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어떤 존재인지’를 결정한다. 이는 임신 중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 어머니가 배 속의 아이를 두고, “티아고는 많이 움직였는데, 카탈리나는 아주 조용하네.”라고 말한다. 그 결과 카탈리나는 아주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조용하고 착한’ 아이가 된다. 물론 그 반대 성격이 되는 것도 어렵지 않다. --- p.38
이렇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저마다 배역을 정해 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배역을 정해 줬던 순간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일단 아이가 용감한 사람, 소심한 사람, 예민한 사람, 요란한 사람으로 변장하고 나면, 그 배역으로만 보인다. 아이의 본모습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가 듣게 되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말은 맡은 배역과 관련이 있다. --- p.45
보통은 유년 시절을 ‘정상으로’ 보냈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진짜 유년 시절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잠들기 전에 누구랑 있었나요? 주로 누가 이야기책을 읽어 주었나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누가 만들어 주었나요? 그 사람을 겁낸다는 걸 누가 알았나요? 누가 학교에 데려다주었나요? 문제가 생기면 누가 도와주었나요? --- p.62
모든 사람이 들은 말과 실제 경험 간의 차이를 경험했을까? 안타깝게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이다. 따라서 다른 문제에 접근하기 전에, 우선 무슨 안경을 쓰고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신념, 생각, 판단, 선호, 삶의 방식은 초기 유년 시절에 누군가의 말과 추측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살면서 계속 부모의 말과 반대 길을 간다거나 그분들의 관점이나 삶이 옛날 방식이라서 자신의 방식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즉, 누군가의 말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부모는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의 저항과 반항, 실수를 언급한다. --- pp..75~76
이제, 한 여성을 살펴보자. 그녀는 유능하고,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문제 해결도 잘하고, 참을성이 많고, 깐깐하고, 책임감 있는 변호사이다. 물론 이것이 그녀의 본모습일 수도 있지만, 상담사는 이런 특징보다는 개인적 가치와 관련된 말에 더 관심을 둔다. 그녀의 특징이 그녀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면, 이것이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어려움을 일으키는지 찾아봐야 한다. 예를 들면, 자기 능력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주의하거나 무능한 사람들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배역을 더 돋보이게 하려고 부주의하거나 건망증이 심한 사람들을 곁에 둘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능한 왕처럼 엄청난 권력을 가졌다고 확신한다. --- p.85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그녀가 어머니가 된 후에 겪었을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어려움이 짐작된다. 또한, 좀 더 앞을 내다보면 자녀들이 그녀의 ‘두통거리’로 변할 거라는 것도 짐작된다. 그녀는 감정적이고 섬세한 영역보다는 직장 생활 훈련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자녀를 낳고 함께 살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육아와 애착 관계는 사회성이 좋거나 특별한 행동을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더디게 진행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94
우리가 배역을 구축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방치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무의식적으로 이 배역이 많은 고통을 막아 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에서 가장 중요한 어른(대부분은 어머니)이 준 배역의 옷을 받아서 거기에 직접 다양한 장식을 달기도 한다. 그렇게 가짜 옷을 입고 가짜 이야기를 잔뜩 하다가 결국에는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담자의 옛날이야기는 주로 기쁘고 즐거운 내용이다. --- p.108
그는 아픈 배역을 맡아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아프기 때문에 남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도움을 주는 친절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됐다. 나는 그에게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종이에 써보라고 했다. 수많은 두려움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 아내에 대한 두려움, 가난에 대한 두려움, 무지에 대한 두려움, 실수에 대한 두려움, 운전에 대한 두려움, 집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최악의 아버지가 될 것 같은 두려움, 의미 없이 일하며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들이 학대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적었다. --- p.139
상담 후 그녀의 일상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 여전히 잘 먹지는 않지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안아 달라는 아들의 요구를 전보다 더 많이 들어주었다. 도를 넘게 행동할 때는 따끔하게 훈육했지만, 전보다 아이가 원하는 것에 더 많이 신경 썼다. 물론 생각대로 늘 잘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벌어지는 일을 잘 인지하고 그 일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거부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도 않는다. 그저 벌어지는 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스스로 만든 고통스러운 장면을 더 많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좋은 소식도 들려왔다. 아들은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유치원 선생님은 아이가 전보다 걱정스러운 행동을 덜 하고 행복해하며 친구들과도 아주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했다. 정말로 큰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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