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배우 멜 깁슨은 2004년 자신이 제작 감독한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으로 많은 화제를 남겼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까지 열두 시간 동안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반유대주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유대인이 장악한 할리우드 영화사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러나 멜 깁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직접 영화사를 설립, 사재 2천5백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3백억 원)를 투입하여 영화를 완성하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멜깁슨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4년 고난주간에 맞추어 개봉된 그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대박을 터트려 멜 깁슨은 일거에 6억 1천만 달러(당시 환율로 7천3백2십억 원)의 천문학적인 거금을 벌어들였다. 보도에 의하면 그가 그 돈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작년 12월 초 남태평양 피지의 마고섬을 1천5백만 달러(당시 환율로 160억 원)에 구입한 것이다. 여의도(약 254만 평)의 2.5배에 달하는 면적 654만 평의 그 섬을 멜 깁슨이 구입한 이유는 개인 휴양지로 사용하기 위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여의도의 2.5배가 아니라 10배 크기의 개인 휴양지를 소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멜 깁슨이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벌어들인 돈을 그런 식으로 자신만을 위해 쓴다면 성당에 아무리 많은 금액의 돈을 헌금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의 수난을 소재로 축재한 탁월한 흥행사일 뿐 진정한 의미의 기독실업인은 아니다. 그의 기독실업인 됨의 여부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그리스도의 수난'을 제작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재물로 이제부터 자신의 영화사를 X의 구현을 위한 기독기업으로 일구는 것으로 판정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예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증거는, 제자들에 의해 예수 부활의 증언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닉슨 전 미국대통령의 특별고문이었던 찰스 콜슨은 자신의 저서 『러빙 갓』에서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1972년 워싱턴 소재 워터게이트 건물 안에 있던 민주당 사무실에 절도범이 들었다. 대수롭지 않은 단순 절도 사건처럼 보였지만, 절도범 중 한 사람의 주머니 안에서 백악관 직원의 이름이 적힌 쪽지가 발견되어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그해 11월 닉슨은 재선에서 사상 유래 없는 압승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1973년 2월에는 지긋지긋하던 월남전을 종결시켜 대통령으로서 최절정의 시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의 망령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확대되기만 했다.
마침내 1973년 3월 21일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모여, 닉슨 대통령은 애초 사건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조직적인 사건 은폐 음모를 꾸몄다. 그 음모에 참여한 10여 명의 보좌관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로서 미국에서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변호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법률 전문가들이었기에 어떻게 해야 사건을 완벽하게 은폐할 수 있고, 어떻게 진술해야 철저하게 은폐를 유지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모두 닉슨의 열렬한 신봉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닉슨을 위해 최고 수입의 변호사직을 마다하고 닉슨을 좇아 백악관으로 들어갔고, 닉슨을 위해 24시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으며, 닉슨이 원한다면 생명마저 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닉슨 대통령 역시 그들을 각별하게 대우, 그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었다. 이를테면 대통령의 허가 하에 그들의 지시로 장관, 장성, 군대를 이동시킬 수 있었고, 공무원 채용과 승진 및 해고가 가능하였다. 연방 정부 예산 중 수십억 달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고, 전화 한 통화로 리무진과 제트기를 언제나 동원할 수 있었다. 국립미술관의그림을 대여 형식으로 자신들의 집무실에 걸 수 있었고, 그들의 집무실 앞엔 붉은 상의의 스튜어드가 24시간 대기하였다. 미 전역 어디에서나 전용 전화를 가설할 수 있었고, 비밀 경호원의 경호를 받을수 있었다. 웬만한 나라 대통령이 부럽지 않은 막강한 권한이요 권력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주어진 특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신봉하는 닉슨을 위해 적극적으로 은폐 음모를 꾸몄고, 그들의 법률적 지식과 경륜에 비추어 그들의 은폐 기도는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불과 18일 만에 무참하게 무산되고 말았다. 그토록 말을 맞추었음에도 집요한 검사의 심문 앞에서 그들의 진술이 엇갈린 것이다. 그들은 죽음의 위협에 처하지도 않았다. 누가 무력으로 협박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진술은 엇갈렸고, 마침내는 닉슨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채 막강했던 권력의 자리를 포기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거짓은 어떤 시도로도 지켜지지 않는다. 거짓은 반드시 허물어지고 만다. 거짓이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아침에 죄수로 전락하여 수감된 찰스 콜슨은 칠흑 같은 교도소의 어둠 속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꾸민 거짓이 18일을 넘기지 못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만약 예수 부활의 증언이 제자들에 의해 꾸며진 거짓이라면, 그 거짓은 이미 2천 년 전에 공중분해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성인도, 법률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무식꾼들이었다. 그 무식꾼들이 아무리 입을 맞춘들, 그들이 꾸민 거짓말이 지켜질 리가 없다. 더욱이 예수 부활을 증언하는 대가로 그들에게는 세상의 권세나 영광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그 대가는 원형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거나 참수형, 혹은 화형을 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전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예수 부활을 외치면서 죽어 갔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진짜로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무식한 제자들의 증언은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허물어지지 않고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예수님께서 정말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창세기 1장의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다. 2장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구체적인 설명과 사람을 위한 에덴동산의 창설을 밝혀주고 있다. 3장은 인간의 범죄장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은 귀로만 들었을 뿐 삶으로는 듣지 않았다. 그 결과는 실낙원, 에덴동산의 상실이었다. 4장에서는 낙원을 잃은 인간의 삶이 소개되어 있다. 인간들은 스스로 하나님께 속한 자라 여기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지는 않았다. 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쳐죽여 버리는가 하면, 동생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향해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떼기도 했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자의식은 지니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기 위해 자신의 인격을 다해 스스로 하나님을 찾은 적은 없었다. 그러던 인간이 갑자기 온 마음을 다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창세기 4장 25-26절은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혀주고 있다.
-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태어난 셋이 장성한 뒤 아들을 낳자 '에노스'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간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자발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왜 그때부터였을까? 자식의 이름은 그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의 신앙고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노스'는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히브리어 보통명사이기도 한데, 그 의미가 '죽을 수 없는 존재'이다. 죄를 범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대가로 분명 사망을 예고하셨지만(창 3:19), 인간은 하나님의 그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다가 셋 시대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에노스', 즉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뒤늦게 통감하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