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총론
본 연구에서는 문장 형식(sentence form)은 아니지만 문장처럼 해석되는 조각(fragment)들을 다룬다. 이러한 조각들을 흔히 비문장(nonsentential)이라고도 하는데 본 연구에서는 조각문(fragmental utterance)으로 칭하고자 한다.
1 조각문은 주로 구어체에서 여러 담화 상황, 즉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이나 어떤 진술에 대한 보충 설명 및 확인을 하기 위한 언어적 행위로 앞서 언급된 내용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부분만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언어의 방식이다. 영어와 한국어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A: John was talking to someone.
B: (To) Who? ← 조각문
(2) A: Who was John talking to?
B: (To) Mary. ← 조각문
(3) A: 철수가 어떤 사람에게 말했다.
B: 누구(에게)? ← 조각문
(4) A: 철수가 누구에게 말했니?
B: 영희(에게). ← 조각문
(1-4)의 발화에서 조각문은 의미적으로는 하나의 독립적인 문장(즉, 의미론적 유형 <t>)으로 이해되나 실제 발화되는 것은 문장의 조각인 하나의 구(phrase) 또는 단어에 불과하다. 가령, (2)의 경우를 보면 발화된 것은 명사구 ‘Mary’나 전치사구 ‘To Mary’이지만, 실제 파악되는 의미는 ‘John was talking to Mary’라는 문장/명제(proposition)나 단언(assertion)으로 이해된다. (4)의 우리말 조각문의 경우도 (2)의 영어 조각문과 마찬가지로 ‘영희(에게)’의 의미가 단순히 ‘영희(에게)’를 지칭하는 의미론적 유형 <e>의 의미가 아닌 ‘철수가 영희에게 말했다’란 문장 즉 <t> 유형의 의미로 이해된다. 이 구문이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형태와 기능/의미 사이의 불일치에 기인하는데 조각문은 언어학계에서 그다지 심도 있게 논의된 주제가 아니었으나 Merchant (2004)의 분석을 계기로 최근에야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슈이다.
조각문의 형태와 기능간의 불일치를 포착하려는 기존의 연구들은 크게 생략 분석(ellipsis analysis)과 직접해석 분석(direct interpretation analysis)이라는 두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생략 분석은 조각문이 실제 문장과 동일한 통사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형태적으로는 일부만 발화, 표현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직접해석이론은 조각문의 통사구조가 문장과 동일한 구조가 아니라 발화되는 그대로의 통사구조(가령, NP나 PP)를 가지고 있고, 문장과 같은 해석은 선행절과의 상관성을 통해 도출된다는 입장이다.
생략 분석을 지지하는 입장으로는 Follet (1966), Quirk et al. (1972), Wasow (1972), Morgan (1973, 1989), Sag (1976), Williams (1977), Hankamer (1979), Ha?k (1987), Kitagawa (1991), Tancredi (1992), Lappin (1993), Fiengo & May (1994), Hestvik (1995), Wilder (1997), Stanley (2000), Brunetti (2003), Merchant (2004), Ludlow (2005) 등과 한국어 조각문의 경우는 Park (2005), Ahn & Cho (2005b, 2006bc, 2009cd, 2010a, 2011ad, 2012ab) 등이 있다.3
직접해석 분석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Riemsdijk (1978), Hausser & Zaefferer (1978), Haegeman (1987), Yanofsky (1978), Brame (1979), Napoli (1982), Barton (1990, 1991, 1998, 2006), Dalrymple et al. (1991, 1995), Hardt (1992, 1993, 1999), Jacobson (1992), Kehler (1993), Stainton (1995, 1997, 1998, 2005), Lappin (1996), Ginzburg & Sag (2000), Hendriks & de Hoop (2001), Carston (2002), Jackendoff (2002), Schlangen (2003), Culicover & Jackendoff (2005). Barton & Progovac (2005), Casielles (2006), Progovac (2006), Stainton (2006) 등이 있다.
가령, Stainton (2006)의 주장을 보면, 화자가 발화한 조각문 자체는 생략 분석과는 달리 완전한 문장구조에서 조각문을 도출하지 않고 조각문 그 자체의 표층적인 통사구조로 기저생성한다. 또한 화자가 발화한 조각문 자체는 의미적으로도 완전한 명제가 될 수 있는 문장 유형 <t>가 아닌 <et, t> 등과 같은 비문장 유형으로 간주하고 청자가 담화 맥락과 같은 화용론적인 과정을 통하여 완전한 단언(assertion)으로 받아들여서 하나의 명제(proposition)로 이해된다고 하는 이론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 두 가지 분석의 장단점을 고찰하고 여러 언어의 다양한 생략 현상과 연계하여 영어와 한국어에 나타난 조각문의 특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것이다. 특히 한국어의 조각문은 이들 두 분석 중에서 생략 분석과 직접해석 분석을 지지하는 두 가지 조각문이 모두 존재함을 보이고 그 특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발화를 보면,
(5) A: Who saw Mary?
B: John.
(6) A: 누가 영희를 보았니?
B: 철수.
B': 철수가.
(7) A: Who did Mary see?
B: John.
(8) A: 영희가 누구를 보았니?
B: 철수.
B': 철수를.
영어의 경우는 단일 형태로 조각문 답변이 실현되지만 한국어의 경우는 격이 표시 안 된 것과 격이 표시된 것 두 가지 모두로 실현될 수 있다. 얼핏 보면 격이 실현된 것(이하, 유표격(Case-marked) 조각문)과 격이 실현되지 않은 것(이하, 무표격(Caseless) 조각문)의 통사?의미적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다(화용적으로 또는 기능적으로 볼 때는 유표격 조각문이 다소 강조된 느낌이 든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어의 유표격 조각문(Case-marked fragment)은 통사적 생략으로 도출된 잔여 조각으로 분석하고 무표격 조각문(Caseless fragment)은 통사적 생략으로 도출되지 않은 기저생성된 단순 단어 조각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무표격 조각문이 문장으로 해석되는 것은 담화 속의 화용적 작용 중 하나로 분석할 것이다.
영어와 한국어 조각문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생략 분석의 타당성은 격 및 태 연결성(Case & Voice connectivity), 전치사 좌초(P-stranding) 등과 같은 현상을 포착하는 데 있어 입증된 바 있다(Merchant 2004, 2006, 2007a). 본 연구는 생략에 근거한 구미 언어의 조각문 분석을 한국어의 유표격 조각문에 나타난 이슈 중에 격(Case), 전치사/후치사-좌초(P-stranding), 결속현상(Binding), 부정극어(NPI), 작용역(Scope), 상관어구(Correlates), 동일성 조건(Identity Condition) 등의 현상과 관련하여 그 타당성을 검토하고 보편문법의 견지에서 조각문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제안하고자 한다. 아울러 유표격 조각문과 무표격 조각문의 차이를 규명하고 실증적 증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영어와 한국어에서 선행사가 없이 담화최초(Discourse-Initial)로 출현하는 조각문에 대한 특징을 살펴보고 유표격/무표격 조각문의 차이와 연관시켜서 분석할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2장에서는 선행 연구에서 많이 논의되지 않았던 영어의 유표격 조각문과 무표격 조각문의 차이를 조명한다. 우선 무표격 조각문과 유표격 조각문의 근본적 차이를 밝히고 영어 조각문을 이 두 유형으로 분리해서 그간 주목받지 못한 영어의 조각문 현상 중 일부를 재조명해 본다.
3장은 한국어의 유표격 조각문과 무표격 조각문에 대한 고찰인데 우선 3.1절에서는 이 두 조각문의 기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 논하고 3.2절에서 이 두 구문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관찰하여 조각문의 구조와 기능/의미에 대한 언어보편적인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국어학에서 쟁점이 되어 왔던 서법의 문제와 청자대우법의 문제를 한국어 조각문과 결부시켜 상세히 다룬다.
4장은 유표격 조각문과 무표격 조각문의 차이를 이와 관련된 이론적 전개를 통하여, 그리고 통사론에서 쟁점이 되는 여러 문제와 결부시켜 논의한다. 4.1절에서는 격(Case) 일치와 교체의 문제, 조각문에 있어서 격 유무의 통사·의미·화용론적 차이를 집중적으로 고찰한다. 4.2절에서는 P-좌초(P-stranding)와 조각문과의 상관관계를 시작으로 한국어에서는 P-좌초 일반화가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4.3절에서는 결속(Binding) 작용이 어떻게 유표격 조각문과 무표격 조각문의 차이를 지지할 수 있는가를 보이고 이동 후 생략(Move-and-Delete)이라는 Merchant(2001, 2004)의 이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를 한국어 유표격 조각문에서 살펴보고 생략절에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통사·의미적 현상을 논의한다. 4.4절은 작용역(Scope)의 문제를 두 유형의 조각문과 연계시켜서 논의한다. 특히 두 유형의 조각문의 차이와 공통점이 어떻게 작용역 현상으로 나타나는지 논의한다. 4.5절은 부정극어(NPI) 조각문에 대한 연구인데 선행 연구에서 그다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여러 부정극어의 특성들을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조각문의 두 유형이 가진 본질적인 차이와 연관하여 설명한다. 4.6절은 본 연구의 유표격, 무표격 조각문이 각기 어떻게 확연히 구분될 수 있을지 동일성 조건(Identity Condition)과 관련하여 새로운 경험적 자료와 이론적 논의를 제공한다. 4.7절에서는 조각문이 분열문(Cleft)에 의해 도출될 수 없음을 여러 증거를 통하여 보이고 아울러 무표격 조각문은 좌치(Left-Dislocation)에 의해 생성될 수 없음을 논증한다.
5장은 담화에 최초로 등장하는 선행사 없는 조각문(discourse-initial fragments)에 대한 고찰이다. 이들 조각문은 그간 이동 후 생략(move-and-delete) 분석에 많은 문제를 제기하던 조각문의 예들이다. 선행사 없는 조각문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뉠 수 있는데 5.1절에서는 “X is” 조각문과 같은 존재적인 의미를 지니는 조각문을 다루고 5.2절에서는 “Do it!”의 의미를 가지는 조각문을 다룬다. 5.3절에서는 명령/청유의 기능을 하는 조각문을 고찰하고 마지막으로 5.4절에서는 관습화된(conventionalized) 조각문에 대해서 살펴본다. 특히 이 장에서는 이들 조각문들이 모두 무표격 조각문으로 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6장에서는 생략(ellipsis) 현상처럼 분석될 수 있는 소위 논항 생략(argument ellipsis) 현상에 대해서 논의한다. 영목적어에 대한 명사구 생략 분석의 문제점을 고찰하고 pro 분석이 더 타당한 분석임을 보인다. 6.1절에서는 기존에 이완지시 해석(sloppy reading)으로 분석하던 것을 유사 이완지시 해석(sloppy-like reading)으로 재분석한다. 6.2절에서는 한국어 대명사의 특질을 간단히 살펴보고 복수 대명사만이 결속 변항이 될 수 있음을 영목적어와 관련하여 설명한다. 6.3절은 이러한 분석을 복수 명사로까지 확대해서 영목적어의 이완지시 해석을 설명한다. 6.4절은 부정극어의 생략에 관한 것으로 한국어 부정극어에 대한 새로운 통사구조를 제시하고 영논항에 대한 pro 분석의 문제점을 풀어본다. 6.5절에서는 재귀사 생략 현상과 결속이론의 문제점을 다룬다. 6.6절에서는 이완지시 해석의 문제점을 새롭게 조명하고 영논항과 조각문의 차이를 이완지시 해석의 용이성과 관련하여 논의한다. 끝으로 6.7절에서는 왜 영논항이 생략으로 분석될 수 없는가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첨가하고 한국어에서는 유표격 조각문만이 생략 분석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음을 밝힌다. 7장 결론 부분에서는 본 연구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피력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