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은 장래에 철도로 인해 어떤 업종들은 멸종될 것이고 다른 몇몇은 그 면모가 일신될 텐데, 특히 파리 근교를 누비는 교통편과 관련된 업종이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만간 여기 이 정경은 그것을 구성하는 인물들과 사물들로 인해 고고학적 작업의 가치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 p.9
“번쩍인다고 다 황금은 아니지요.” 불꽃의 튀는 눈으로 그가 말했다. “그가 아녜요, ‘번쩍인다고 다 현금은 아니다’가 맞지요. 속담에 좀더 능통하지 않으면 외교관으로 출세하긴 틀린 일이지요.” --- p.117
프렐르 여행의 모험은 오스카르에게 신중함을 주었고, 플로랑틴의 파티는 그의 청렴성을 보강시켰으며, 군대 생활의 혹독함은 그에게 사회적 위계와 운명에 대한 순종을 가르쳐주었다. 현명하고 유능해진 그는 행복했다. 세상을 뜨기 전 드 세리지 백작은 오스카를 위해 퐁투아즈의 징세관직을 얻어주었다.
드 세리지 백작은 모두에게 속고 있다. 백작 부인은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다. 또한, 그의 영지인 프렐르에서 집사 일을 맡고 있는 모로도 백작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땅을 팔려고 소작인 레제와 공모하고 있었다. 이 소문을 접한 백작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영지에 가보기로 결심한다.
파리에서 릴라당까지 가는 시골 합승마차에 밀행 중인 백작을 비롯한 손님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여섯 시간이나 되는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한 승객이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자신이 워털루에서 나폴레옹과 함께 싸웠고, 동양을 떠돌며 모험을 하다 돌아오는 길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사실 그는 드 세리지 백작의 일로 심부름을 가는 공증인 사무소의 이등 서기일 뿐이다. 드 세리지 백작의 성관에 실내장식을 맡은 무명 화가 역시, 이에 질세라, 유명한 화가의 이름을 사칭하며 그리스 여행 중에 눈이 맞은 한 여자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며 허풍을 떤다.
이 두 입심 좋은 승객의 거짓 무용담은 보잘것없는 현실 속에서 지어낸 헛된 꿈이었을 뿐이지만,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길에 나선 19세의 오스카르 위송은 그 이야기에 우매하게 몰입한다. 그는 자신의 초라함을 숨기고 으스대고 싶은 마음에서 자신이 드 세리지 백작의 아들과 막역한 사이라며, 백작의 치부를 드러내고 백작 부인의 바람기에 대해 떠들어댄다. 하지만 사실 그는 모로를 만나러 프렐르로 가는, 모로의 사생아일 뿐이었다. 이를 들은 백작은 분노하고, 그 와중에 집사와 소작인의 음모도 확인하게 된다. 결국 오스카르의 경솔한 입놀림은 집사의 파면을 불러온다.
오스카르는 용케 외삼촌의 도움으로 공증인 사무실의 견습생으로 들어간다. 혹독한 수련의 시기를 거쳐 드디어 정식 서기가 되려는 시점에서, 오스카르는 또 한 번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되풀이한다.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사교계의 향연에서 노름을 하다가 사무실의 공금을 잃고 쫓겨난 것이다.
결국 더 이상 오갈 데 없는 오스카르는 군에 입대한다. 프렐르 여행에서 그 가짜 동양의 이야기에 넋을 잃던 오스카르는 성년의 나이에 드디어 알제리 원정에 나서지만, 그러나 그 여행은 그가 꿈꾸었던 낭만적인 모험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알제리 전투에서 그는 한쪽 팔을 잃고 불구의 몸으로 돌아온다. 그 대가로 그는 서른 살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수훈자가 되고, 시골 세리(稅吏)가 되어 돌아온다.
1837년 다시 프렐르로 돌아가는 오스카르는 피에로탱의 승합마차에서 첫 여행의 동행자들과 재회한다. 15년의 세월이 흐르는 그 사이에, 고작 마차 두 대를 부리는 영세한 운송업자였던 피에로탱은 ‘보몽의 부르주아'로 성장했고, 소작농이던 레제 영감은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무명 화가 조제프 브리도와 레옹 드 로라는 명성을 얻었고, 드 세리지 백작의 집사였던 모로는 ‘우아즈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얼치기 자유주의자로서 방탕한 생활 끝에 보험 행상인으로 전락한 조르주 마레를 제하면, 부르주아 계층에 속한 인물 모두가 사회적 상승을 경험한 셈이다. 이제 드 세리지 백작의 시대는 끝이 났고 부와 명예는 ‘재능과 투기’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투기와 책략, 이익을 쫓는 예민한 행동을 통해 획득된 그들의 신분 상승은 장엄함, 위대함과는 참으로 거리가 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