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풀러는 ‘20세기의 다빈치’라는 수식에 걸맞게 철학자?발명가?시인?디자이너?건축가?수학자?과학자 등으로 활동하며 폭넓은 삶을 산 인물이다. 최초의 지구인,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글로벌하게 사고한 사람, 1960~70년대 미국 청년들의 우상, 미래학의 창시자, ‘지오데식 돔’의 발명자……. 스물여덟 개의 미국 특허와 서른 권 이상의 저서, 예술?과학?공학 등 여러 분야에서 마흔일곱 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건축학회와 영국 왕립건축학회 금메달을 포함한 수십 개의 건축 및 디자인상 수상. ‘지구인Earthian’, ‘다이맥션Dymaxion’, ‘시너지synergy’, ‘우주선 지구호Spaceship earth’ 라는 신조어도 모두 풀러가 만들어 낸 것이다.
기본 철학은 순환과 절약, ‘doing more with less’
풀러는 지구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가장 적은 재료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면 인간과 에너지, 환경을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푸는 데 일생을 바쳤다. 순환과 절약, 자원을 최소한 소비하면서 모든 이가 더 질 좋은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 ‘최소 자원의 최대 활용doing more with less’이 바로 그 개념이다. 풀러는 이 철학을 자신의 발명품으로 직접 구현했다.
다이맥션 시리즈, 지오데식 돔……
‘다이맥션’이란 동력을 뜻하는 ‘다이내믹Dynamic’과 최대량의 ‘맥시멈Maximum’, 장력이란 뜻의 ‘텐션tension’를 결합시킨 신조어이다. 풀러는 지구의 유한한 자원을 책임 있게 사용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다이맥션 시리즈에 담아냈다. 적은 연료로 멀리 갈 수 있는 혁신적 디자인의 ‘다이맥션 자동차’, 항공기로 운반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쉽게 조립 설치할 수 있는 ‘다이맥션 주택’, 시각적 왜곡 없이 평평한 대륙의 표면을 볼 수 있게 디자인한 ‘다이맥션 지도’ 등이 대표적이다.
1967년 몬트리올 박람회 미국관 건물로 유명해진 지오데식 돔은 지구상에 지어진 그 어떤 집보다도 가볍고, 강하며, 가장 적은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집이었다. 내부 구조물의 지지 없이도 넓은 공간을 만들어 내며, 크게 지으면 지을수록 그에 비례하여 더 가볍고 튼튼하고 설치비도 적게 드는 집. 설치는 또 얼마나 쉬웠는지! ‘지오데식 돔’은 위대한 발명가였던 풀러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었는지 보여 준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재난 지역 어느 곳으로든지 수송할 수 있으며, 몇 시간만 투자하면 안전하고 위생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주택! 풀러는 사람이 들어가서 사는 곳이 아니라, 소유함으로써 재산을 불려 주는 집은 ‘비생산적인 부’라고 생각했다.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산 ‘21세기인’
벅민스터 풀러는 자연에 대한 착취를 발판으로 무한 생산과 무한 소비를 추구하는 시대에, 인류 전체가 살 길을 모색한 진정한 ‘지구인’이었다. 그는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과학 기술이 본래 지닌 합리성을 회복하여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50여 년 전 그가 던진 메시지는 각종 전쟁과 오염, 빈부 격차로 고통받고 있는 21세기 지구인들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살았던 풀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풀러는 개인의 독창성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