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약용으로 시작된 차가 기호음료로 발전하면서 인간 문화의 깊은 정신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고급문화로 정착된 지 오래다. 세계에서 차 문화가 크게 융성한 지역은 동양의 한국, 중국, 인도, 일본, 버마 등지이다. 지금이야 세계 어디에서도 차를 마실 수 있고, 생산되지 않는 곳에서도 유통되고 있으니 차 문화야말로 세계적임을 실감한다.
우리나라보단 늦지만 일본에서도 이르면 8세기부터 차를 마셨을 것이라는 기록이 보이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12세기 말 에이사이 선사(榮西禪師, 1141~1215)가 송(宋)에 가서 차 씨를 가져와 심어서 차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보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는 28~36세에 송에 다녀오고, 47~51세에 다시 송에 다녀왔다. 그리고 두 번째 다녀온 1191년에 차 씨를 가져오고, 송의 가루차법을 배워왔다. 그러나 송대의 연고차(硏膏茶)와 그가 일본에 전래한 가루차는 전연 다른 차이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 말차법이 송대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1202년에 건인사(建仁寺)를 건립할 때 도가노(?尾)의 고산사(高山寺)에 있던 묘우에 상인(明惠上人)에게 차 씨를 보내서 생산된 차가 본차(本茶)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얻었고, 후에 우지(宇治)로 옮겨서 지금의 우지차(宇治茶)가 탄생된 것이다.
그는 가마쿠라막부의 미나모토(源氏)와 아시카가(足利氏)의 신임으로 많은 불사(佛事)를 일으키고, 저서를 남겼다. 그중에도 1211년에 쓴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는 일본의 다서로는 초기의 중요한 저술로 ‘일본의 다경(茶經)’이라는 칭호를 받는 귀중한 저서다.
내용이 중국의 다서에서 인용된 것이 많고 집권자에게 충실하려고 한 면이 없지 않으나, 차의 약리적(藥理的)인 면을 강조하여 의약적으로 구명(究明)해 보려고 노력했다. 전반이 차에 관한 것이고 후반은 뽕나무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한편 ‘다상경(茶桑經)’이라고도 한다. 약간의 귀신에 관한 이론과의 결부는 당시의 일본 사회가 그런 풍조였음을 말해준다. 그가 승려의 신분이었기에 불가의 이론을 바탕으로 차를 바라보았다고 본다. 어떻든 이 저서는 후에 나온 난보우 쇼게이(南方宗啓)의 [남방록(南方錄)](후대의 僞作이라는 설이 있다)과 함께 일본차의 이론서로 중시된다.
우리 차인들도 중국의 다서만을 공부할 것이 아니라 이웃인 일본의 차에 관해서도 대략의 기본적인 지식은 갖추어야 하기에, 우선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를 먼저 주해(註解)하여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가루차만을 열심히 타서 마신다고 일본의 차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차가 발전한 과정과 정신, 그리고 세계 차 문화상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도 생각하고, 또 우리 차 문화와의 관계도 역사적으로 살펴서 바로 알아야 할 것이기에 이런 작업은 필요한 것이다.
원래 그들의 책에는 일본식의 약자를 사용했으나 나는 여기서 우리가 쓰는 한자에 맞도록 갖춘자로 환원했으니,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본문중에서