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3년간의 군 복무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집안의 행색은 눈에 띄게 궁핍해져 있었다.
집안의 수입이란 2년 전에 미화공무원으로 퇴직한 아버지의 연급 80만 원과 담장 모퉁이에 천막과 브로크로 임시 증축한 가게에서의 월세 30만 원 등 1백여 만 원에 불과한데, 만성 신부전증腎不全症을 앓고 있는 둘째 형의 월 치료비가 90만 원 전후로서 살림 형편이 몹시 위태해 있었다.
그나마 분가해 살고 있는 큰형이 짧은 박봉에서도 생활비를 얼마씩 지원하는 형편인데도 밑 없는 독에 물 붓기로 그것 모두가 둘째 형의 치료비로 묻혀 들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나이보다 폭삭 늙어 뵈는 아버지는 그 좋아하는 소주 한잔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둘째 형이 혈액 투석을 받게 된 것은 1년 전부터라고 했다. 콩팥의 기능이 파괴된 만성 신부전증으로 발병이야 진작부터 했겠지만 본격적인 혈액 투석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1년 전이며 그때부터 매달 90여만 원이 치료비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문제는 형이 평생토록 그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병의 완치를 위해 혈액 투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연장을 위한 현상 유지 치료라는 점이었다.
바꿔 말하면, 한 달에 열두 번씩 몸속의 노폐물을 인공 신장기에 의해(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므로) 몸 밖으로 걸러내는 혈액 투석을 받지 못하면 형은 몸속에 요독尿毒이 가득 차서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간에 연계되는 분명한 진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형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뿐으로, 양친은 깊은 주름 속에 마냥 초췌해 있었고 큰 형 또한 심히 우울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선병질적인 체형이면서도 수재秀才라 불리울만큼 유난히 명석하여 양친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둘째 형은 작년 봄에 굴지의 명문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취직도 하기 전에 병의 악화로 현재는 무위도식(?) 상태에서 양친에 의지하고 있는 처지였지만, 중병에 맞서 있는 당사자인 그는 의외로 긍정적이고 밝았다.
자기 질병이 회복 불가능이 아니라 ‘자기’만은 기어이 완치를 볼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투병에 임하고 있었고,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능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거침없이 당당하게 요구하는 편이었다. 자기에게 집중된 가족들의 관심을 당연한 것으로, 오히려 헌신적으로 더 적극적이지 못함을 섭섭해 하는 투정을 보일 때도 있었다.
나는 형의 이러한 오만스런 입장을 자주 접하면서 의아해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형이 돌이킬 수 없는 중병의 환자이고 원래의 이기적인 성품이 그런 상황에 처해지면 더 심화될 수도 잇을 것이라는 헤아림과 함께, ‘비관하고 자학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 양친의 말처럼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으로 하여 온 가족이 함께 서서히 바닥없는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동반 피해감은 벗어날 수 없었으며, 실제 달리 서광曙光이 없는 앞날에의 불안으로 가슴이 그지없이 답답할 뿐이었다.
그랬다. 설령 한 달에 1백만 원의 치료비가 십수년 지속적으로 들어간다 해도, 급기야는 작은 집마저 팔고 온 가족이 거리로 쫓겨나가는 상황이 되고 양친과 큰형과 내가 그로 하여 평생 동안 고단한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해도, 둘째 형은 치료를 받으면서 반드시 살아야 했다.
생명은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므로 환자는 첨단의 의료 시설을 이용할 권리가 있으며, 그 무엇보다 세상에 살아 존재하고픈 인간의 본성적 욕구는 누구의 도움으로든 성취되어져야 한다는 내 인식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인식과 상반된, 온 식구가 늪 속으로 함께 잠겨드는 눈앞의 현실은 내 가슴을 심히 절망케 했다.
저물 무렵이었다.
나는 침울한 얼굴인 채 점퍼를 걸치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저물녘에, 어디 나가니? 아버지가 네 큰형을 퇴근 후에 집에 다녀가라고 전화하시는 걸 들었다. 가족회의를 가질 모양이더라만…….”
오십 중반인 당신의 나이보다 10년은 더 늙어 뵈는 어머니가 주름투성이의 얼굴로 부엌에서 내다보며 말했다.
“가족……회의라니요?”
나는 낡은 운동화를 발에 꿰다 말고 낮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러자 어머니의 시선이 아래로 깔려지며 이어 긴 한숨을 뿜어냈다.
“네 둘째 형 때문이 아니겠니…….”
“왜요? 무슨, 문제가 생겼어요? 형은 지금 병원에 투석 받으러 갔잖아요, 아버지랑 함께…….”
“곧 돌아올 게다. 글쎄 나도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다만…….”
하지만 어머니는 가족회의 소집 건을 소상히 알고 있는 듯, 어둔 표정이며 깊은 한숨 소리가 그것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나는 상근이와의 약속 시간 때문에 집에서 더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친구하고 약속을 했어요. 빨리 돌아올게요.”
나는 집 밖으로 나서면서 점점 가라앉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둘째 형과 상관된 가족회의라면 결코 반가운 내용이 아닐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집을 팔고 전세 혹은 월셋집으로 이사 가야 하겠다는 내용이거나 아니면 양친兩親 중 누군가가 형에게 신장을 하나 떼 주어 형이 신장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통고를 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짐작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지극히 어려운 문제로, 좀 더 솔직한 내 심정으로는 불가不可한 일이었다.
---「내 살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