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드 보이'의 주인공 오대수는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
한국 경찰과 소방관의 심벌에 자리 잡고 있는 제우스의 독수리,
여름이면 전국에 확산되는 ‘아폴로 눈병’,
미국의 심벌인 ‘자유의 여신상'이 쓰고 있는 뾰족한 관의 정체,
명품 베르사체의 심벌인 메두사....
그리스 신화를 그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박찬욱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는 '올드 보이'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인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으며, 비유적인 상징도 매우 유사하다. 제우스의 심벌인 독수리가 왜 한국의 경찰과 소방관의 상징으로까지 쓰이는 걸까. 나이키, 헤르메스, 페가수스, 미다스, 베스타 등등, 현대 유명 기업의 이미지나 상표명, 디자인, 카피 등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그리스 신화부터 일독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저 일독에서 끝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리스 신화를 단지 박제된 옛 이야기로만 여기지 않고, 긴 세월을 통해 현대에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실타래의 끈을 추적해온 한호림 선생의 역작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가 지난 6월 1권에 이어, 2권이 출간되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감탄의 소리가 절로 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저자는 언제부터 이 수많은 신화 자료와 사진을 모으고 정리한 것인가!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전공, 한창 한국에서 잘 나가던 중 오로지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캐나다로 이주한 이래 20년 넘게 서양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역사와 생활, 문화, 그리고 언어에 뿌리 깊숙이 숨어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흔적들을 만날수록 저자 한호림의 궁금증은 자꾸만 더 늘어갔다. 사실 그 호기심의 발생과 자료 정리는 초등학교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넘기다 보니 새까맣게 높은 록펠러 센터가 나오고, 그 앞에 황금으로 번쩍이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이게 뭐지? 미술 대학을 다니던 시절 매일 보며 데생을 하던 석상에서도 궁금증은 피어올랐다. 왜 '미로의 비너스'라고 부르지? 왜 지도를 아틀라스라고 부를까? 그리스 신화의 본 고장은 물론 아시아와 남미까지 지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조각들을 매일 들여다보면서 연구하고 얼키설키 짜 맞추고 서로 연결하다 보니, 그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호기심과 궁금증들이 신기할 정도로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스 신화를 알게 되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강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면 작은 조각상이나 간판 하나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에 여행이 더 황홀하고 즐거워진다.”
1992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라는 전대미문의 기발한 영어책을 써서 밀리언셀러 작가로 유명해진 저자 한호림. 그가 30년 가까이 세상을 누비며 채집한 2,000여 장의 사진과 신화 지식으로 빽빽이 채워 넣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리스·로마 신화 책이 탄생했다. 한번 읽으면 절대로 까먹지 않도록 재미있게 엮어 그리스·로마 신화를 한눈에 섭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달려가 직접 목격하고 찍어온 수많은 희귀한 사진들 덕분에 신선한 여행서 역할까지 톡톡히 한다. 또한 누구와 대화를 해도 풍부한 화제로 삼을 수 있는 희한한 이야깃거리와 영어 문화권에서 꼭 알아야 할 단어의 유래 등이 백과사전처럼 잘 버무려진 다채로운 상식 책이기도 하다.
그리스가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던 까까머리 소년이 노련한 신화 채집가가 되기까지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깨달아 가는 과정이 담긴 감동적인 성장기록이며, 독특한 심미안을 지닌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채집한 아름다운 조각 작품과 미술, 건축, 간판, 풍경이 어우러진 세련된 디자인 책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를 모르면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한 가지 주제에 몰입하여 3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호기심과 꿈과 지식을 키워온 저자의 지난한 땀과 노력을 단 두 권의 책으로 몽땅 얻을 수 있으니 독자로선 이 얼마나 커다란 행운이며 횡재인가. 이 책으로 지금까지 읽기 어려웠거나 진부했던 그리스·로마 신화의 패러다임이 확 바뀔 것이다!
“죽은 신화는 머리를 아프게 해도 산 신화는 우리를 즐겁게 하지.”
30년 경력의 신화 채집가 한호림은 누구인가?
“난 반드시 미술가가 된다!” 이것이 어려서부터의 확고한 꿈이었다. 서울 흥인초등학교, 덕수중학교, 덕수상고를 거쳐 홍익대학교·대학원에 들어가 그래픽디자인·광고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때 멋모르고 ?생하던 비너스, 아폴로 같은 석고상에서 그리스 신들의 생김새와 익숙해진다. 그걸 계기로 재학 중 입대한 해군에선 '성경'과 '그리스·로마 신화' 딱 두 권만 들입다 파게 됐다.
모교 미술 교사를 거쳐 시각디자인과 교수가 된 뒤, 슬슬 일반에게 개방되기 시작한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으로만 보던 숱한 그리스·로마 신들을 직접 만났다. 1987년, 정말 온다간다 소리 없이 캐나다로 날아가 한국 시각디자인계에서 사라진다. 그때부터 실업자 상태로 온 미국과 캐나다를 돌아다니며 그동안 궁금했던 영어와 신화 자료들을 마구 건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5년, 디자이너가 언감생심 서양의 실제 생활에서 깨달은 영어 지식을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열망에 빠진다. 그 법열 속에 쓰고 직접 그린 전대미문의 기발한 영어책'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를 들고 나와 일약 슈퍼베스트셀러에, 밀리언셀러가 된다. 그 다음엔 희한하게도 영어와는 정반대 쪽 언어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자'를 출간, 역시 그 분야의 최장기 베스트셀러를 만든다. 특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는 일본 어학출판계의 거봉인 삼수사(三修社)와 중국-홍콩의 최대 출판사 삼련(三聯), 대만의 신성(晨星)출판사에 의해 각각 일본어판과 중국어판으로 출간되면서 그야말로 아시아를 확실하게 평정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리즈는 계속 꼬리를 물어, 21년에 걸쳐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완성한 디자이너를 위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Sign 1, 2', '서양문화 인사이트'가 출간됐고, 최근에는 신앙서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은혜'도 나왔다.
이 첨단 글로벌 시대에 세계인과 대화로 통용되고 활용되는 신화, 펄떡펄떡 뛰는 활어같이 새파랗게 살아 움직이는 신화를 낚기 위해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러길 도합 28년, 구슬이 서 말이 되어 이제는 꿰어서 보배를 만들 때가 되었기에 숱한 밤을 새우며 쓰고, 그리고, 사진을 정리했다. 그것이 바로 이 책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두 권으로, 신화 채집 30년 세월의 발품과 땀의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