥사에서는 그렇게 해 와서…….”
“옛날부터 하던 일이라도 어리석은 일은 어리석은 짓일 뿐. 게다가 이런 어린아이에게까지 손을 벌린다는 것은…….”
남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도모야를 바라봤다. 그런데 정작 도모야는 남자를 잡아먹을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야스베 아저씨?”
남자는 미심쩍게 물었다.
“소생을 아는가?”
“저예요, 저! 도모야예요! 저, 여기에 오게 됐어요. 달빛이 비친 웅덩이에서 이어진 터널을 통해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는 도모야 곁으로 달려와 얼굴을 가까이 댔다.
“오오.”
야스베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나 컸다니…….”
야스베는 도모야를 힘껏 껴안았다. 그러나 도모야의 키가 훨씬 커 그 모습은 매달려 있는 쪽에 가까웠다. 야스베는 주위 시선도 잊은 채 눈물을 흘렸다.---pp.77~79
도모야는 이제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이 시계는 미래의 물건이에요.”
도모야는 자신이 180년이 지난 미래에서 왔다는 것을 설명했다. 다나카는 처음에는 벙벙하다가 점차 흥분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거였구나!”
눈에 반짝반짝 광채를 내며 다나카는 중얼거렸다.
“처음 본 순간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닐 거라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되네요. 아니, 그렇지 않다면 이 시계의 불가사의한 점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죠.”
“이건 전기로 움직이는 거예요. 전기라는 건, 그러니까, 음. 지금은 네덜란드에서 전해진 마찰전기가 있잖아요. 그것을 요만한 작은 용기에 담은 것이 전지예요. 하지만 타임슬립 영향 때문인지 전기가 다 떨어졌네요.”
“오오, 이게 전지라는 것이군요.”
“전기에는 물건을 움직이거나, 빛을 내는 힘이 있어요. 180년 뒤에는 전기의 힘을 이용해 여러 가지 움직이는 물건을 만들어요.”
도모야는 21세기 문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제품부터 전기로 달리는 전차, 자동차, 비행기, 그리고 하늘을 찌르는 고층 빌딩까지 생각나는 대로 말해 주었다.
“이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기계예요.”
도모야는 휴대전화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다나카는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하거나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결코 도모야의 설명에 말도 안 된다며 비웃지 않았다. ”---pp.143~144
도모야는 분량을 정확하게 잰 뒤 잘 섞은 달걀과 함께 두유에 넣었다. 다음에는 내용물을 잘 저어 주어야 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완성된 액체를 그릇에 붓고 나서는 표면에 생긴 작은 거품 하나하나를 대나무 꼬치로 터뜨려야 했다. 100개 가까이 되는 푸딩을 일일이 확인하고 나니, 작업이 끝났을 때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야스베는 그릇들을 순서대로 확인했다.
“오케이.”
도모야는 쭉 늘어서 있는 풍로 곁으로 가서 펄펄 끓고 있는 냄비 위에 찜통을 올려놓았다. 야스베는 수제 모래시계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찜통에서 새어 나오는 김의 냄새를 맡으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증기가 최고점에 이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다.
“지금이다!”
도모야는 행주를 집어 뜨거운 그릇을 꺼낸 뒤 우물물이 담긴 대야로 옮겼다. 물을 갈기를 세 번. 적당하게 식은 푸딩을 칠보 그릇에 담아 이에나리 앞에 제일 먼저 내었다. 이에나리의 입술이 우물우물 움직이는 모습을 히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다. 푸딩을 삼킨 이에나리는 눈을 감은 채 잠시 말이 없었다.
“훌륭하군.”
린타로 쪽에서는 환호성이 울렸고, 지켜보던 사무라이들은 웅성거렸다. 야스베는 크게 숨을 쉬고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쓰러질 듯한 야스베를 도모야가 재빨리 부축했다.
“야스베 아저씨, 다행이에요.”
야스베는 몇 번이고 그저 끄덕일 뿐이었다. 사무라이들에게도 푸딩을 나눠 주자 연회장은 떠들썩한 소리로 가득 찼다. 맛있는 과자는 막부의 높은 관료들조차 웃음을 아끼지 않게 만들었다.
---pp.227~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