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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넘버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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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23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356g | 127*188*20mm
ISBN13 9788937486128
ISBN10 893748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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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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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람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면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우연히 사랑에 빠져 놓고 뒤늦게 운명의 증거를 찾아내느라 바빠지는 연인들처럼. 그럴 리가. 그날 그가 백화점에 간 것은 이번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지긋지긋한 망각의 부채에서 탈출하자는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이를테면 기억의 카드깡이랄까. 기억 불량자의 이 기억으로 저 기억 돌려 막기. --- pp.14-15

무엇보다 나는, 그들이 나를, 숫자로 부르는 게 좋다. 한때는 나에게도 이름이라는 게 있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름이었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은 말했다. 자주 쓰이는 단어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단어는 사라지게 된다고. 그걸 사어(死語)라고 한다고. --- p.43

나에게 작품이란 마지막 희망이다. 내가 나에게 맞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비어미도 모르는 그따위 주민등록 이름 말고, 아무도 모르는 코드네임 말고, 대대로 회자될 진짜 내 이름. 잡히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이름 없이 죽는 거다. 나는 잡히지도, 이름 없이 죽지도 않을 거다. 처음에는 너도, 숫자에 불과했다. --- p.45

저공비행을 하지 않는 독수리는 독수리라고 할 수 없다. 가장 낮게 날 수 있는 자가 하늘을 지배하는 법이다. 더구나 오늘의 살인에는 타깃이 있다. 그녀는 보잘것없지만 꼭 필요한 사람, 중심보다 중요한 주변, 보이지 않는 핵심이자 ‘넘버’의 거멀못이다. 그녀는 시초로서의 영이자, 존재하지 않는 일이고, 건반과 건반 사이에 있는 모든 음의 시작이자, 악보로 존재하는 어떤 음들의 종말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죽음은 하나의 숫자로 환원될 수는 없다. 일단 죽고 나면 그녀는 유일하고도 영원한 존재가 될 테니까. --- p.53

과거라는 유리창이 통째로 깨어지자 모든 기억의 조각들이 흉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사소한 기억을 무서워하는 버릇이 새겼다. --- p.74

뭔가가 떠오르지 않는 건 기억상실도 아니다. 그걸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어서, 기억해 내려는 시도조차 못해야 진정한 망각이라 할 만하지. 그 애가 살해당한 무렵의 기억도 나에게는 어둠이었다. 어디까지가 어둠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어둠. 그 애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죽였다 해도 놀라울 이유는 없을 것 같았지.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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