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샤워를 오래 하는 날이면 아내는 여지없이 생리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아내들은 다 생리를 자주 하는지 궁금하다. 이번 달에는 벌써 세 번이나 했으니, 네 번 못하라는 법도 없다. 한 달 내내 생리를 하는 셈이다. 언젠가 참다못한 내가 물컵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화를 냈더니, 아내는 그 컵에 다시 물을 따라주면서 조용히 말했다. 정신적인 출혈도 있는 법이에요…… 그러나 아내는 내 머리에서 일어나는 뇌출혈은 전혀 모른다. 게다가 아랫도리에서 일어나는 혈액순환장애는 더 심각하다는 걸, 정말 모른다.” --- 「천사와 미모사」 중에서
“자궁의 어원이 매트릭스인데, 어머니라는 뜻이죠. 신의 작은 피조물을 키우는 그릇이고, 그래서 무엇보다 소중한 곳이에요. 여자의 본질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에 이상한 적의가 묻어 있었다. 곧이어 당신은, 자신의 여성성을 그런 식으로 학대하는 것은 짐승들에게서도 보기 드물다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자궁을 남에게 줘버리라고, 네 배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될 거라고 똑같은 톤으로 숨도 쉬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다음 순간, 여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당신을 바라보면서 짧게 말했다. 당신 자궁이나 제대로 간수해, 변태. 그리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뒤이어 당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배꼽의 기원」 중에서
“그녀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솜땀 같은 맛인가. 시고 매우면서 들척지근하고도 비린? 본능, 본능…… 한동안 본능을 발음하며 지내던 사이란은 어느 날 문득 그 본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여우라는 발음보다 한층 격이 있고, 사랑이라는 표현보다 더 궁극적이고 치명적이며, 헌신이라는 말보다도 훨씬 헌신적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재석은 또 가끔 고맙다는 말을 했는데, 집에 왔을 때 한결같이 반겨주어서 가슴 한 켠이 늘 따뜻하다고 덧붙였다. 당시의 사이란은 재석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의 음성과 억양, 눈빛과 몸짓만으로도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표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자신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이란은 차츰 그를 기다리게 되었고, 그래서 감정을 숨기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묻고 싶은 말도 있었다. 결혼을 하고서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건지, 봉사만 하고 다니는 자신에게 왜 돈을 벌어 오라는 요구를 안 하는지, 가구점 일을 돕겠다고 했을 때 거절한 것은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이국적인 촌스러움 때문은 아닌지, 심지어는 그런 자신을 왜 때리지도 않는지……”
--- 「열대야에서 온 무지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